일반부 동상 - 이주향
우리 집은 아직도 겨울이야. 그렇지 아빠? 창밖엔 만개했던 꽃들이 지고 푸른 잎이 돋아나는 나무들로 가득한데, 왜 집안을 돌아보면 이리도 춥고 시리기만 할까. 물론, 코로나로 직장을 잃고 아빠의 마음보단 못하겠지만 말이에요.
잠깐일 거라고, 금세 지나갈 거라고 믿었어요. 물론 아빠도 그랬겠죠? 기약 없는 쉼에 괜스레 위축됐을 거예요. 게다가 아직 고등학생인 동생을 생각하면, 항상 아빠의 눈치를 살피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아빠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난 그래도 아빤 우리에게 내색한 번 하지 않았잖아요. 당신의 불안이 곧 가족 모두의 불안이 될 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으니. 혼자 짊어지언정 가족들에게 까지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을 테니...
엎친데 덮친 격인지, 저까지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되었을 때, 난 그만 무너져버렸어요. 가게가 폐업하는 바람에 그동안 일한 급여마저 받지 못해 버렸잖아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어요. 왜 항상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오는지. 당장 주어진 시련에 극복할 힘과 의지조차 생기지 않아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했어요. 당장 생활할 돈도 없을뿐더러 아빠한텐 더더욱 손을 벌릴 수도 없고, 우울감이 도저히 극복이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문득 아빠 생각이 나는 거야. 고작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은 내가 이 정도인데, 아빠의 상실감은 어떨지, 정말 괜찮은 건지... 며칠 만에 일어나 아빠의 방문을 열어봤어요. 조그만 방에 앉아 구직사이트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뒷모습을 보자마자, 진짜 뻔하긴 한데, 눈물이 막 나는 거 있지. 아빠는 그런 날 보고 놀란 듯싶더니 금세 다 안다는 듯이 안아줬잖아. 아빠한테 안겨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나 싶어요. 나 사실 그때 아빠가 너무 안쓰러웠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왜 진작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나무 후회가 되더라고요. 힘든 티 내지 않는다고 해서 안 힘든 게 아닌데. 사실 난 정말 몰랐던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하고 있던 것 같다. 아빤 항상 내가 먼저였는데, 이기적인 나 역시 내가 먼 저였어서 아빠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못했어요.
누가 그러더라, 힘들 때 웃는 사람이 일류라고. 그런데 나는 감정에 솔직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일류라고 생각해요. 힘든데 어떻게 웃기만 해. 가끔은 다 쏟아내 버려야 후련해지기도 하는 거잖아. 나 아빠가 우는 거 처음 봤는데, 희한하게 그 모습에 안심이 됐어요. 괜찮은 척 웃는 아빠의 모습을 볼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아렸는데, 아이러니하게 슬퍼하는 모습에 뭔가가 해소되는 기분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의 마음이 내게 전이됐었나 봐. 겉으론 웃소 있어도 속은 타들어가는 아빠의 마음이. 그리고 비로소 내 앞에서 울며 쌓아왔던 응어리를 해소시키는 아빠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통한 거예요. 이제야.
맞아, 우리 집은 여전히 겨울이야. 하지만 앙상했던 가지에 잎이 나고 꽃이 피듯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듯.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두를 생각하며, 우리도 우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보자고요. 언제나 그렇듯 우린 보란 듯이 이겨낼 테니. 우리에게도, 모두에게도 진정한 봄은 찾아올 테니.
당신의 영원한 둘째 딸 주향 올림
2020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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