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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Aug 19. 2023

100Km 준비물

출발. 2023.8.19. 부산썸머비치울트라마라톤

MBTI성격상 극 P에 속하는 나는 울트라 마라톤 준비도 전날에 급하게 하는 편이다.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다 계획이 있다. 리스트를 적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챙겨야지 하는 구상은 다 가지고 있다.

다행히 함께 달리기로 한 J님과 새롭게 합류하게 된 A님은 준비물 목록을 만들어서 단톡방에 공유해 주셨다. 나는 이렇게 편하게 수동적인 방식으로 준비물 목록을 받아먹는다.

달리는 도중에 CP가 운영되고 내가 긴급하게 필요할 때는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양말하나 때문에 10Km를 좀 더 수월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에너지젤로 버티면서 가야 되는데, 만약을 대비해서 더 넉넉하게 챙겨야 되겠네, 이게 무거워서 나중에 짐이 되면 어쩌지. 작은 소지품 하나에도 엄청나게 많은 신경이 쓰인다.


1. 상하의

  대부분 해가 없는 밤에 뛰게 되더라도 더운 여름이다. 이런 여름에는 아무리 땀이 별로 안나는 나라도 10Km 정도만 뛰어도 몸이 흠뻑 젖을 때가 있다. 아마 그날도 엄청 덥겠지. 한겨울에 뛸 때도 낮에는 싱글렛을 입고 달리는데, 얼마나 더울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해를 받지 않고 간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다. 11월이라도 햇빛을 받고 뛰는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 소모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팔뚝을 드러낼 자신은 없지만 나는 싱글렛을 입을 것이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팔뚝살을 빼기 위해 유튜브에서 팔뚝살 빼는 법을 찾아봤다. 그러다가 접었다. 나는 자기 합리화의 기지를 발휘해서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50K 마라톤을 뛰어내는 내 튼튼한 몸을 그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2. 러닝화와 양말

나에게도 작년 연말에 대회용 러닝화가 생겼다. 학교선생님들과 부산 서면 백화점 굿러너매장에서 스무 켤레씩 신어보고 사장님의  친절한 가이드 덕에 고를 수 있었던 신발이다. 바로 호카오네오네의 카본 X3. 나는 이 신발을 좋아한다. 이 신발을 신으면 갑자기 페이스가 빨라지거나 장거리를 쉽게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발이 아픈 적이 없었다. 내 발은 발볼이 넓고 발등이 높다. 그래서 신발을 신으면 발이 잘려 나가는 것처럼 저리기도 하고 발등이 아프기도 한데 이 신발을 신고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이 러닝화를 신고 하프 2회 풀코스 2회 50K 1회를 뛰었다. 100K까지 잘 버텨줄 거라고 믿는다.

신발 못지않게 양말도 중요하다. 나도 달리기를 하면서부터 신는 양말의 가격이 점점 올라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10만 원짜리 양말은 못 신는다. 나는 너무 두껍지 않고 발목을 잘 잡아주는 양말을 좋아한다. 발에 땀이 잘 안나는 편이지만 중간에 한번 갈아 신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발목양말로 하나 더 챙겼다. 갈아 신으려고 카프슬리브를 착용하고 발목양말을 신기로 했다.


3. 베스트와 물통

내 베스트는 창원시계종주를 위해서 구입한 살로몬 12리터 녹색 베스트(제품명을 기억 못 한다.)이다.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많고 500ml 물통도 2개 준다. 몸에 착 붙고 결리는데도 없는 것 같다. 100Km를 달리면 모든 게 다 짐이라고 하던데 짐을 챙겨보니 베스트가 불룩하다. 물통은 뛰면서도 마실 수 있는 하이드레이션 물통이다. 여름이라 물을 많이 마실 것 같은데 또 너무 많이 마시면 배가 아파서 뛰 질 못한다. (진해 LSD 할 때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배가 너무 아팠다.) 그렇다고 너무 안 마시면 탈수가 온다. 그래서 물통은 하나만 들고 뒤면 된다고 J님이 알려주셨다. 다행히 CP가 13곳이너 있어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4. 해드랜턴과 경광등

저녁 7시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지는 울트라 마라톤대회는 긴 시간 동안 도심의 차량을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에(몇백 명의 사람들 때문에 차량 통제하는 것도 어렵다) 인적이 드문 시골이나 임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것에는 가로등이 밝지 않거나 없는 곳도 있어서 해드랜턴과 경광등 2개를 앞뒤로 부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격처리 될 수 있다. 해드랜턴을 달고 뛰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일이다. 자꾸 내려오기도 하고 이마가 눌리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 그래서 손에 들고뛰면 불빛이 어른어른거려서 어지럽다. 경광등은 불이 깜빡깜빡거리는 전등인데 울트라 마라톤은 앞사람과 뒷사람의 간격차이가 많이 나서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저번 대전한밭벌에서는 앞사람의 경광등만 보고 뛴 적이 있다. 나의 안전을 책임져줄 친구들이다.


5. 에너지젤과 클램픽스

나는 약발이 잘 받는 편인 것 같다. 달리기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힘들 때 에너지젤을 먹으면 몸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완전 새 몸이 되는 기분 까진 아닌데 힘들었다면 견딜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준다. 장거리를 달리면 그동안 내 몸에 비축되어 있던 글리코겐(아주 야무지게 저장되어 있을 거다) 을쓰는데 저장할 수 있는 글리코겐도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달리는 내내 에너지젤과 음식물을 섭취하면서 가야 한다.  J님이 에너지젤을 15개 정도 챙긴다고 했다. 보통 풀코스마라톤을 뛸 때는 10Km당 에너지젤 하나씩 먹는다. 나는 에너지젤 12개와 꿀 3개를 챙겼다. 이걸 다 먹지는 않겠지만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 중간에 당분으로 보급될 양갱도 챙겼다.

  클램픽스는 사실 한 번도 안 먹어봤다.  달리기 하면서 쥐가 나는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거다. 그만큼 내가 격렬하게 뛰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래도 이번대회에서는 쥐가 날 경우를 대비하여 클램픽스도 넣어간다. 쥐가 났을 때 먹으면 금방 풀린다고 한다.


6. 스포츠 테이핑

사실 한 30Km만 달려도 아픈 곳이 한 두 군데씩 생긴다. 발목이 뻐근하기도 하고 발바닥이 아프기도 하고 무릎도 아프고 골반도 당긴다. 아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긴 거리를 달리는데 멀쩡 할 수는 없겠지. 그래서 다리에 테이핑을 많이 감고 달리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부족한 근육을 대신해서 근육과 비슷한 역할을 해줄 것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 붙이기도 한다.  붙이는 방법을 잘 몰라 맨날 유튜브를 찾아본다. 유튜브 마다 각각 붙이는 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느낀 건 그냥 어떻게라도 막 붙이면 안 붙이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것이다. 달릴 때 아픈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다가 붙여주면 된다.


7. 각종약품

내가 챙긴 약은 근육이완제, 소염진통제, 소화제, 지사제, 카페인 알약이다. 이런 걸 먹어보고 뛰어본 적은 없지만 내가 너무 힘들 때 약의 힘이라도 얻고 싶을 때 먹을 예정이다. 소화제는 지난 대전 한밭벌에서 떡을 먹고 뛰었을 때 약간 체한 느낌이 있었다. 빠른 시간에 먹어야 하기 때문에 체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소화제를 챙기게 되었다. 달리기의 힘든 고통을 느껴보고 싶어서 울트라 마라톤을 뛰면서 약은 많이 챙겨가는 아이러니.


8. 헤어밴드 선글라스

리에 뭔가 쓰는 것을 안 좋아한다. 특히 모자나 헤어밴드. 창이 있는 모자는 내 시야를 방해하는 것 같아 갑갑하다. 또 헤어밴드는 머리가 쪼이는 기분이 좋지 않다. 대부분 저녁에 달릴 것이니 모자는 패스하고 헤어밴드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 땀이 눈에 들어가면 너무 따갑다. 평생 땀 때문에 불편한 적이 없었는데, 달리기 덕분에 땀의 불편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헤어밴드는 최대한 안 쪼이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모자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고글을 쓰고 달리는 것을 택한다. 이것도 깜깜한 저녁에는 해당사항에 없겠지만 그래도 기미 주근깨 레이저 치료를 하고 있는 나는 이게 필요하다 해 뜨면 쓸 거다.


9. 립스틱

립스틱은 지난 50Km 마라톤을 뛸 때 절실하게 필요했던 거다. 진짜 내가 허옇고 아파 보이는 입술로 뛰는 것이 뛰는 동안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좀 더 생기 있고 즐거워 보이는 모습으로 사진이 찍히려면 립스틱, 틴트를 챙겨야 한다. 나는 울트라 마라톤대회에서 왜 그 여자 선수들이 입술을 새빨갛게 바르는지 최근에 와서야 이해했다. 입술색은 너무 중요하다


10. 칫솔

어디 블로그 같은 데서 본 것 같다. 울트라마라톤을 뛸 때 양치질을 하면 상쾌하고 새로워진 마음으로 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챙겨가지만 양치질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11. 신용카드

보조배터리도 들고 가지만

핸드폰이 꺼지거나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옆에 아무도 없고 뛸 수도 없는 일이 생길 확률은 거의 없을 거다. 나와 같이 뛰기로 한 동료들은 나를 버리고 가지 않을 거고 주변에 몇백 명의 사람들이 달리고 있을 거고, 핸드폰은 잘 꺼내 보지 않을 테니 안전하게 배낭 속에 있을 거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택시라도 타야 하니  카드를 챙겼다.


내가 챙기는 준비물들 중 필수인 것도 있고 아마 짐으로 실려 다니면서 나와 같이 100Km를 완주하고 한 번도 배낭에서 나오지 못한 채 짐이 될 것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늦게서야 짐을 싸니 설레고 떨린다. 여행 갈 때 짐을 싸는 일이 행복한 것처럼 이렇게 울트라 마라톤 짐을 싸는 일은 이제 내가 곧 100K를 뛴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이제 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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