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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 Oct 03. 2023

2023. 부산썸머비치울트라마라톤 5

결국은...

  대변항 CP에 도착했다. 힘이 많이 빠져 있었지만 나는 에너지젤도 먹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반에 에너지젤을 더 자주 먹었어야 했는데, 그걸 먹을 생각을 못한 것을 보면 아마 그때부터 정신이 나가 있었나 보다. CP에서 물과 콜라를 열심히 마셨다. 준옹이님과 아촌님은 아픈 곳을 체크하며 파스를 뿌리거나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있었다. 오래 달리면 발이 붓기 때문에 신발끈을 느슨하게 풀어주어야 한다. 아촌님은 핸드폰을 충전기에 충전을 해놓고 달리는 내내 거의 보지 않았는데, 충전이 안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몇 시간 만에 보는 핸드폰을 이리저리 확인을 하며, 사람들이 하는 응원 등을 읽었다. 아촌님은 가족들의 응원을 많이 받고 왔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아들들은 "아버지가 뛰고 오시면 아버지가 좋아하는 족발을 사드리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응원을 받고 왔으니 정말 그만둘 수 없었다. 아촌님은 자랑스러운 아버지로서 잘 해내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우리 크루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었고, 학교에 친한선생님들에게도 LiveTrack(라이브트랙)을 공유하여 응원을 받고 있었다. 나도 중간중간 카톡을 확인하며 많은 사람들이 내가 뛰고 있는 것을 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응원들이 많은 힘이 되었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응원이 많은 힘이 되었다.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라도 더 중도 포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이 말하는 완주 하는 방법에는 완주 기록증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자랑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과 관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100Km도 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숨이 깊은 곳에서부터 빠져나가고 있었다. 쓰러질 정도로 힘든 것은 아니지만 앉지를 못하였다. 어디라도 앉게 되면 다시 못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CP봉사자분이 18Km 정도 남았다고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포기는 못한다. 굴러서라도 가야 한다. 우리는 한참을 몸을 정비하면서 5분 넘게 쉬었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잔기지떡 하나를 집어 먹었다. 입이 말랐고, 입으로 들어가는 씹어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맛을 느끼지 못했다. 퍽퍽하기만 한 잔기지 떡 한 개를 겨우 먹었다. 그렇다. 나는 미각을 잃었다. 거기서 더 오래 쉬고 싶은 마음과 얼른 가야 된다는 마음이 대치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거기 있을 수는 없고 1분이라도 일어나서 움직여야 1분이라도 완주하고 편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출발했다.

  사실 거기서부터는 계속 걷다가 뛰다가의 반복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아니 뜨거웠다. 나는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모자나 안경을 쓰는 것을 안 좋아하지만 챙겨간걸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닌 상태로 계속해서 나아가 갔다. 우리가 가는 길에 대변항 CP 쪽으로 가는 참가자들을 몇 명 만났다. 그 긴 거리를 그들이 달릴 생각을 하니 내가 더 막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다리는 이미 한쪽에 100Kg 정도로 느껴지고, 몸은 땀으로 절어있고, 나는 지쳐 있었다. 기장에 있는 편의점에 가면 쭈쭈바를 먹자고 말하며 편의점이 오아시스인양 편의점만 찾아다녔다. 그래도 제일 멀쩡한 준옹이님이  어제 본 영화의 OST라며 "steal the show"노래를 틀었다. 나는 엘리멘탈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즐거운 멜로디와 예쁜 가사를 들으니(사실 가사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사서 하는 나의 생고생이 조금은 미화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만약 이 장면이 영화라면 아마 가장 큰 갈등구조나 클라이맥스이겠지. 100Km인데 아무런 고통이나 고생의 절정에 다르지 않고, "완주했습니다. "라는 결말이 나버린다면 얼마나 싱거울 것이고, 그 영화는 망할 것이다. 좋은 영화와 스토리에는 항상 갈등이나 시련을 겪고 주인공이 성장하는 법이다. 나는 고통이나 힘겨움을 즐기기로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쭈쭈바가 너무 먹고 싶었다. 지금 내 입에 얼음처럼 차갑고 달달한 것이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작곡가였다면 쭈쭈바가 먹고 싶다는 노래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며 드디어 겨우 편의점을 찾았다. 나와 아촌님은 생각의 여지도 없이 뽕따를 먹었고, 준옹이님은 더위사냥을 먹었다. 걸인처럼 계산이 끝나기도 전에 봉지를 뜯어서 얼굴에 갔다 대고 뚜껑을 땄다. 시원하고 달달한 얼음이 입에 닿는 순간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제 살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쭈쭈바가 너무 맛있어서 대회가 끝나고 일주일 동안은 쭈쭈바만 먹고 싶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먹고 싶고 시원하고 달달한 얼음 덩어리만 먹고 싶었다. 쭈쭈바를 먹는 동안은 또 걸을 수 있었다. 짧고 큰 행복은 양지에 눈 녹듯, 금방 사라져 버렸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울트라 마라톤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나 자신은 나에게 아군도 되었다가 적도 되었다가 타협을 했다가 저항도 하는 그런 존재였다. 이번 울트라마라톤의 가장 큰 적은 날씨였다. 특히 나는 더위가 너무 힘들었다. 그 더위에 지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는 더위를 많이 안 타고 땀도 별로 안 흘린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한 나는 부끄러웠다. 아침부터 30도 이상의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는 나는 더위에 제일 약한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의 아침이 지나가고 태양이 떠오르자 구름이 걷히고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그늘이 하나도 없었다. 나의 왼쪽 어깨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기장 신도시의 어리고 빈약한 가로수는 그늘을 만들지 못했다. 그 길을 가면서 내가 반환점을 향해서 가고 있을 때, 우리보다 앞서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텅 빈 것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거의 끝을 다해가는 즐거운 얼굴이 아니라 에너지고갈과 더위로 인해 텅 빈 얼굴들이었다. 아마 나도 그때는 그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걸어가든 뛰어가든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거의 끝이 보였기 때문에 마지막 힘을 짜내보기로 마음먹었다. 송정역 CP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이제 여기가 마지막 CP였다. 수박화채는 이제 없다고 했다. 다른 건 못 먹어도 수박화채는 먹을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한 10Km 정도가 남았다고 했다. 이제 딱 10Km만 토요일 아침 이지런 한다고 생각하고 뛰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송정역에서 청사포 쪽으로 데크길은 그나마 가기 편한 길이었다. 문텐로드가 걱정되긴 했지만 달려 보기로 했다. 올드 머그를 지나는데, 준용이 님이 아촌님과 나에게 커피를 사갈 테니 먼저 가라고 말했다. 커피를 사 오면 준옹님은 커피를 들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기 위해서 더 빨리 뛰어야 된다. 그렇지만 준옹이님에 대한 걱정보다도 커피를 먹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커서 항상 거절과 사양을 잘하는 나는 그 순간만큼은 괜찮으니 사러 가지 말라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사람은 원래 위기 앞에 이기적이게 된다. 그래도 너무 빨리 가면 안 될 것 같아 앞서가던 아촌님을 불러 세웠다. 천천히 뛰어서 600~700미터 정도 더 간 지점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서서 기다리자고 했다. 준옹이님이 뛰어올 길만 바라보았다. 작게 보이는 준옹이님이 양손에 아이스아메리카노 3개를 들고 빠른 속도로 뛰어 오고 있었다. 내가 눈이 좋은 것도 아닌데, 진짜 작게 보이는 준옹님의 얼굴과 손에 들린 커피까지 잘 보였다. 이건 갈망 때문에 나오는 초능력 같은 것이었다. 준옹이님이 그렇게 쏜살 같이 달려서 우리에게 커피를 내밀었고, 나는 받자마자 가뭄 때문에 쩍쩍 갈라진 논에 물을 대듯 커피를 쭉 마셨다.

"악~!"

 나는 어떤 감탄사를 내뱉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감탄사를 남발하거나 리액션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내뱉은 감탄사가 "크아!" 였는지, "아!!!!!" 였는지 "휴!" 였는지... 아마 내 기억에는 그냥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 것 같다. 하지만 그 아이스아메리카노 방울방울들이 손끝과 발끝, 머리카락까지 전해지는 느낌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커피는 온몸으로 1초 만에 퍼졌다. 1초 만에 몸에 퍼지는 것이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짜릿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태어나서 먹은 커피 중에 제일 맛있는 커피였다. 지금 바로 세상이 끝난다고 할지라도 나는 이 커피를 마셨으니 미련이 없을 것 같은 맛이었다. 준옹이님은 커피가 6천 원이라 좀 비싼 편이라고 말했지만 그때의 나는 이게 5만 원이라도 사 먹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원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1년에 2~3번 정도밖에 먹지 않는 더죽따(더워 죽어도 따뜻한 아메리카노) 파이며, 찬 커피를 한꺼번에 빨리 들이켜지 못하지만, 그 커피만은 금방 먹어버렸다. 커피가 줄어들수록 상실감이 컸다. 그래도 얼음을 꺼내서 씹어먹었다. 얼음이 시원했다. 얼음 몇 개를 꺼내서 철판처럼 달궈진 정수리와 몸에 갔다 대었다. 얼음이 녹았다.


멋진 준옹이님이 뛰어서 사다 준 아이스아메리카노

  커피를 다 마시니 청사포에 다다랐다. 거기는 블루라인열차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또 살방살방 뛰었다. 이제 곧 너무 힘들었던 문텐로드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문텐로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제발 진흙이 좀 말라 있기를 바랐다. 문텐로드로 들어가니 새벽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았다. 일단 바닥이 잘 보였고, 그 몇 시간 동안 바닥이 조금은 말라있었다. 이제는 조금 걸을만했다. 살짝 미끄럽기도 했지만 오전에 비하면 여기는 비단길이었다. 그렇지만 산길이라 함부로 뛸 수는 없었다. 낮이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준옹이님은 아마 그때부터 페이스가 너무 쳐져 있으니 이렇게 달리면 너무 늦다고 말했다. 좀 더 빨리 걷기를 재촉하며 이렇게 달리면 16시간 안에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나는 17시간 안에만 들어가서 완주만 하면 되는데...'라며 입이 튀어나올 뻔했다.


  가까스로 문텐로드를 지나왔다. 문텐로드는 상황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가까스로, 겨우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 문텐로드를 올라오자마자 준옹이님과 아촌님이 뛰었다. 그때부터는 내리막길이라서 사실 뛸 만했다. 약간의 그늘도 있어서 뛰어졌다. 하지만 내리막길이 금방 끝나고 해운대 백사장이 펼쳐졌다. 아촌님이 제일 앞에서 뛰고 준옹이님이 중간에서 뛰고, 내가 제일 뒤에서 뛰었다. 서로 20미터 정도 떨어져서 뛰고 있었다. 사실 너무 뜨거워서 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뛰는 것이나 걷는 것 둘 다 힘들었고 일초라도 빨리 이 불지옥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해수욕장 백사장을 보니 파라솔에는 손님이라고는 없었고, 바닷물에도 사람들은 없었다. 너무 뜨거운 날씨라 놀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센텐을 좋아하는 외국인 할아버지 한 명만이 웃통을 벗고 햇볕을 쬐고 있었다. 달리는 게 힘들다기보다는 너무 뜨거워서 토할 것 같고 힘들었다. 물을 마시고, 포도당 사탕을 먹었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내가 반정도 뛰다가 도저히 못 뛰고 걸으니 나와 점점 격차를 벌어지고 있던 우리 일행이 다 같이 걸었다. 진짜 내가 스무 살만 되었어도 주저앉아서 '으앙' 하고 소리 내어 울었을 것이다. 마흔 살인 나는 힘들다고 우는 나잇값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들었다. '내가 죽으면 우리 채채는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찰나로 스쳤다. 그래도 잘 살아가겠지만 '아, 난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라고 생각하며 그때부터 뭘 계속 먹었던 것 같다. 물도 먹고 포도당 사탕도 계속 먹었다.

  나는 햇볕에 달궈지고 있었다. 몸도 달리기로 인해서 열과 땀이 나서 이미 달궈져 있는데 계속해서 뜨거운 햇볕도 내 몸을 달구고 있었다. 겨우 해운대 백사장을 지났지만 나와 일행들의 격차는 너무 벌어져 있었다. 중간에 나는 한 번 주저앉았다. 한 10초 정도 앉았던 것 같았다. 세상이 영화처럼 보이고 현실감이 없어졌다. 그냥 이대로 누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뜨거웠고, 너무 힘들었다. 나는 멀리 있는 준옹이님과 아촌님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이제 길을 아니까 여기서부터 천천히 가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의 제안은 먹히지 않았다. 우리는 같이 가야 된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주저 앉은일을 두고, 준옹이님이 나에게 엄살이 심하다고 말했다.) 저기 멀리서 힘겹게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일어나서 달렸다. 나는 준옹이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먹자고 했다. 그래 곱게 말하진 않았다. 약간 짜증이 섞여 있었다.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나를 달래며 준옹이님이 저기 앞에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말했다. 준옹이님이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편의점의 에어컨바람이 너무 쐬고 싶어서 달렸다. 엄청 빨리. 달려지는 게 신기했다. 덥고 지쳐 있는 것 빼고는 아픈 곳이 없었으니, 가능할 만도 했다. 달리면서 사람은 역시 정신력으로 못 하는 일이 없겠구나 생각했다. 일분이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어하는 준옹이님은 엄청 빠른 속도록 설레임 3개를 이미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설레임을 들고 온몸으로 녹였다. 허벅지와 팔뚝, 얼굴에 마구 갔다 대었다. 마치 달궈진 철판 위에 얼음을 놓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얼음이 닿는 곳은 조금 시원해지며 살 것 같았다. 약간 녹았을 때 뚜껑을 땄다. 하지만 설렘임의 특성상 그렇게 쉽게 녹지 않았다. 나는 다시 정수리 팔, 다리에 마구 갔다 대면서 녹였다. 날씨가 더워서 금방 녹았고,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쥐어짰다.

  또 눈물 날 것 같았다. 감동적인 맛이었다. 커피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힘이 올라왔다. 설레임은 마치 100K 울트라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마지막 2~3Km를 남겨놓고 먹으라고 회사에서 만들어놓고 편의점에서 파는 것 같은 운명적인 느낌이었다. 그렇게 설레임을 먹으며 걷다 뛰다 보니 요트경기장에 보였다. 거기서부터 진짜 열심히 뛰었다. 준옹이님과 아촌님 모두 잘 뛰었다. 준옹이님은 뛰면서 피니쉬 세리머니를 제안했다. 우리는 세 명이서 손을 잡고 들어가기로 했다. 요트경기장이 보여서 한 100~200m만 뛰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한참을 더 뛰어들어갔다. 나는 요트경기장을 보자마자 이제 나는 살았구나. 여기서는 내가 쓰러져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많을 것이고, 내가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늘에서 뛰니 조금은 살만했다.


  요트경기장으로 돌아 들어가니 길에 서있던 사람들이 응원을 해줬다. 우리에게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런 응원을 받으니 조금 더 힘이 났다. 바로 앞에 피니쉬라인이 보였다. 나와 준옹이님, 아촌님이 손을 잡았다. 준옹이님이 가운데서 잡은 손을 위로 들었다.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았다. 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지는 모르겠다. 혼자였으면 할 수 없었을 일을 준옹이님과 아촌님 덕분에 같이 올 수 있어서 고마워서 그랬을 수도 있고, 결국 내가 해내었다는 생각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 0.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슬로비디오처럼 100Km를 달렸던 모든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막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코끝이 찡하고 가슴에서 벅찬 무언가가 올라왔다. 


   피니쉬 라인에 서있던 사람들이 축하해 주셨다. 피니쉬라인에 들어가자마자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주셨다. 드디어 해냈다. 중간 CP에서 우리를 본 자원봉사자분이 우리 셋이 같이 달리더니 끝까지 같이 들어온다면서 우리를 알아보고 축하해 주셨다. 한 명씩 돌아가며 월계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실 끝나고 그냥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그늘에만 서있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사실 사진이고 나발이고 빨리 저기 있는 그늘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지만 이걸 찍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거니까 월계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함께 손을 잡고 들어가는 순간.  울컥했던, 잊지 못할 순간이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빨리 대충 찍고 끝내고 싶은 표정이다. 


  나는 일단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는 천막 쪽을 걸어갔다. 그늘이 너무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앉지도 못하고, 서있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마 뇌가 정지되었다. 달리는데 모든 에너지를 빼앗기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100K를 다 뛰었다는 기쁨과 해냈다는 성취감을 만끽할 수도 없을 만큼 몸이 지쳐 있었다. 자원봉사자분이 콜라를 주셨다. 나는 원래 콜라를 잘 안 마신다. 특히 펩시 콜라는 안 마신다. 그런데 자원봉사자분이 주신 펩시콜라를 연속해서 7잔을 들이켰다. 그렇게 마셔도 배도 안 부르고 트림도 안 났다. 계속해서 들어갔다. 내가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있는데, 제일 멀쩡한 준옹이님이 핸드폰으로 월계관 사진을 한번 더 찍자면서 피니쉬 라인 쪽으로 갔다. 아직까지 준옹이님은 힘이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진정한 장변이다. 나는 그쪽을 쳐다볼 기력도 없었다. 옆에 아촌님도 앉아 있었는데,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아촌님이 제일 앞에서 묵묵히 큰 형님처럼 아무 말도 없이 잘 뛰어서 체력이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아촌님도 말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아서 아무 말 없이 달리기만 했던 것이었다. 아촌님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느끼자 동병상련을 느꼈다. 사진 찍자는 준옹이 님의 제안을 둘 다 무시했다. 준옹이님이 절어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을 찍어주었다. 사진에 예쁘게 나오고, 멋지게 나오는 것이 안중에 없었다. 표정관리가 안되었다. 

  자원봉사자 분들이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셨다. 그래 여기서 살아서 집까지 가려면 밥을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 나는 짐을 주섬주섬 챙겨 씻으러 갔다. 씻고 나서 밥을 먹기로 했다.


   샤워장에서 우리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시던 연세가 많아 보이시는 여자분을 만났다.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100K를 뛰시는데 할머니라고 부르기가 죄송하다. 둘 다 옷을 홀딱 벗고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이 작년에는 같은 코스를 14시간에 들어왔는데 올해는 16시간이 걸렸다고 말씀하셨다. 올해 너무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래 올해 내가 첫 100K를 해낸 것은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나도 엄청 잘 해낸 것이었다. 아직도 달궈져 있는 몸에 차가운 물이 닿자마자 식는 것이 느껴졌다. 샴푸랑 비누를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갔는데, 누군가가 쓰다가 남겨 놓고 간 샴푸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누군지 몰라도 샴푸를 남겨 놓고 가서 너무 고마웠다. 시원하고 행복했다. 샤워만 했는데도 피곤함이 70% 이상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나와서 옷을 입고 밥을 먹으러 갔다.

  밖은 아직도 더웠다. 자원봉사자 분이 밥과 국을 떠주셨다. 정말 안 넘어갈 것 같았는데, 내가 마치 씹어먹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느껴져서 밥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밥을 씹고, 반찬을 집어 먹었다. 하지만 정말 밥과 반찬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집에 가야 하니까, 그 힘을 내기 위해서 억지로 두 세 숟가락 밥을 먹은 것 같다. 준옹이 님도 밥을 국에 말아서 억지로 먹고 있었다. 아촌님도 밥을 먹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사람이 뭔가를 먹고 소화를 시켜 에너지를 내는 메커니즘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내가 외계인이 된 것처럼 생소했다. 걷는 것도 새로 태어나서 막 걸음마를 떼를 사람처럼 몇 걸음 걷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100Km달리기는 밥을 먹고 집에 오는 것까지로 마무리 되었다.

 

   나는 100Km를 왜 뛰었을까?

   

  나는 답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100Km를 뛰고 나면 답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100Km를 뛰는 이유,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방향, 내 삶의 이유 같은 거창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라톤은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고,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기도 하니까 내가 달리고 나면 나는 내 인생의 해답들을 조금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다시 물음표를 남기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책에도 꼭 결론에는 물음표를 남긴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평안함에 이르렀나?'라는 질문을 하는 것처럼, 스토너에서 스토너가 자신의 생을 마감하면서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물음표를 남기는 것처럼, 나도 이제는 나의 결론은 물음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물음표는 내가 100Km를 100번 뛴다고 해도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답은 또 또 다른 질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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