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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 Oct 16. 2023

100K 그 후

"아이엠 러너, 아이엠해피!"

  100K를 뛴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두 달 만에 계절이 바뀌었다. 그렇게 죽을 것처럼 더운 날씨고 제법 선선해지고 새벽에는 반팔을 입고 뛰기가 약간 추운 날씨가 되었다. 


 나는 100K를 달린 다음날 아침에 병원에서 근육통을 완화하는 주사를 맞고 출근을 했다. 100K를 달린 사람치곤 너무 멀쩡하게 걸어 다녔고 크게 아픈 곳도 없었다. 저녁에는 창원마피아 크루 사람들과 모여서 리커버리런을 한 후 준옹이님과 나는 치맥을 하면서 100K 달린 자랑을 실컷 할 수 있었다. 준옹이님은 어제 달린 것이 마치 소풍 같았다고 말했다. 나에게도 꿈같은 일이었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달리지 않고 치맥을 먹고 있는 시간은 오게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했으니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울트라 영업사원이 되어 사람들을 홀렸다.(홀린 사람이 없었다. )

  그다음 날은 학교에 자랑떡을 돌렸다. 百(일백백)이 적힌 무지개 떡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100K 뛴 것을 자랑했다. 맨입으로 자랑하면 안 들어줄까 봐 떡을 돌렸다. 선생님들이 내부메신저로 대단하다며 축하를 해주었다. 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100K 뛰고 난 다음 자랑만 하고 다녔다. 내가 해낸 것에 대한 성취감과 자신감에 취해있었다. 이럴 때는 좀 취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겸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낸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칭찬을 가장 많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타인의 자랑보다 스스로 잘했다는 칭찬이 더 와닿는다. 자랑 주간이 끝나고 나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성과가 없는 다이어트와 달리기와 일과 독서와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성장하겠지만 또 늙어 갈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해내더라도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 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나의 일상을 지켜나가야 하는 운명이다. 

창원마피아 크루들과 함께... 나는 주말에 별일이 없으면 창원마피아 맥모닝 이지런에 무조건 참석한다.

 그래도 달리기는 내 일상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 누가 내 뇌구조를 그린다면 65%가 달리기가 들어있다. 갖고 싶은 것은 러닝화 밖에 없고, 모든 돈은 러닝화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다. 카톡은 달리기 크루 달리기 카톡만 열심히 읽고 한 번씩 답한다.(나는 카톡에 답장 안 하기로 유명하다.)  


  100Km 뛰었다고 끝난 건 아닌다.  우리에게는 11월 JTBC마라톤 풀코스와, 12월 진주마라톤이 있다. 그리고 2024년 3월에 부산비치울트라마라톤도 약속했다. 나는 준옹이님에게 다시 한번 올드머그까지 뛰어서 가고 싶다고 했고, 준옹이 님은 그럼 겨울에 LSD 70~80Km 정도의 거리를 창원에서 송정까지 뛰어가자고 했다. 또 앞으로 해마다 많은 마라톤 대회와 울트라 마라톤이 남아 있다. 나는 이제 겨우 100K를 뛴 것이다. 200K를 뛸 수도 있고, 트레일러닝 100K에 도전할 수도 있다. 해외 울트라 마라톤을 갈 수도 있으며, 250K 사막마라톤에 도전할 수도 있다.


 나는 달릴 때마다 달리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한다.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나가기 싫어하는 내 몸을 어르고 달래서 나가야 한다. 침대에서 현관문까지가 100Km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오늘은 정말 천천히 달려야지 하며 나가지만 막상 발이 땅에 닿으면 날아가고 싶다. 지금도 오늘 아침에 5Km만 뛸 거야라고 생각하고 나가면 5Km만 뛰어도 힘들다. 10Km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계속 달린다. 힘들어서 좀 걷다가 보면 또 달리고 싶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싶다. 힘껏 빠르게 달리고 싶기도 하고 천천히 즐기며 달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힘들면 다시 걷는다.  이렇게 즐겁기도 하다가 힘들기도 한 이 것을 계속하는 이유도 잘 모르면서 나는 계속 달린다. 

오랜만에 울트라 삼 남매가 다시 뭉쳤다

 요즘은 너무 달리기 좋은 날씨다. 선선한 공기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선선하고 시원한 바람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뛸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며칠 되지 않으니 지금 열심히 뛰어야 한다. 


 9월 말에 개봉한 1974 보스톤을 추석연휴동안 가족들과 함께 보러 갔다. 거기에 나오는 대사로 아주 생존 영어만 구사할 수 있는 우리나라 선수단이 영어로 기자들이 뭔가 물어보면, I am happy, I am runner로 답한다. 영화를 보면서 국뽕이 차오르고, 감동을 받았다. 나도 꼭 보스턴 마라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달리기를 하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고, 내가 한국사람 러너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나의 100Km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마친 소감과 나의 달리기 전체를 통틀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대사가 될 것이다. 


"아이엠 러너(I am runner), 아이엠 해피(I am happy)"

 

 나의 목표에 대해서 생각 한다. 나의 목표는 긴 거리를 달리는 것도 아니고, 빨리 달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래 달리고 싶다. 그 오래 달리고 싶다는 말은 할머니가 될 때까지 달리고 싶다는 말이다. 어쩌면 최고 빨리 달리거나 최장거리를 달릴 수는 없지만 최고령의 러너는 가능할지도 몰라서 목표를 오래 달리는 것으로 설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최소한 아주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나는 100살에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다. 최고령은 아니다. (찾아보니 지금까지 최고령 풀코스 마라톤 완주자는 111세라고 한다.) 누군가 달리며 나에게 물어볼 수 있다. 뭐라고 물어볼지는 몰라도 나는 대답할 것이다.


"I am runner, I am happy"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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