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과 원하게 되는 것
수 없는 밤들이 지나가고 어쩌면 오늘 하루도 똑같이 반복될지도 모르지만 혹여나 오늘 하루는 다를까 기대를 품어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바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을까. 마음에 품었던 것을 감히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는 과연 알고 있을까? 내가 원하고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성실함’을 가지고 있다. 한 번 선택한 일은 꾸준히 하고 성실하게 임한다. 그런데 내가 이 ‘성실함’을 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내가 순수하게 이것을 원했는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주어진 임무를 책임감을 가지고 해 나가고 맡은 일은 꼭 해야만 하는 나는 가끔 이 ‘책임감’이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바람이었는지 아니면 주위 환경과 사람들에 의해 원하게 된 가치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나는 이 두 가지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 감사하며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가장 원하고 바란 것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기에 궁금하다. 내가 가장 원하던 것을 가지면 더 기쁘고 감사할까.
어린 날, 나는 그다지 가지고 싶었던 것은 없었다. 그걸 가지지 못해서 울고 불고 떼쓴 기억도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싶은 걸 가졌고 어떠한 불만과 원망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가진 기분을 모른다. 무엇을 사던 고르던 입던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또 의심을 했다. 내가 정말 원한 것인지 정말 필요한 건지 계속해서 물었다. 하지만 답은 내릴 수 없었다. 내가 정말 원한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나는 이 답이 없는 딜레마를 꾸준히 또 끝없이 하고는 한다. 내가 원하는 걸 가졌을 때의 감정을 나는 과연 알고 있는가? 나는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순수하게 원한 적이 없었던가? 내가 정말 원하고 바라는 건 무엇인가? 나의 삶에 있어서 내가 바라는 가치는 무엇인가?
짧게나마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가졌을 때의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걸 가졌을 때는 더 이상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게 된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가지고 싶었던 드레스를 손에 넣었을 때 나는 그걸 원하지 않게 되었다. 찰나의 행복이 스치고 간 자리에는 더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자리 잡게 된다는 걸 나는 미처 몰랐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없는 게 아닐까? 계속해서 신기루만을 좇는 것은 아닐까? 내가 정말 원하고 바라는 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내가 정말 원하고 바라는 것은 없다고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정말 원하고 바라던 것이 사실은 없었던 거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성실함’과 ‘책임감’은 어쩌면 내가 순수하게 내 의지로 원한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치를 내가 원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게 없을 뿐이지 그것들을 원하지 않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드레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싫어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처럼 ‘성실함’과 ‘책임감’을 원한 적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걸 원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말이다. 순수하게 내 의지로 그 가치들을 원한 건 아니지만 내가 그 가치들을 품고 있는 것에 내 의지가 조금도 없다고 말할 순 없는 거다. 나는 ‘성실함’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순수하게 원하지는 않지만 품을 의지는 있기에 나는 이 두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게 되는 그 찰나부터 나는 그들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삶에 있어서 내가 바라는 가치는 무엇인가? ‘성실함’과 ‘책임감’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가치로 내가 원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이 두 가치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갖기로 ‘선택’하고 내 의지로 이것들을 품을 때, 나는 그것들을 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는 가치가 무엇인지는 내가 그것을 품고 선택하는 것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내가 바라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심하고 찾기보다 내 앞에 놓여있는 가치를 선택하고 품기를 내 의지로 결정한다면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나의 삶에 있어서 바라는 가치가 아닐까?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기보다는 세상의 무수한 가치들을 앞에 두고 내가 그 가치를 갖기로 ‘선택’하고 ‘결정’할 때, 나는 그 가치들을 원하고 바란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즉 내가 원하는 것이며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내가 앞으로 원하게 될 것과 지금은 원하지 않는 것들이다. “수 없는 밤들이 지나가고 어쩌면 오늘 하루도 똑같이 반복될지도 모르지만 혹여나 오늘 하루는 다를까 기대를 품어본다”. 이 말의 모순은 '오늘이 똑같이 반복될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다를까 기대를 품는다는 것'에 있다. 수 없는 밤들이 지나갈 때 오늘의 나는 절대 어제와 똑같을 수 없다. 어제의 내가 원하는 것과 오늘의 내가 원하는 것은 다르기에 나는 어제와 오늘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