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부신 성과에 찬사를
세상에서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은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가르친다. 어른들은 항상 노력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그 말을 믿고 노력한 어린이들은 손에 꼽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적에 피땀 흐르도록 노력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발레리나 강수진, 축구선수 박지성,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 등 꾸준한 노력의 산물을 보여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도 혹시나 나도 노력하면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다. 어린이 위인전이나 명작동화 등을 보면 꾸준히 노력하는 자들에게 큰 상이 내려지는 걸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모두가 알만한 이야기인 ‘토끼와 거북이’처럼 꾸준히 노력하는 거북이를 이기지 못한 토끼는 나에게 이유 모를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개미와 베짱이’는 혹시 내가 배짱이가 될까 걱정과 불안이 나를 휘감았다. 그렇게 나는 ‘노력하는 거북이, 배짱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나는 노력하는 것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자리인 것 같았고 사람들은 내가 실력이 늘지 않는 건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나에게 ‘노력’이라는 단어는 무서운 단어가 되었다. 그 당시에 내가 무엇을 그렇게 노력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지금에서야 깨닫는 건 내가 그때 ‘성공’하는 사람들처럼 그만큼은 노력하지는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내 노력의 산물은 찾아보기 힘든 건지도 모른다. 한때 나는 피겨선수를 꿈꾸었다. 김연아 선수처럼 되고 싶었던 마음이 컸고 그래서 학원을 다니면서 배웠는데 도저히 김연아 선수가 했던 연습량만큼 할 생각도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2년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강수진 발레리나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5학년으로 올라가던 해에 발레부 자체가 없어져 흐지부지 나의 꿈도 먼지처럼 흩어져버렸다. 내가 진정으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면 발레부가 없어졌다고 그만두지 않았을 테지만 그만큼의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언제는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나이에는 다들 한 번쯤 꾸는 꿈이 아닌가 싶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이돌이 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몰랐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댄스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혹독한 가르침과 선배들의 기강에 나는 뒤꽁무니 빼며 쫓겨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르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배우가 되겠다고 나섰다. 연기학원도 알아보고 방과후면 친구들이랑 같이 연기연습을 했다. 그 당시에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한창 유행이었는데 배우 전지현의 연기를 같이 따라 하고 연습했다. 여기서 내가 아직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행보를 밝히자면, 연기학원에 지원해서 합격통지를 받은 순간 나는 도망쳐버렸다. 학원 수업 당일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배우의 꿈을 이뤄내지 못했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내가 생각하는 ‘노력’의 정의를 생각해 보자면 나는 ‘노력’을 노력해서 얻어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노력’이라는 것을 모른다. 피땀 흐르도록 노력한다는 말, 노력의 산물이 있다는 말, 노력으로 하지 못하는 건 없다는 말 모두 나에게는 그저 말뿐인,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이다. 내가 내 손으로 한 번도 일궈내 본 적 없는 ‘노력’이다. 나는 말로만 ‘노력’한다고 하며 실제로는 ‘노력’의 단계까지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 눈에 보이는 무수한 직업을 갖기까지 뼈를 깎는 노력과 시간을 쏟아낸 사람들을 존경한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일을 하고 있을지언정 그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를 나는 감히 예측하지도 못하기에 누군가의 위치를, 자리를, 입지를 탐내고 무시하기에는 내가 아직 많이 어리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노력한 적이 없는지도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가 나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의 노력을 인정할까. 작지만 어떤 성과를 얻기 위해 노력한 적이 나는 한 번도 없었는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성과가 아니라 나 자신이 납득할만한, 인정할만한, 칭찬할만한 성과는 내 인생에 무수하게도 많다. 다리 찢기에 처음 성공한 순간, 연주하고 싶었던 곡을 피아노로 완곡했던 순간, 혼자 밥을 해 먹었던 순간, 처음으로 100점을 맞은 순간. 이런 순간순간들을 위해 나는 수많은 시간을 노력했고 연습했고 공부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에 조금 다른 질문을 하고자 한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노력’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생각했던 ‘노력’은 사람들이 인정할만한 큰 ‘성과’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노력’이라는 단어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내가 피겨선수, 발레리나, 아이돌, 배우를 꿈꿨다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 당시에 내가 이루어냈던 작은 성과들을 비로소 나의 ‘노력’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노력이라는 건 크고 작은 성과를 떠나 내가 무언가를 꿈꾸고 즐겼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세상이 인정할만한 큰 성과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순간 이뤄냈던 나의 성과를 안다. 모든 사람들에게도 내가 경험한 그 순간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한 노력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인정할 수 있다. 그 순간을 아는 건 순전히 ‘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