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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해야 하는 이유

내가 하는 건 판단일까 차별일까

by 에이브 Ave


"판단하는 건 나쁜 거야!” “남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지!” "그러다 나중에 너도 어디 가서 판단당한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들이다. 이렇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판단’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외모로 남을 ‘판단’하는 건 잘못되었다거나 함부로 남에 대해 ‘판단’을 내리면 실수할 수 있다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판단’이라는 의미는 부정적이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제대로 알고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단이라는 게 무조건 나쁜 것이기만 할까? 판단의 의미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의미일까? 어떻게 하다가 ‘판단’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판단은 평가와 어떻게 다르며 왜 평가는 긍정적이게 사용되고 판단은 부정적이게 사용되는 걸까?


판단이라는 건, 어떠한 기준과 근거에 의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즉, 나의 친구의 옷차림에 대해 판단을 할 때에는 나만의 기준과 근거를 가지고 친구의 옷차림이 트렌디한 지 올드한지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편, 평가의 의미는 어떠한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는 의미로 내 친구의 코디를 평가할 때에는 옷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 값을 매기는 것이다. 의미로만 보자면 판단과 평가 둘 다 그 대상에 대한 ‘생각’에 그치지 않는다.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거나 대상을 상대적 기준과 근거로 결정을 내리는 일 모두 각자의 생각 안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규명한 가치와 단정지은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것도 판단과 평가일까?


나는 대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일하고 있는데 같이 일하고 있는 한 친구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남을 판단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해?”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판단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이 판단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듣자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판단’이라는 단어가 과연 본래의 의미에 맞게 사용하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판단’이라는 단어가 정작 의미하고 있는 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데 우리가 부정적이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곧바로 나는 영어로도 판단과 평가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판단은 영어로 Judgement라고 하는데 특이한 점은 심판, 판결이라는 유의어와 더불어 의견, 생각과 동의어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판단은 판결 혹은 심판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면 의견, 생각의 의미로도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판단을 하는 것이 어쩌면 단순히 우리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시 평가와 판단으로 돌아가 우리의 생각안에서 그치는 평가와 판단이 만약 우리의 생각에서 벗어나 표현하기 시작한다면 과연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그러나 생각안에 그치는 판단이던 밖으로 표현하는 판단이던 우리는 이러한 판단을 부정적이게 사용할지 긍정적이게 사용할지 또 부정적이게 받아들일지 긍정적이게 받아들일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기준과 근거에 맞게 생각하고 결정 내리는 것도 본인의 권리이며 그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권리이다. 그렇기에 판단할 권리를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앞서 친구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판단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우리는 서로가 내리는 판단을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 판단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친구가 다시 말했다. 우리가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판단에 숨겨진 ‘차별’이라고.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판단’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빙자한 ‘차별’을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차별과 판단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나는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만의 기준과 생각으로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나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 나의 판단은 아직 '판단'이다. 하지만 내가 나의 판단으로 사람들을 나눠서 누구는 햄버거를 못 먹게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의 판단이 아닌 차별이다. 나는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 자유가 있다. 내가 자유롭게 표현한 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표현과 판단을 막는다면 그것은 차별인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판단은 사실은 차별이다. 그리고 판단은 본인의 몫이며 본인의 자유다. 나만의 기준과 생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의 판단이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막을 때, 차별이 된다. 내가 논리적인 사고로 기준과 생각을 세운다면 나의 판단을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기준과 생각이 올바른지, 논리적인지, 합당한 지 계속해서 생각하고 판단할 필요는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판단에 앞서 우리가 세운 기준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것으로 우리의 판단에 정당성과 합당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점검을 통해 정당하고 합당한 판단을 내리려고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차별이 아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KakaoTalk_20231216_220925246_26.jpg 나의 판단은 합당한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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