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순간을 처음으로
6살 때였던가, 부모님 손잡고 인생 처음으로 추어탕집에 갔었다. 물론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추어탕이지만 처음에는 추어탕 국물에 둥둥 떠다니는 가루가 낯설게만 느껴졌었다. 6살이던 나는 추어탕 재료가 무엇인지 몰랐고 엄마가 잘 비벼주신 추어탕 건더기랑 밥만 깨짝깨짝 먹고 있었다. 건더기랑 밥만 먹던 나에게 아빠가 드시던 통추어탕이 눈에 들어왔고 이상한 생선이 둥둥 떠다니는 게 신기한 나머지 호기심으로 통추어탕을 먹어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지만 그때는 미꾸라지를 먹었다는 것이 되게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그래서 다음날 친구들한테 자랑하듯이 미꾸라지를 생으로 먹었다고 말하던 기억도 난다. 물론 요리된 미꾸라지였지만 그때 나에게는 살아서 펄떡거리는 미꾸라지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처음으로 접한 추어탕의 신기한 맛에 한동안 추어탕 글자만 봐도 그때 그 생각이 나서 괜히 웃음이 났다. 추어탕이 미꾸라지로 만들어졌다는 걸 모른 채 추어탕에 우연히 들어있던 미꾸라지를 생으로 먹었다는 게 나의 업적 중 하나라고 자부했다. 추어탕에 대한 처음 기억이 나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심어주었고 그로 인해 추어탕은 나에게 ‘도전’을 알려준 요리가 되었다. 그 후로는 처음 접하는 요리에 항상 도전하는 자세로 임하기 시작했다. 언제는 아빠가 홍어를 사 오셨다. 아빠가 야무지게 싸주신 홍어삼합 앞에 역시나 나는 당당히 손을 들고 나섰다. 김치와 홍어를 잘 싸서 입에 넣어주셨는데 그때의 톡 쏘는 이상한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먹고 나서도 한동안 그 맛이 혀끝에 남아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한 번쯤 시도해 본 것에는 아직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나는 맛없는 음식을 도전할 대상으로 보았기에 6살 이후부터는 반찬투정 한 번을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대만에 놀러 갔을 때도 취두부를 사서 먹어보았고 음식에 고수를 왕창 넣어서 먹어보기도 했다. 물론 취두부랑 고수는 난이도가 급상이었기에 다시 먹을 생각은 없지만 도전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다. 나에게 음식의 첫인상은 상당히 우호적이었기에 나한테 있어서 다양한 음식을 시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어떤 대상에 대한 첫인상을 만들어가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다. 처음 시도한 무언가가 잘 풀리지 않았거나 안 좋은 경험과 감정을 안게 된다면 그와 관련된 다른 것들도 시도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지금까지도 시도하는 게 어려운 것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노래를 부르는 것을 꽤 좋아했었다. 부모님 앞에서 공연도 하고 유치원에서 율동을 배우며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노래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중학교 1학년 가창평가에서 큰 창피를 당한 후로 노래 부르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즐거운 나의 집'을 연습해서 부르는데 집에서는 잘만 불러지던 동요가 다른 아이들 앞에서 부르려니 첫 음부터 삑사리가 나는 게 아닌가! 키득키득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나는 엉망진창으로 가창평가를 망쳐버렸다. 얼굴이 시뻘게져 자리에 돌아간 나는 다시는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며칠 전, 대학교에서 노래를 부르는 대회가 있었는데 친구들이 다 같이 나가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나가게 되었다. 친구들과 같이 부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안 나왔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아직도 노래를 힘들어하는 건 역시 중학교 때 가창평가 때문일까? 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노래가 힘든 것 같다. 이렇게 창피했던 경험, 실패했던 경험, 혼났던 경험 등 처음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현재의 감정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처음은 언제나 참 소중하다. 처음 걸음을 떼었던 순간, 처음 ‘엄마, 아빠’를 부르던 순간, 처음 자전거를 혼자 타던 순간. 소중한 처음의 기억이 있기에 오늘날의 나도 그 기억으로 걷고 뛰고 말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처음’을 위해 수만 번의 실패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과 시도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기억하는 ‘처음’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한 부정적인 처음은 사실 우리의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창평가에서 창피를 당한 순간을 나의 처음으로 여기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떨며 신나게 동요를 부르던 그 순간을 나의 처음으로 여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 깊이 뿌리내린 소중한 그 순간이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용기를 줄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마음속에, 감정 속에 깊이 우리의 진정한 ‘처음’을 깊이 새길 때, 우리는 비로소 처음 이전의 창피하고 실패했던 경험과 감정을 소중한 처음의 선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