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싶지 않다
사실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 받아온 넘치도록 과분한 사랑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랑을 마주하는 것보다 그동안 외면해 온 무책임함을 마주하는 것이 더 두려운 걸 지도 모른다. 사랑을 받기보다 외면하는 게 더 쉬웠던 이유는 무책임했기 때문에, 어렸기 때문에,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들조차 이제는 변명이 되어버린 이유는 내가 아직도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이 당연한 줄 알았다. 이제는 거리감이 생겨버린 누군가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순간에도 나는 그 사람의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연히, 마땅히 나에게 줘야 할 관심을 그리고 사랑을 주지 않기에 섭섭함을 느끼고 있으니까. 이렇게 섭섭함을 느낀다면 너무 이기적인 거겠지.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를 향해야 하는데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아니,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인 건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어도 두려움이 더 커서 사랑을 돌려주지 않았을 거다. 애초에 상대방의 사랑을 외면해오고 있었던 건 두려웠기 때문이니까. 사랑에 익숙해져서 많은 것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고 그 사람이 익숙해져서 함부로 대할까 봐 두려웠고 그 사람이 떠나갈 때, 너무 아플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껏 외면해오고 있었다.
사랑은 서로가 노력해야 하는 건데 두렵다는 핑계로 노력 한 번 하지 않았다.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느라 상대방의 사랑을 등한시했던 건 사실이다. 내가 너무 두려워서 불안해서 계속 외면해 오던 건 사실이다. 있었다가 없는 것보다 계속 없는 게 더 나으니까. 그러면 덜 상처받으니까. 그러면 덜 아플 테니까.
그렇게 내가 외면해 오던 사랑을 마주한다. 등한시해 오던 사랑을 바라본다. 그때의 나는 어리석었던 걸까 지혜로웠던 걸까. 그동안 흘려보낸 시간과 인연들이 과연 나에게 실이 될까 득이 될까. 이 순간에서도 계산하고 있는 나는 끝까지 사랑을 사랑하지 않으려나보다.
내가 하고 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고 억압이었다는 걸 그동안 외면해 오던 사랑이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내가 무시했던 사랑이 나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사랑을 강요했고 강요받았고 그렇게 원하지 않는 도움을 주고받으며 억압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틀렸다는 걸,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뒤틀린 마음을 갖는다. 내가 옳았고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외치며 비뚤어진 나의 모습을 또 외면한다.
모두들 잘 사는 것 같은데 모두들 현명한 선택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바보같이 나 자신을 사랑할 줄도 남을 사랑할 줄도 몰라서 이렇게 한 곳에 머물러있다. 내가 놓쳐왔던, 외면해 왔던 사랑들을 그리고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막상 그들이 나의 앞길에 방해가 될까 봐 쉽사리 그들을 다시 찾아갈 용기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되돌아가지도 못해 이곳에 서있다. 외면한 사랑을 마주 보고 후회로 얼룩져버린 나의 일그러진 모습을 외면하고 싶어 발버둥 친다.
사랑하고 싶지 않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외로워지기 싫어서 사랑하고 싶지 않다. 상처받을걸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온 마음을 주는 건 너무 어리석으니까. 그래서 외면한 사랑을 마주하고 그렇게 후회하면서도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은 너무 어려우니까. 사랑은 풀리지 않는 난제니까. 감정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하니까.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풀리지 않는 난제에 매달려 오늘을 낭비해서는 안되니까. 사랑을 할 시간과 여유 따위가 없는 건 사랑과 씨름할 힘이 없어서. 사랑이 그렇게나 어려운 거라서 그렇다.
나는 그렇게 외면한 사랑을 마주한 순간에 사랑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