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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25. 2022

기술은 몰라도 너를 알잖아!!

엄마는 소통을 하고 싶긴한 건가

밥 숟가락을 들때서야 눈 마주치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엄마가 있다. 반대로 그때만이라도 편하게 밥 먹고 싶은 아이가 있다. 때와 장소가 중요한 소통에서 이미 엇갈린 것이다.


  가끔 운동이 끝나고 아빠와 들어오는 날이면 저녁 6시반에서 7시사이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온다. “손 씻고 빨리 밥 먹어. 씻고 수업할 것이 많아! 말할 시간에 행동해!!” 일주일 짜여진 빡빡한 스케줄에 맘이 급해진다. 현관으로 달려가 안아주고 오늘의 안부를 묻기보다 빨리 시간 안에 먹여야 한다는 강박으로 조급하다.


간단히 손만 씻고 식탁 앞에 앉기도 바쁜 아이를 보고 밥이 입에 들어가기 바쁘게 질문들이 터져 나온다. “오늘은 어땠어? , 저번에 한XX랑 시합했니? , 몇 대 몇이야? 오늘 서브는 잘 들어갔니? 최소한 그 아이한테는 지면 안되지!! 네가 해온 시간이 있는데…” 웬만한 래퍼보다 빠르게 속사포로 터져 나온다. 10살짜리 어린아이도 못 참겠는지 숟가락을 다시 내려 논다. “말하기 싫어!” 생각해보면 나 같아도 말하기 싫겠다.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선 “ 내가 이렇게 말하잖아? 그럼 엄마는 이렇게 말할 거잖아!!” 라고 질문의 답과 나의 답까지 예상하는 아이를 보고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안타까운 건 여전히 너무나 궁금한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 기술은 대체 왜 안 되는 것 같니? 전에는 잘됫었잖아! 안 되는 기술 쫓아가기도 바쁜데 잘되는 것도 안되면 어떻게!!” 글로 써나가니 숨이 턱턱 막힌다.


엄마는 기술을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싫다는 아이에게 기술을 몰라도 보는 눈은 있다며 계속해서 지적을 해댔다. 내가 공들인 시간과 노력, 물질까지도 아이가 반항하거나 내 기준에서 답답하다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들이댔던 것 같다.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화났으면서 엄만 소통하고 싶었다.


마음은 아이가 주체가 되어 이야기하게 하고 싶었다. 마음보다 말이 앞섰었다.  노력과 시간들을 아이가 빨리 보상해주길 랬다. 그러다 김미경 강사님의 강의가 생각이 난다. 전에 본인의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 어떡하니!’ 아니라 ‘ 어떡해!’라고 말했었다고 그것이 지나 보니 가장 미안했다고 하시던 말이 생각이 난다. 아이의 마음보다 남들에게 어떻게 말하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역시도 내가 먼저였다.


운동선수를 수년간 하다 그만두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꿈꿀 수 있는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부상이든 멘탈이든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겨낼 단단함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온전히 선수를 믿어주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향한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조건 없이 믿어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부모이다.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안된다. 그 놈의 기대 때문에 실망만 커져간다. 소통하고 싶다. 그저 친구처럼 웃고 같이 고민하고 슬퍼해주고 싶다. 이 마음으로 질문의 내용을 바꿔보았다.


‘오늘은 특별하게 재밌던 일 있었어?’ 일과가 궁금할 때 물어본다. 처음엔 귀찮은 듯 모른다는 태도를 보이다 결국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 논다. ‘너 기술이 좀 멋있어지고 있잖아. 오늘은 어떤 기술이 멋있었어?’ 물어보니 잘된 것과 안된것을 같이 털어놓았다. 매번 라이벌 친구와 이겼는지에 대해 궁금했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묻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기면 본인이 먼저 누구와 시합했다고 말해주었고 묻지 않으니 물어봐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경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또 그 친구와 본인을 비교해 가며 평가하고 있었다.


믿고 싶지만 불안했고 알고 있지만 확인하고 싶던 엄마의 시간들을 내가 아이가 되어 듣고 싶던 질문과 말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니 한결 소통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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