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에서
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다른 존재에게 친절한 태도를 가지고 공감하는 것, 그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전부입니다.
어두운 아침의 파고드는 추위를 막기에는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계절입니다. 첫눈이 오며 하얗게 덮인 동네를 보자니 겨울이 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잡념이 항상 제 뒤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한 해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떠올리면, 남들보다 보잘것없는, 귀찮고 버거운 감정을 견딘 시간만 떠오릅니다. 좋은 일들은 막상 떠올리자니 전생의 환상 같아 보이죠. 아마 다시 찾아오는 내년도 별 볼 일 없는 일 년이 아닐까, 막막한 생각은 한 움큼의 눈처럼 내리다가 온 마음을 뒤덮습니다. 고요한 겨울 아침의 상념은 마음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면 다시 주어지는 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몸부림이 매일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미래를 걱정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면서 후회나 자기 비하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왜 일 년이라는 ‘시간의 끝’은 우리를 침울하게 만들까요?
인간의 가장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 있다면, 추상적 관념인 시간에 자신의 희망 사항을 강요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올해 동안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던가, 왜 아직도 남들을 앞서 가지 못하냐는 등, 인간은 시간에 자신의 욕망을 끼워 맞춥니다. 우리는 멋대로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 일이라는 시간의 틀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신이 완벽하게 변하기를 바랍니다. 인간들은 왜 세상에 존재할 뿐인 시간으로 틀을 만들어, 자신들의 삶을 평가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요. 흘러가는 시간이 존재할 뿐인 세상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 시간은, 이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랄까요? 한낱 인간이 세상의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 해의 시작이나 마지막에서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저 우리가 좋은 존재이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사회는 때론 조급하게 흘러가는 잿빛의 세상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다른 존재에게 친절한 태도를 가지고 공감하는 것, 그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전부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쌓아가다 보면, 우리는 마땅히 좋은 결과와 가치를 얻게 됩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며, 이미 우리는 충분히 많은 일들을 이루었고 하루를 살아가는 데 좀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시간을 쌓아가는 도중에 놓인 ‘일 년의 끝’과 자신의 흘러간 시간을 ‘해내지 못한 것들’로 정의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쌓아 올린 가치를 인식하고, 세상에 애정을 가지며 좋은 사람이 되려는 태도. 이것이 우리가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고 함께 내일을 맞이할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며 12월의 시작이자 한 해의 마지막에 놓인 지금, 못다 한 일에 미련을 가지지 않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더 추워질 날들을 견뎌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