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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Sep 02. 2024

60평 아파트에서 단칸방으로 빈부롤러코스터 탄 영숙 씨

엄마는 늘 그것을 간절히 찾곤 했다.  

"영주야! 리모컨 어디에 있니? 빨리 찾아서 엄마한테 좀 갖다 줘!"

안방에 최고급 가구와 대형 티브이가 있어도 리모컨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다 무용지물이다.

난 엄마의 계속되는 리모컨 분실사태의 원인으로 넓은 집을 탓했다.

안방리모컨은 물론 거실 리모컨까지 행방이 묘연해질 무렵 아빠와 나는 특급처방을 내리게 되었다.

안방 리모컨은 안방침대 머리맡에 그리고 거실 리모컨은 소파에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 놓았다.


엄마의 패물함은 늘 화려한 보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화려한 장신구가 어울리는 미모를 겸비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다이아부터 진주까지 갖가지 종류의 액세서리를 즐겼다. 늘 엄마의 손가락에는 예쁘고 화려한 반지가 껴있었고 길고 예쁜 목에는 목걸이가 반짝였다.

이 모든 것은 엄마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표현이었다.

엄마를 사랑했던 아버지는 엄마가 원하는 모든 것이든 다 사주고 싶어 하셨다.

그것이 엄마를 향한 아버지만의 사랑의 표현방식이었다면 아버지는 원 없이 그 사랑을 표현하셨던 것 같다.

성실한 가장으로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돈을 벌어 가정을 이끌어 나갔다.

오빠와 내가 조금 성장한 후에는 엄마도 함께 아버지의 사업체를 도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

IMF외환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승승장구하던 아버지의 사업체가 어느 날 아침 바닥을 쳤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에 화재까지 발생하여 굳건히 서있던 아버지의 회사가 잿더미로 변했다.

이 모든 것이 '찰나'였다.

우리의 아름다운 길고 긴 인생 가운데

그저 단 '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60평 아파트에서 고모네 집 바로 옆, 월세를 놓던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 동네에서 나름 핫했던 얼음이 나오던 우리 집 미제냉장고를 처분하고 작은 냉장고를 들여놓았다.

어차피 필요하니 가져온 최고급 가구들은 그 단칸방과 어울리진 않았지만 우리와 함께 그곳에 정착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겪은 우리는 주춤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각자의 할 일을 해 나갔다.

부모님은 늘 일하던 페이스 대로 출근을 했고 오빠도 새벽부터 일터에 나가 돈을 벌었다.

나는 야심 차게 떠났던 영국유학을 고민 없이 포기하고 돌아와 진입장벽이 낮은 학원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늘 끈끈했다.

우리는 늘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우리는 늘 네가 더 웃기나, 내가 더 웃기나 대결을 펼치곤 했다.

우리는 늘 집이 떠나가라 웃곤 했다.

우리는 늘 한 박자 늦은 아빠의 웃음에 더 크게 박장대소하곤 했다.

우리는 늘 엄마가 정성스레 요리한 갖가지 음식을 맛있게 먹곤 했다.  

우리는 늘 퇴근길 아버지의 손에 들려오는 과일 또는 특식을 즐기곤 했다.

우리는 늘 감사와 감격을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감당할 수 없는 큰 폭풍우가 몰려와도 우리 넷은 손 꼭 잡고 열심히 노를 저어 육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현모양처 56년생 영숙 씨 덕분이었다.

그리고 늘 '영주야, 네 엄마는 말이야, 를 시작으로 엄마의 장점만 골라 얘기하던 아빠 덕분이었다.

난 평생 아빠 입에서 엄마의 단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 눈에도 훤히 보이던 엄마의 단점을 아빠는 늘 장점으로 승화시켜 내게 말하곤 했다.



각자에게 주어진 본분을 성실히 완수하고 다시 새 아파트로 입주하던 날이 생생하다.

삶의 보금자리가 조금 흔들려도 결국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면 될 것이다.

원망하며 주춤해 봤자 결국 아프기만 하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려보니 평범하고 사랑 넘치던 가정환경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 평범함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56년생 영숙 씨와 아빠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었을지 생각하니 코 끝이 찡해온다.


사랑받고 자란 나는 사랑할 줄 안다.

이 세상에 사랑밖에 줄게 없는 56년생 영숙 씨에게 사랑만 듬뿍 받고 자랐으니 당연한 이치다.


사랑이 전부다.

그저 사랑 하나면 된다.

오늘도 당당히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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