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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Aug 20. 2024

온 가족 미국행을 단칼에 거절하다! 로맨티스트 영숙씨

"영주야, 아빠 밥 먹었냐고 물어볼래?"

평안했던 저녁이 엄마의 말 한마디로 냉기가 돌았다.

나는 엄마 바로 옆에 있는 아빠한테 묻는 척을 하며 윙크를 했다.

행동거지, 말 한마디 조심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나에게도 불똥이 튈지 모른다.

"아빠 저녁 안 드셨다고 하셨어요."

"못살아, 내가 정말 이 시간까지 밥도 안 먹고 뭐 했다니? 응? 정말 내가 미쳐!"

엄마는 냉랭한 몇 마디를 던지시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빠의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작 몇 분만에 아빠를 위한 저녁 만찬을 차려내셨다.

"영주야, 아빠 밥 먹으라 그래라!"



56년생 영숙 씨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동시에 그녀는 화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56년생 영숙 씨는 이러한 '사랑'과 '화'라는 양가감정을 그녀의 윤택한 삶 가운데 놀랍게도 잘 사용한다.

49년생 내 아버지는 평생 가족에게 성남, 화, 불편함, 서운함 뭐 이런 종류감정을 결단코 단 한 번을 내보인적이 없다. 딸인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 큰 잘못을 저지른 나에게 아버지는 나를 혼내기는커녕 장장 5장의 편지를 써서 몰래 내 방에 놓아주었다. 꾹꾹 눌러쓴 5장의 편지를 읽으며 다시는 부모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극단의 성향의 남녀가 만나 45년을 함께했다.

길고 긴 이들만의 45년의 사랑의 세레나데의 시작은 수십 년 전 한 회사였다.

그 누구보다 성실했던 아버지와 부족함 없이 자란 엄마는 회사에서 만나 그들만의 위대한 스토리의 한 줄을 써 내려갔다.

그 무렵 외할머니는 그 당시 흔치 않던 미국으로의 이민을 준비 중이었는데 혼기가 꽉 찬 영숙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이유도 모른 채 내 뇌리 속에 지금까지 박혀 있는 그 이름, 병철이 아저씨라는 의사와의 결혼을 전제로 한 이민이었다.

56년생 영숙 씨는 안락함 또는 평안함 보다는 열정과 뛰는 가슴을 택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대내외적으로 노고를 인정받으며 그에 합당한 높은 월급을 받는 의사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나름 평탄한 삶을 살아가기를 택하기보다는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 5명을 둔 장남으로서, 고구마 줄기를 캐 먹으며 자랐으며, 동생들을 위해 감을 따 주기 위해 감나무에 올라갔다 떨어져 등에 큰 상처가 선명히 남아있고, 성실함 외에는 세상에 내세울 것이 없었던 아버지를 후회 없이 택하여 야반도주까지 감행했다.


서로의 모든 것을 주고도 아깝지 않을 그 순수하고도 농염했던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실함 외에는 세상에 내세울 게 없던 아빠는 성실함 하나만으로 세상과 정면승부하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했다.

56년생 영숙 씨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비즈니스의 특성상 생각보다 잦은 up and down에 영숙 씨는 울고 웃지만 전 세계가 흔들렸던 IMF 외환위기 때도 아버지의 사업체는 굳건했던 걸로 보아 그녀의 선택이 맞았다.

여전히 아버지의 꾹 닫은 입은 56년생 영숙 씨의 속을 뒤집어 놓지만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배우자의 존재자체가 큰 유익이 되지 않는다 여겨지는 작금의 시대에 이런 순수의 극치인 사랑의 롤모델이 한 번쯤은 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우리 부부에게만큼은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56년생 영숙 씨와 49년생 수환 씨의 러브스토리.

그저 사랑하나로 충분한 이 두 남녀가 백년해로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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