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단순해졌다.
목요일 아침 나와 남편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일찍 데려다주고 가정법원으로 향했다.
9시 20분 가정법원 협의이혼 대기실에는 20여 쌍의 부부들이 모였다.
나란히 앉은 부부도 있고 앞 뒤로 앉은 부부도 있고 모르는 사람인 듯 멀찍이 떨어져 있는 부부도 있다.
공익근무요원이 부부 이름을 각각 부르면 엉거주춤 두 명이 일어나는데
그들이 함께 앉았는지 따로 앉았는지를 보는 것도 애처로운 구경거리였다.
나와 남편 이름을 부르자 나는 등받이에서 살짝 허리를 떼고 고개를 내밀었고
남편은 내 신분증을 받아 자기 것과 함께 공익요원에게 내밀었다.
판사님이 10시에 오시니 대기하라고 했다.
번호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법원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법원 밖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마시고 협의이혼법정 앞에서 대기했다.
법원이 어느 부부를 먼저 이혼시켜 주실지 모른다.
한참 걸리는 부부도 있고 금방 나오는 부부도 있고 법정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 걸까.
3개월 전 협의이혼을 신청하러 왔을 때 1시간 자녀양육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순서를 기다렸다가 전문상담위원에게 상담도 받았다. 그것이 절차라고 했다.
아이에 대한 친권, 양육권, 양육비 모두 정리해서 갔고 이혼사유와 이혼의사도 확실했다.
전문상담위원은 우리의 이혼 사유를 듣고 별 다른 할 말이 없었는지
그저 세상 사는 이야기 소소하게 하다가 끝나버렸다.
이제는 상담위원이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어야 하는 걸까?
우리 부부의 순서가 되었다.
법정이 주는 무게감일까.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높은 곳에 앉아 있는 판사는 우리에게 '아이가 많이 어리네요. 이제 말도 곧잘 하겠네요'라고 말을 꺼냈다.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말았다.
판사는 지금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헤어지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또 열심히 살다 보면
서로에 대해서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했고 아이의 부모로서 열심히 살라고 했다.
우리는 5살 아이처럼 울먹이면서도 고분고분 '네' 하고 나왔다.
물론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저 인간을 다시 받아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라고 다짐했다.
눈물은 그것으로 끝이다.
지난 2월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고 4개월을 지내오면서 남편 앞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 앞에서 울지 않았다.
법정에서 울었으니 그것으로 내 애처로운 결혼 생활에 대한 위로는 충분히 한 셈으로 치자.
법원에서 양육비부담조서와 협의이혼확인서, 자녀 친권과 양육권에 관한 합의서를 받았고
이것을 구청에 가져다 내면 진짜 끝이다.
나는 남편을 싣고 바로 차를 몰아 구청으로 향했고 그것으로 끝내버렸다.
해장국집에서 같이 국밥 한 그릇을 먹었고 남편은 남은 짐을 싣고 집을 떠났다.
맨 끝방은 남편 방이었다. 아기 표현으로는 '아빠방'이었다.
남편이 사용하던 운동기구, 책상, 의자, 책장이 꽉 차 있던 곳이었다.
남편은 밤이나 새벽에 이 방에 몰래 기어들어가 SNS으로 뭇 여성들과 간질간질하고 달큼한 대화를 하거나
혼자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음침하고 너저분하고 먼지 가득한 이 방을 나는 애초에 버린 방으로 생각했었다.
남편은 짐을 하나둘씩 뺐고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는
신혼 때부터 썼던 책장과 책상, 내 책 몇 권이 덩그러니 남았다.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남편이 미처 못 챙긴 것들은 치우고 아빠방을 책방으로 바꾸었다.
8시쯤 일어나서 씻고 아기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 버스를 태워 보낸다.
9시부터 내 일을 시작하고 오후 5시 반이 되면 하원하는 아기를 데리러 간다.
아기와 저녁을 차려먹고 치우고 놀다가 씻기고 잠을 잔다.
아기가 일찍 자면 나는 유튜브를 보거나 밀린 일을 하거나 책을 본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다시 아침 8시가 된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아기와 논다.
이제 남편이 없다는 상실감과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삶이 단순해졌다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아! 이혼 후 열흘 동안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한번 있다.
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을 못 가는 데 애 볼 사람이 없다는 것!
남편은 키즈노트에 아이가 결석처리 되자 무슨 일이냐고 연락이 왔다.
애가 아프다고 하니까 자기가 오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진짜 괜찮았으니까.
열흘이 지나고 보니, 나와 남편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리적으로 이혼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그러고도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것은 오로지 한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공동목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