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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읽는다> 한강을 느꼈다.

한강의 대표 작품에 담겨 있는 시대정신에 더 같이 들어가는 해설서!

by 하다 Mar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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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섬세하게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흰> 해석 중에서    


           


허희 평론가가 기획하고, 그를 포함한 5인의 쟁쟁한 평론가들이 “한강”의 대표작 다섯 권을 해석한 해설서, 『한강을 읽는다』를 읽었다.     



      

읽었다고 말해도 될까? 

눈으로 읽었지만, 나의 뇌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작품 해설들을 따라가느라 바빴고, 

마음은 공감하고 감탄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며, 

심장은 갑자기 심하게 방망이질 치다가

간혹 차갑게 식어 무겁게 내려앉기도 했다.

이런 다이내믹한 상황을 그저 “읽었다”라고 표현하기는  무리가 있다.         


       

문학을 잘 모를 때, 그저 전공 관련 도서나,

간혹 재밌는 소설을 찾아 읽던 시절이었다.

부산인지 포항인지 혼자 장거리 여행에

지루함을 달랠 책으로 기차역 작은 서점에서 

우연히 잡은 책이

≪채식주의자≫였다.     



          

그 당시 구체적인 내 생각은 기억나지 않지만

‘몹시 불쾌함’이 나의 감상이었다. <1>

그래서 대단한 작가이라고 하지만 

나랑은 안 맞다고 생각했다.        



       

2019년부터 나는 책에 빠졌다.

게걸스럽게 읽었고

힘들었지만 정성껏 내 감상을 글로 쏟아냈다.

그러다 어느 날 만난, 

나를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던 책은

내게 ‘불쾌함’을 주었던 책의 저자인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였다.      




친구의 시체를 찾으러 강당으로 간 동호가

마주하는 참상,     

시체 더미 아래에서 두 번째 깔려 

“왜 나를 쐈지?” , “왜 나를 죽였지?”하고 

소리 없이 외치는 정배의 혼,     

몸서리치는 고문,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책을 덮고 도망갈 수 없었다.

<2>         



 

이 책을 읽고 나는 당연히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잘 알려지지 않아 어쩌면 더 원통할 역사,

주제 4.3을 만나야 했으니까.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몽환적인 느낌에

단단히 정신 고삐를 잡고 읽었지만

뭔가 완전히 소화하기 힘들었다. <3>    



           

가장 최근에 독모에서 ≪흰≫을 읽었다.

작가의 삶이 담긴 시라고 생각했지만

자전 소설이었다. <4>

‘흰’은 ‘하얀’과 또 다른 의미였다.      



         

≪희랍어 시간≫은 아직 읽지 못해

해설을 읽으며 어렴풋이 상상했다. 

그 두 인물을.             



   

여기까지 어떻게 보면 간단한 나의 ‘한강 작품 여행기’라 할 수 있겠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설서를 통해 알게 된 바를 쓰려한다.      


    

<1> 

≪채식주의자≫를 읽고 ‘몹시 불쾌함’을 느낀 이유를 김건형 평론가의 해설에서 찾았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그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나는 이러한 불편함을 피하거나 무시하기 말고 왜,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를 되묻고 의미화하는 작업이야말로 『채식주의자』를 더 깊이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_11         

 

단순히 영혜의 행위(비정상적으로만 보이는)에 집중한다면 이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몽고반점>은 특히 그 상황만 본다면 개인적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영혜는 “여성과 자연이 모두 착취당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소리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행위들을 이해하게 된다.         


 

<2>     


[살아남은 또 다른 인물 진수 형과, 선주 누나의 기억들은 내 눈을 통해 들어와서는 온몸을 마비시키고 심장을 격렬하게 흔들어대더니 마음을 잡아당겨 깊은 우물 속으로 처박아버렸다. 책을 내려놨다 들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한숨을 쉬었다 멈췄다 하게 된다.]     

     

3년 전, ≪소년이 온다≫를 읽고 쓴 리뷰 일부분이다.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기어코 끝까지 읽었다. 도망칠 수 없어서. 그 이유 역시 작가의 영리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너’를 호출하는 ‘나’를 표현에 드러내지 않는 1장의 서술을 읽으며 우리는 ‘나’로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너’는 ‘나’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나’가 부르는 ‘너’는 이 세상에 없을 때도 온전히 ‘너’로 다시 우뚝 선다.」 _103(성현아 평론가)              



      

<3>

≪작별하지 않는다≫를 소화하지 못한 이유는 “한강의 소설은 정밀”하기 때문이다.           


「정밀은 정교하고 치밀하고 자세하다는 뜻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총 3부 13개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락마다 자기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마치 입방체의 큐브 열세 개가 맞물리면서 커다란 하나의 큐브(소설 전체)로 결합하고 연결되는 형식이다. 각 큐브에는 서술자가 설계해 놓은 시간과 공간이 설정되어 있다.」 _182          



강경희 평론가에 의하면 한강 작가는 ‘독자가 빠르고 쉽게 자신의 소설을 읽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정지와 복귀, 다시 읽기와 재현을 통해 독자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겠다는 전략”이라고 한다. 이 소설이 향하는 지점을 독자가 더 적극적으로 찾게 만드는 작가의 선택인 것이다. 나는 더욱 천천히 다시 여러 번 읽으며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으려 노력했어야 했다.           



<4>


≪흰≫이 자전 소설인 이유를 허희 평론가의 해설로 이해하게 됐다. 평친클나쓰 공개토론에서 쓴 바 있다.          

「“자서전이라고 불리나 그때 사용되는 일인칭의 정체는 ‘나답지 않은 나’ 일 확률이 높다. (좋은) 자전소설은 이와 대비된다.... 핵심은 이렇다. 논픽션이 사실에 관한 경합이라면, 픽션은 사실에 감춰진 진실을 포착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는 것. 건조한 사실의 나열이나, 사실 규명에 복무하려는 목표를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고 명백하게 인식되는 것을 넘어 다층적 차원에 집중함으로써, 소설은 특유의 가치를 지닌다.” _144~145             

  

계엄 이후 한강 작가가 던진 메시지는 우리에게 엄청난 통찰을 가져다주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5.18과 4.3에서 이미 충분히 배웠다. 

다시없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시도하고 반성하지 않는 이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탄핵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이젠 비를 기다린다.

제발 느닷없이 전국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길.

제발 뜬금없이 헌재가 탄핵 선고를 해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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