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사로운 인간 Apr 18. 2024

2020년, 12월, 강력한 첫 회식

장거리 출퇴근 서사

수습기간이 지나고 그동안 출퇴근 거리를 빌미로 거절해 왔던 술자리를 더 이상 회피할 수만은 없었다. 열외 없이 전부 참가해야 하는 자리가 있었고 당시 가장 입사가 늦었던 사람 중 하나였기에 자리에 앉자마자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마셔야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땐 몰랐지만, 지나서 보니 그 자리가 술이 약한 이들에게 제일 취약한 자리에 나를 전략적으로 앉혔나 보다. 하드웨어로 뒤지지 않는 분들 사이에서 그들보다 빠른 속도로 마셨으니 몸이 버텨낼 일이 만무했다. 장소 또한 차를 타고 깊숙이 들어간 외진 곳이기에 중간에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점점 취기는 올랐고, 어느 순간 눈을 뜨니 다음 날이었다.

절대 지각은 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정시에 몸이 이끄는 대로 출근했다. 출근길 환승 때마다 화장실을 들렀고 편의점마다 숙취음료를 연거푸들이 켰다. 출근해서도 몇 번 변기를 끌어안고 토하기를 반복한 후에야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며 한 명씩 출근했고 팀장님이 평소보다 조금 늦게 오셨다. 나를 보며 빙그시 웃음을 보여왔다. 불안했다. '어제 많이 마셨죠?' 하는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평소 술버릇을 생각하면 사고는 안쳤을 것이고 뭔가 광대 비슷한 짓을 한 것만 같은데 전혀 기억이 없었다.

오늘도 조용히 담배타임에 따라나섰다. 곧이어 그 자리에서 실상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덩치가 두 배는 큰 옆 팀의 팀장님께 안겨 내 팀장에게 허공에 대고 발차기를 여러 번하고 있었고 입에는 '내가 언제까지 여기 다닐 줄 알고 막대하냐'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기분 나쁠 만도 한데 나쁘진 않았는지  연신 트집을 잡으며 그 영상을 여기저기 퍼다 나르기 바쁘셨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회사 내에서는 특이한 나의 캐릭터를 확실히 인식시켰고 나름 사람다운 느낌이 나는 구석이 있는 그런 사람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고, 나도 긴장을 내려놓으며 조금 더 적응하는 사건이 되었다.


쿠키 스토리.

술에 취해 본캐를 잃는 사람들은 만취한 본인의 모습을 보고 놀리는 걸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모습이라기보다는 나의 한 모습이고 자신은 꼭 그 디테일까지 기억할 필요가 없기에 이를 대하는 태도는 남들과 사뭇 다르다.


이전 07화 2020년, 11월. 수습기간을 끝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