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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y 20. 2024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누구나 쉽게 본능에 충실해질 수 있다.

Birds fly, Fish swim, Humans run. 전설적인 마라토너 에밀 자토펙의 이 말은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방식이자 행위이며 욕구를 한 마디로 정의케 한다.

날개와 지느러미를 가진 새와 물고기와는 달리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몸뚱이뿐이었고 생존을 위해 약한 동물을 사냥할 때나 강한 동물로부터 도망칠 때 본능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행위를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인류는 지금까지 흘러왔고 더 이상 생존을 위해 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때 달리기라는 행위는 향유의 대상이 되었다. 또 그 향유라는 것은 선택의 대상이기에 누군가는 일찌감치 달리기를 접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굳이 달리고 싶어 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달리기에 대한 욕구와 갈증, 당위성은 인간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생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기에 어느 누구에게나 달리는 DNA는 무의식 저너머에조차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 저너머에 잠들어있던 DNA는 살짝만 자극받아도 깨어나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리기도 한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러닝 DNA가 그러하다.


내가 처음 대규모 러닝 대회에 참가했었던 2019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지금의 러닝 시장은 그야말로 빅뱅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기부천사이자 러닝 전도사인 션님, 러닝계에서 단숨에 최고의 핫가이로 떠오른 기안84님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이 러닝을 즐기는 모습이 노출되면서 많은 대중들이 달리기, 러닝이라는 행위에 대해 새삼 인지하게 되었고, 메이저 대회라고 불리는 몇몇 대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도심과 한강을 가로지르는 멋진 경험과 유니크한 굿즈, 메달 등이 기존의 40~50대 위주의 러닝 생태계에 20~30대 연령층을 블랙홀처럼 빠르고 강하게 빨아들였다. 이제는 어느 지역을 가도 러닝 트랙이나 강변 산책로, 도심 등지에서 퇴근 후 러닝을 즐기는 다양한 연령층의 동호인들이 너무도 쉽게 눈에 띈다. 심지어 전문적으로 러닝 자세와 훈련법 등을 배울 수 있는 러닝 클래스는 매월 오픈과 동시에 정원 마감되어 배우고 싶어도 배우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과열 상태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현재의 러닝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열정이 과연 그저 유명인과 굿즈 같은 외부적인 요인 때문만일까. 그것들이 당연히 러닝의 인기 비결임에야 분명하지만 사실은 세대를 관통하는 유행이자 가장 핫한 스포츠 중에 하나가 된 이유는 바로 본능에서 찾을 수 있다. 달리고자하는 본능, 달리기에 대한 DNA를 자극받은 것이다. 러닝은 어떻게 우리의 본능과 내면을 건드리고 있는 것일까?? 러닝은 사실 굉장히 내향적이고 내면에 충실한 스포츠이다.(사실 나도 달리고서야 깨달은 부분이다.) 기안84님의 풀코스 마라톤 도전기를 본 많은 사람들이 러닝을 경험해보고 싶어 하고 러닝을 왜 즐기는가에 대한 생각에 공감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남들이 달리는 모습, 체험기, 도전기만 봐도 나도 모르게 뭔가 알 수 없는 울컥함이나 가슴 뜨거움을 잠깐이나 느끼게 되는 것은 내 자신을 보고 내 자신을 보듬어 주고 내 자신에 충실하고 싶은 그런 마음일 것이다. 달리다 보면 나도 나를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나 자신에게도 인정받고 싶은 내밀한 마음을 러닝은 이렇게 자극하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달리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만족과 희열은 덤이다.(달려보면 안다.) 두 다리를 구르고 두 팔을 휘젓는 단순한 동작의 계속적인 반복을 거치면서 어느새 잡념은 사라지고 달리고 있는 내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게 되고 나를 관조하게 된다. 그렇게 느껴지는 나 자신, 살아있음이 느껴지는데서 오는 만족과 희열은 러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지금 이 순간 심장이 뛰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 삶을 느끼고 살아가는 게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 그리고 본능일 것이다. 평소에는 심장이 뛰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지만 심장은 평소에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하면 우리의 심장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우리는 비로소 심장이 터질 듯한 심박수 상승으로 이러다 죽겠다 싶다고 느끼는 동시에 내 심장이 터지도록 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살아있음을 강하게 느끼게 되고 동시에 나의 존재감을 오롯이 인지하게 된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살아있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 어떤 순간, 내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온전히 나의 내면에 귀 기울이게 되는 그 순간에는 귓바퀴를 감아도는 경쾌한 뜀박질 소리도,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진한 풀내음도 뒷전이다. 텅 빈 주로에 나만 홀로 뛰고 있고 오로지 이 레이스의 유일한 주인공은 나뿐이다. 그야말로 자존감 폭발. 나에게 취해버리는 아찔하고도 달콤한 경험.


달리는 행위만으로 잊혀져 있던 본능을 느낄 수 있고 그 본능에 충실해질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너무나 쉽게 나를 느끼고 나를 아껴줄 수 있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본능에 충실하고 싶다면, 나에게 충실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신발장 어느 구석에 몇 해째 구겨져 박혀 있던 운동화를 찾아 꺼내라. 그리고 신고 나가서 뛰어보라.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좋다. 100m를 뛰어도 좋고 1,000m를 뛰어도 좋다. 그냥 숨이 차도록 달려보라. 본능에 충실해져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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