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도전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려면 영어 성적이 필요했고, 차라리 제대로 영어에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영어권 국가로의 이민이었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 사회에 이미 실망을 많이 했고, 이민 가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계속해왔다. 한국에서 잘살기 위해서 영어 공부가 꼭 필요하다면, 그냥 영어를 쓰는 나라로 가버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옳은 결정일 것이라는 확신
나는 내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한국에서 살고 있을 당시의 나는 어릴 적 꿈꾸던 삶을 전혀 살고 있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친구들보다 그동안 덜 열심히 살았다. 그들만큼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문제를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학벌이었다. 아무리 세탁하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같은 이 녀석을 없애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계급과도 같았다. 심지어 SKY에 들어간 사람들도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전공을 위해 반수를 한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학벌이 나의 커리어의 발목을 잡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인생에서 학벌이 덜 중요한 삶을 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미래의 내 자녀에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만 하는 그런 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의 술 문화였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소외되어 갔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소외된다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는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밤새 술을 먹고 오전 근무 시간을 숙취로 보내면서 “이게 사회생활이야”라고 말하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그 시간을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것을 ‘워라밸’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세 번째 이유는 아이였다. 당시에는 아기가 없었지만, 아기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행복하지 않은데 과연 아이에게 행복을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기를 가지지 못했다. 게다가 아기를 낳는다 해도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가진 것도 없었다. 어느 부모나 똑같은 마음이겠지만, 내 아이를 부족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위의 세 가지 말고도 이민을 결심한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떠나기 위해 이민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야 마음이 행복하듯 나라의 시스템도 결이 맞는다면 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마음에서 이민을 결심했다. 왜 캐나다여야 했는지는 사촌누나(캐나다로 중학생 때 이주)의 영향이 컸다. 사촌누나를 통해 캐나다에 대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캐나다라는 곳이 다른 나라보다는 친숙했고 나와 결이 맞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30년을 허무하게 날린 인생, 그렇기 때문에 이번 도전에서는 실패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민을 계획만 하고 실패한 사례, 영주권을 받고 정착에는 성공했지만 역이민 한 사례, 막상 이민하고 나니 행복하지 않다는 사례(블로그, 유튜브, 출간 도서 등)들을 모아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에 해당하는데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면 과감히 한국에 있기로 했고,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자료들을 분석해보니 크게 세 가지 문제로 한국을 그리워하거나 역이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첫 번째는 문화적인 부분이다. 한국에는 24시간 문을 연 가게나 음식점이 많아 여행하기도 편하고 놀기도 편한데 캐나다는 그렇지 않아서 불편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밖에서 술을 마시지 못한다. 불법이다. 쉽게 말해 강변에서 돗자리 깔고 치맥을 못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정확하게 캐나다가 나와 결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회식만 하면 ‘벌써 새벽 2시가 다 됐는데 왜 집에 들어갈 생각을 안 하는지, 내일 일할 게 산더미인데,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만약에 직장에서 일찍 퇴근할 수 있다면, 절대로 나는 밤에 돌아다닐 일이 없는 사람이다. 가족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술 먹고 밖에서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훨씬 좋아한다. 그리고 외식보다 집에서 요리해서 먹는 음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졌다.
두 번째는 의료 시스템이다. 특히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이 문제가 많아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 있거나 다녀온 사람들이 만든 거의 모든 자료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문제점이다.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서 기다리다 죽는다는 거였다. 이 부분이 이민을 결심할 때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좋은 세상은 없듯이, 단점을 커버할 장점이 훨씬 많다면 문제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살아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물론 아프지 않도록 건강을 관리할 계획을 세웠다.
마지막은 영어다. 언어는 삶의 가장 기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어디를 가도 행복할 수 없다. 나는 비록 토익 점수 하나 없는 영포자(영어 포기자)였지만, 3년 정도 영어에 몰입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영어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이민을 준비하면서 영어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봤다. 언어를 배워서 대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6개월이라고 한다. 우리가 학창 시절 수포자(수학 포기자)라 하더라도 돈 계산을 못 하는 사람은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학창 시절 영어를 잘했던 사람은 영어 회화를 익히기에 훨씬 유리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노력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라 판단했다.
이렇게 분석하고 나니 이민을 떠나는 것이 해볼 만한 도전이고 지금 도전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한국의 재산을 정리하고 어떻게 캐나다로 송금할지, 캐나다에서 어떤 비자로 어떻게 살아가며 이후 영주권은 어떻게 취득할지, 취업은 어떻게 하고 앞으로의 커리어를 어떻게 준비할지 등, 최대한 세세하게 고민하고 꼼꼼히 따져보고 난 후 가족에게 나의 5년 계획을 브리핑했다.
도전에 맞서거나 물러서거나
많은 사람이 이민을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다. 뭔가 근사하게 준비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민도 하나의 도전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도전 속에서 살아왔다. 일찍 성공한 사람들은 그런 도전을 잘 이겨냈고 지금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인생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과거에 직면한 도전을 회피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냥 살던 대로 살아서는 절대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지금과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도전해야 했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일지라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면 분명히 이뤄낼 것이다. 만약 계획하는 과정에서 답이 안 보인다면, 그건 정말 무모한 도전이다. 하지만 이민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이미 이민에 성공했다.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나는 바로 이민 준비에 돌입했다. 한국에 있던 재산을 전부 정리할 것을 가정하여 전체 가용 예산을 산출했다. 제대로 취업하기 전까지, 그리고 어느 정도 연봉을 받기 전까지, 이 돈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했다. 그리고 영주권 계획을 세웠다. 영어가 부족한 점과 인맥이 하나도 없는 점을 고려하여 컬리지에 가기로 했다. 캐나다 컬리지를 졸업하면 네 가지 장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영어를 공부할 시간을 번다는 점, 두 번째는 전공 관련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점, 세 번째는 주 정부나 연방정부 이민을 신청할 때 가산점이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전공에 따라서 2년 또는 3년의 스터디 퍼밋(Study Permit) 비자와 졸업 후 3년의 워크 퍼밋(PGWP: Post Graduate Work Permit) 비자가 나오기 때문에 적어도 5년에서 6년은 안정적으로 체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영주권이 먼저냐 정착이 먼저냐의 문제는 이민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제대로 된 정착을 하지 못한다면 영주권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보다 나은 삶을 찾아 캐나다에 왔는데, 그렇지 못한 삶을 산다면 차라리 한국에 있는 편이 나을 거로 생각했다. 따라서 컬리지를 다니고 졸업 후 일하는 총 5~6년을 영주권의 데드라인이 아닌 제대로 정착하는 데드라인으로 잡았다. 제대로 정착이란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 거주지 확정과 주거 마련,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서보다 행복한 삶을 의미했다. 그러면 자연스레 영주권은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캐나다행 비행기에서의 다짐
여전히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고 이민을 떠나던 날의 감정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냥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기로 한 거지?’, ‘포기하면 쉬울 텐데, 왜 도전하겠다고 해서는…’ 등 수없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하지만 그 불안함을 이겨내야만 원하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더 이상 두려움 때문에 물러서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