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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글 Oct 20. 2022

캐나다, 여기가 내 세상이다

모두의 유토피아는 없지만, 나만의 유토피아는 존재한다

처음 캐나다로 이민 가겠다고 다짐했던 그날이 벌써 수년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진짜 캐나다에 살고 있다. 상상만으로 행복했던 캐나다 이민자의 삶을 내가 살고 있다. 현재는 캐나다의 로컬 회사에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근무 중이다. 한국에서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워라밸을 즐기며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진짜 선진국의 모습

대한민국은 2010년 OECD 국가 중 선진화 지표 순위 24위였다. 선진화의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 중 창의성이나 역동성과 같은 ‘성장’ 관련 지표는 OECD 평균에 근접했으나, 지도층의 솔선수범, 정치적 비전, 사회 안전망 수준에서는 모두 최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 참여, 약자 보호제도, 표현의 자유 등의 항목에서도 최하위권이었다. 2010년 대한민국의 선진화 수준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13년 뒤처져있다고 평가받았다.



선진국들에 비해 13년이 뒤처진다고 한 것이 벌써 12년 전이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제 한국은 G7 정상회의에도 초청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가가 되었다. 뒤처진 13년의 세월을 거의 따라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는 1976년 G7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과 캐나다가 세계적으로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2018년에는 한국이 캐나다의 명목 GDP를 역전한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OECD의 통계자료를 보면 캐나다와 한국은 비슷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계 항목에 따라 한국의 랭킹이 높은 경우도 있고 캐나다가 높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캐나다에 직접 살아보니 역시 선진국은 달랐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한국과 비교해서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많았다. 우선 캐나다의 인터넷 속도는 가히 OECD 국가 중 최악일 것이다. 집 인터넷에 용량 제한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심지어 대형마트에 들어가면 LTE가 터지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에서 서류 작업을 수기로 한다. 한국은 웬만하면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한데 캐나다는 아니다. 기다림은 덤이다. 3시간에서 4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살아보니 더 말도 안 되는 사례가 한국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공장에 불이 나서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거나, 응급 호송을 하는 앰뷸런스를 차가 막아서 안에 있던 사람이 죽었다던가,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났다고 상대 차량에 돌을 던지고 해코지를 가하는 등 사람의 목숨이나 안전에 관련한 사례들이었다. 캐나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평화로움’이다. 아무리 문제가 닥쳐도 나는 안전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아파트에서 화재경보가 울리면 소방차가 출동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소방차, 앰뷸런스, 경찰차가 사이렌을 켜고 지나가면 모세의 기적을 눈앞에서 경험할 수 있다. 사거리에서 모든 차량이 멈추는가 하면, 긴급출동 차량은 스스럼없이 역주행도 한다. 갑작스러운 가스 폭발이 아니고서야 화재로 사람이 건물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차량이 앰뷸런스의 경로를 방해해서 사람이 죽는 일은 더더군다나 절대 없을 것이다.



또한 캐나다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어떻게 저렇게 웃으면서 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나 노인을 보면,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노인들의 인상을 느낄 수 있다. 괜히 복지국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에 와서 행복한 노인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캐나다에서는 늙어가는 것도 하나의 꿈이 되어 버렸다.



캐나다에 살면서 진짜 선진국의 모습을 보았다. 위에 나열한 사례 말고도 캐나다 사람들은 양보와 친절이 기본 옵션이다. 또한, 나라에서 다양한 베네핏(아동수당, 저소득층 지원, 고용보험-실업급여 등)을 준다거나, 출산 또는 장기 휴직으로 인해 출근을 안 하더라도 회사에서 해고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인권에 대한 법적 보호는 상상 이상이다. 한국에서는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신선한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내가 캐나다에 딱 붙어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선진국은 겉으로 보이는 하드웨어(GDP, 인터넷 속도, 스마트폰 보급량 등)가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태도를 담은 소프트웨어(시민 의식, 예의범절, 법률 준수 등)다.




휴전선도 국경도 없는 국가

캐나다에 살면서 캐나다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자주 느낀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이다. 전 세계의 다양한 나라로부터 온 사람들이 한데 모여 국가를 이룬다. 게다가 그들의 배경은 참으로 다양하다. 돈이 차고 넘치게 많아서 돈을 펑펑 쓰러 오는 사람부터 나라가 전쟁 중으로 살기가 힘들어 몸만 이끌고 피난 오는 난민까지 국민의 계층이 천차만별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언제나 편을 갈라서 무언가를 했던 기억이 많다. 심지어 아주 작은 조직에서조차 편을 갈라서 싸운다. 학창 시절부터 매년이면 반 대항으로 체육대회를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라인을 탄다. 이기는 쪽이 내편이면 좋겠지만, 지는 쪽이 내편이면 당연히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다. 이 또한 사상이 다른 사람끼리 편을 갈랐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총칼을 겨누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군대가 항시 대기 중이다. 다행히도 나는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 나라의 문화나 시스템은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제 북한뿐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들끼리도 편을 갈라 싸우는 중이다.



벌써 작년이다.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대히트를 쳤던 ‘오징어 게임’을 떠올려보자. 아마도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았더라도 들어는 봤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 다 같이 힘을 합쳐 이겨낼 수 있는 시련과 도전도 서로 물고 뜯고 싸우며 결국은 한 사람만 살아서 나간다. 이게 조직 내에서 편을 갈라 싸웠을 때의 결말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이상주의자’다. 세상은 참 살기 좋은 곳이고, 앞으로도 더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믿는다. 누구나가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또한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나와 결이 맞지 않아 이민을 선택했다. 대한민국은 무한경쟁 사회이다. 경쟁에는 언제나 패배자가 있다.



캐나다는 그런 측면에서 ‘이상적인 국가’에 가까웠다. 휴전선도 없고 국경도 없다. 캐나다 국민의 대다수가 출신 국가도 문화도 인종도 모두가 제각각인데 나라가 잘 돌아간다. 이런 환경에서 평화롭게 국가가 유지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심지어 잘 살기까지 한다. 세상에서 전쟁 없이 행복하며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캐나다의 문화와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




의료 시스템도 훌륭하다

캐나다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이민을 결심한 큰 이유 중 하나가 아기를 갖고 싶어서였다. 처음 이민을 결심할 당시에는 영주권 취득 이후로 아기를 갖기로 계획했지만, 너무나 만족스러운 캐나다 삶에 당장 계획을 실행했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아기를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불안했다.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여기저기서 안 좋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블로그, 유튜브, 출간 도서를 막론하고 역이민하는 이유나 캐나다로 이민 가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캐나다의 의료 문제였다. 하지만 직접 캐나다의 의료를 경험하니, 그건 아마 오래전 이야기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캐나다는 의료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의료 종사자에게 영주권을 더욱 빠르게 주는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내놓고 있다. 물론 사람은 여전히 부족하다. 캐나다 런던의 대형 병원에서는 간호사와 지원 인력을 항시 채용 중이다.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의 대기 시간이 무려 6~7시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응급인 경우에는 다르다. 출산 당일에 병원의 일 처리가 이렇게도 빠르고 편한데, 왜 사람들이 불만이었을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게다가 다 무료였다. 정말 주차비만 내고 나왔다. 심지어 병원에 들어가고 나올 때 접수, 수납 데스크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접수는 아주 간단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바로 산부인과로 가 병원 직원에게 이름과 주소를 말했다. 응? 이게 끝? 그렇다. 접수되었다. 수납할 때는 매니저가 직접 베드로 찾아와 정보를 적어갔고,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그냥 걸어 나오면 됐다.



얼마 전 아기가 고열이 나서 응급실에 갔다. 대기 시간은 여전히 6~7시간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가자마자 바로 기본 진료를 봤고 의료 기록(패밀리 닥터 여부와 백신 접종 등)을 점검했다. 이후 해열제를 받고 의사를 기다렸다. 의사가 오기 전까지 간호사가 계속해서 아기의 상태를 체크했고 시간에 맞춰 해열제를 줬다. 아기가 해열제를 토하자, 바로 항구토제를 줬다. 그렇게 3시간 정도를 보내니 의사가 왔다. 열이 나는 원인을 찾으려 진찰했고 다행히 단순 열감기였다. 간호사가 “너희는 이제 가도 좋데.”라는 말을 해줬고, 우리는 역시 문서 작업이나 수납을 하는 등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걸어 나왔다. 이번에도 주차비만 냈다.



물론 캐나다의 의료가 한국처럼 빠르지 않다. 이는 의료만이 아니라 한국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느리다. 하지만 의료는 나의 목숨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큰 공포심을 느끼는 것 같다. 평생에 한두 번 아플까 말까 한 병 때문에 평생을 나와 맞지 않는 곳에서 살면서 고통받으며 살 건지, 평생을 행복하게 살다가 아플 때 조금 늦게 치료받을지, 결국은 개인의 선택이다. 더 좋고 더 나쁜 쪽은 없다.



꿈은 달콤했고 현실은 더 달콤하다

3년 전에 나는 한국에 있었다. 공군에서 장교로 근무할 때 미국 정부와 회의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당시에는 통역이 있었다. 통역 없이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고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캐나다에 살고 있고 캐나다 로컬 기업에서 캐네디언들과 함께 일하며 돈도 벌고, 퇴근 후에는 워라밸을 즐기며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한국에서 상상했던 바로 그 ‘캐나다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다.



2020년 3월 2일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에 처음 왔다. 그리고 2022년 3월 1일, 정확하게 2년이 지나 캐나다 로컬 회사로부터 잡 오퍼를 받았다. 눈물이 났다. 2년 동안 ‘과연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보낸 날들을 포함해, 한국에서 사회생활하면서 상처받았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처음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하고 캐나다에 대해 정말 많이 찾아봤다. 모든 유학원의 이민 박람회에 참석했고, 유튜브, 블로그, 출간 도서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찾아보고 정보를 모았다. 캐나다로 먼저 이민 간 이민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거기서 살고 싶다’는 꿈을 계속 키웠다. 이민에 대한 꿈, 상상만으로도 행복했었다. 그리고 지금 캐나다에 이민해 왔고 현실은 상상보다 더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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