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대신 경험, 스마트폰 대신 대화
지난주는 아이들의 학교 가을방학이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우리가 10년동안 살았던 시카고를 다시 찾았다. 남편은 출장 겸이었고, 나와 아이들은 오랜만에 도시 구경을 하며 여유를 가졌다. 박물관에도 가고, 지인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기 전날 저녁, 우리가 종종 갔었던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메뉴
우리는 외식할 때 아이들을 위해 키즈밀(아이들만을 위한 메뉴)을 시키지 않는다. 한국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미국 대부분의 키즈밀 메뉴는 굉장히 제한적이다. 채소 없는 치즈버거, 치킨핑거(너겟), 버터에 비빈 파스타, 맥앤치즈 등이 전부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편식을 하기 때문에, 음식점에서도 안전한 옵션들을 준비해 놓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제공하는 일반 메뉴를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각자 마음에 드는 메뉴를 고른다.
첫째는 기름기 적은 고기를 좋아하니 필레 미뇽 스테이크, 둘째는 생선이 먹고 싶다 해서 소스와 버섯이 곁들여진 할리벗(halibut) 요리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시간 보내기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종이에 그림이나 글씨를 쓰거나, 펜으로 하는 간단한 게임을 한다. 남편과 나는 대화를 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한다.
종이와 펜이 없을 때는 말로 하는 게임을 한다.
예를들어
- 하나, 둘, 셋 하면 A로 시작하는 동물 말하기-, -우리가 있는 공간에서 내가 생각하는 파란색 물건 말하기- 등. 5살 둘째에게 맞춰진 수준이지만 모두가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다.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너무나 즐거워한다.
나는 식당에서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여준 적이 없다.
첫째가 2-3살 정도일 때 한 번 정도 있었던 것 같지만, 아이가 영상이 끝난 뒤 유난히 예민하고 짜증을 많이 냈던 기억이 있다. 그일 이후 직감적으로 알게되었다.
'아, 이건 감당이 안 되겠구나. 악순환의 시작이겠다.' 아이의 짜증을 감당할 에너지가 있다면, 그 힘으로 함께 놀기로 결심했다.
집에서도, 외출 중에도,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한번 미디어로 시간을 ‘때우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끝이 없다. 아이들은 점점 더 원하고, 그만큼 감정의 폭이 커진다. 결국 힘든 건 부모다.
얼마 전 한국에서 결혼한 지인을 만났다. 식당에서 아이들이 영상을 보는 얘기가 나오자, 아직 아이가 없는 그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언니, 요즘은 다 테블릿 보지 않아요? 음식점에서 영상 안 보여주면 애들이 가만히 있나요?” 그 질문이 마음에 남았다. 그 친구는 평소 절대로 미디어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식당에서 영상을 본다’는 걸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다. 아이들이 일찍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굳어져 있다.
-식사의 마무리
식사 후, 우리 서버가 계산을 해주며 말했다.
“당신네 아이들은 정말 잘 먹고, 바르게 행동하네요. 요즘 세상에 이런 모습은 보기 드물어요. 정말 신선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신기하게도 음식점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그런 얘기를 듣는다. 똑바로 앉아서 편식을 하지 않고 먹으며 미디어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게 되다니....)
나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참을성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내 생각은 이렇다. 가족이 외식을 하러 나왔다면, 그 시간은 모든 가족 구성원이 즐기러 나온 시간이다. 함께 집에서 자주 먹지 않는 음식을 탐험하고, 그 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어른들 외식에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낀다'고 생각하면, 그 시간이 불편해지고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 는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만의 시간을 즐기자. 대화를 나누고, 작은 놀이를 함께하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부모가 먼저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면, 그 순간부터 모든 게 순조로워진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도 주말엔 영화를 보고, 주중에도 가끔 TV를 봅니다. 미디어를 보는 날은 심심하다는 말을 더 자주 합니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능력이 줄어드는게 피부로 와 닿아서, 결국은 저의 자유시간이 더 많아지는게 아니더라고요.
그야말로 악순환....
식사 시간에는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 앉아, 약간의 대화를 하며 음식에 집중합니다. 아이들이 간식을 먹긴하지만, 식사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자리에서만 합니다. 먹는 걸로 하루종일 아이 비위맞추는 건 제가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예외를 두지 않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싶어요.
가족의 시간 동안에는 아이들도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하고, 그 아이들에게 먹는 것에 대한 다양한 선택권을 주며 함께 그 시간을 즐기려 합니다.
그 시간들이 아이와의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부모의 마음도 더 평화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