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에너지도 줄고, 많은 일에 효율을 따지게 되며, 조심스러워진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미국 교외에 살며 집에서 일하고 어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도 많지 않다.
학부모 모임
3년 반 전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첫째 아이 학교의 한국 엄마들 모임에 몇 번 참여했었다.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의 결이 조금씩 달라졌다. TV 프로그램 이야기, 아이들 학교 엑티비티 이야기, 본인의 생각과 경험이 강하게 들어간 부정적인 피드백(이건 어려우니 절대 시키지 말아라 등등), 다른 아이들의 성과를 비교하는 대화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할 말이 없어졌다.
대화의 방향이 나와는 다르다는 걸 느꼈고, 그 모임을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러닝클럽
꾸준히 달기리를 하며 종종 레이스에 도전하고 있으니, 러닝클럽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라 그런지 마음이 편했고, 그 시간이 유익했다. 서로의 트레이닝을 도와주고, 지루한 장거리를 기꺼이 함께 뛰어주니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물론 참여한다고 해서 모든것이 저절로 세팅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새 맴버에 큰 관심이 없고, 적극적이게! 스스로 페이스가 비슷하고 성격이 맞을 것 같은 친구를 찾아야 한다.
러닝 중 가벼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관계의 시간이 쌓이면 더 끈끈해질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문화의 벽을 느끼기도 한다.
새로운 만남
주말 저녁,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우리 아이가 다니던 수영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는데, 중국계 미국인 여자다.
몇 달전 수영장 일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긴 뒤로 볼 일이 없게 되었지만, 예전에 전화번호를 교환했던 일이 문득 생각이 나서 차 한 잔 하자고 문자를 보냈다.
한국인이었다면 조금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40대 아줌마가 20대 중반 싱글여자에게 놀자고 연락하는 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이에 대한 구분이 덜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서로의 일, 배경, 관심사 같은 것들. 나보다 한참은 어린 친구였지만, 사회 경험은 훨씬 많았다.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리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굉장히 독립적이고 생각이 깊었다.
그 친구도 서부의 가족을 떠나 혼자 이곳에 와 있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라며 중국에 가면 미국인으로, 미국에서는 중국인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영어가 완벽한 2세들도 그런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특히 백인 위주의 미국 남부 도시에서는, 대도시보다 그 이질감이 크다.
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끼리는 서로의 낯섦을 이해한다. 그것이 공통점이 되어 이야기가 흘러간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나를 왜 만나지? 내가 이사람을 왜 만나야 하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물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유익한 인연을 찾는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 제한된 에너지를 확실한 곳에 쓰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상대방이 생각하기에 유익한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세상을 어느정도 살아보고 아이들도 있다 보니, (우리 가족의 안전을 위한)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한다. 세상은 연결되어있고, 우리는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 처음부터 좋은 사람도 있지만, 볼 수록 매력적인 사람도 많다.
약간의 용기를 내어 문자를 보냈던 건 잘한 일이었다. 새로운 만남은 여전히 불편함이 있지만, 나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든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익숙한 세계 밖으로 한 발 나가보는 일은 언제나 삶에서 필요한 연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