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결심

나만의 이유를 찾아보기

by Mindful Clara

2025년부터 금주를 결심했다. 결심이라고 하니 무언가 심각해 보이지만, 사실 단어만큼 굳은 마음을 품고 엄청난 결단을 내렸다는 느낌은 전혀 아니다.

내 기분은 그저..'때가 되었다' 이정도?


술을 끊어본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단지 기한을 정해놓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2023년 새해부터 10월초 시카고 마라톤 대회까지. 마라톤 훈련 특성상 주말 오전에 장거리를 뛰게 되는데 술을 마시는 시간은 주로 주말 저녁이다. 당연히 숙취가 남아서 다음날 이른 오전 달리기 컨디션에 영향을 주게된다. 좀 덜 힘들게 뛰고 싶어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결론은? 술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다. 너무나 할만했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외식을 할때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술 먹고싶어 죽겠어!' 이런 기분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10월 시카고 마라톤 레이스가 끝나자마자 다시 꼬박꼬박 주말음주를 시작했다. 그때도 역시 '아 이맛이지! 내가 너를 안 먹고 어떻게 살겠니.?' 이런 종류의 기분은 아니었다. 삶의 일부였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 느낌 정도였다.


술을 참는 것이 꼭 힘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생각보다 쉬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10월에 다시 마실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

-삶에 무료함이 조금은 사라졌기 때문에. 주말의 즐거움이 음주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었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달리기 목표가 생기고 나서는 달리기에 우선순위를 두는게 더 즐겁게 느껴지게 되었다.)

-술을 안 먹음으로서 컨디션이 좋은 날이 더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술생각이 나지 않았다.



2025년 새해에는 영원히 금주 하기로 했다. 적당히 먹으면 되지 뭐 그렇게까지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충분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절대로 모든 사람이 술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할때 와인 한두잔 곁들이기, 주말에 맥주 한두병 정도로만 술을 절제할 수 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것이다.


나의 음주 패턴을 분석해 보았다.


-매일 먹지는 않지만 먹기 시작하면 너무 맛있다. 그래서 한두잔 이후 술이 살짝 오른 후에 멈추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분위기를 심하게 탄다.

-술을 먹으면 찌리릿 술이 오르는 느낌이 좋은데, 거의 공복상태에 마셔야 맛도 더 잘 느껴지고 술이 몸에 퍼지느낌도 난다. 위에 안 좋겠지?

-피곤한 하루를 지내면 때에 따라 주중 저녁에도 먹고싶은 마음이 든다. 주중음주는 습관성이 되기쉽다. 다음날에도 마실 확률이 높아진다. (저녁을 가볍게 먹고 내가 좋아하는 hazy ipa를 쭉 마시면 몸이 나른해진다.)

-새로운 음식 레시피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술 역시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는다. 원래는 쎈 맥주가 주종목이었지만, 2024 여름 유럽에 다녀온후 와인까지 관심이 생겨서 술 먹는 범위가 넓어지고 고로 더 자주 마시게 되었다.



외식할때만 마실까? 일년중 12월에만 마실까? 가족 생일때만 마실까? 모든 경우에 딱 한잔만! 마실까? 진짜 좋은 음식점 갔을때만 마실까? 완전히 끊는다는 건 너무도 아쉬워서 어떻게든 여러가지 옵션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니다.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지...


결정을 내리는데 큰 작용을 한 몇가지 이유들이 있다.


-술을 먹으면 심박수가 올라간다. 종종 경험했는데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 새벽에 두근두근하면서 잠에서 깨기도 하는데 살짝 무서웠다. 어느날 이렇게 가버리는건 아니겠지? (만취도 아닌데 이런 반응이 있다.)

-다음날 조금이라도 피곤한게 싫어졌다. 애들도 챙겨야하고 운동도 해야하는데 숙취가 있으면 그시간이 즐겁지 않게 되어버린다.

-밤에 먹는 술보다 주말 장거리 달리기 이후에 마시는 물이 10배는 더 맛있다. 마무리할때 기분도 비교할 수 없이 좋다.

-100세 시대인데 치매가 심각하게 염려된다. 알콜은 뇌에 빠르게 흡수된다.

-술 먹은 날이면 입이 말라서 밤중에 잠에서 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쫙 마르는 느낌이다. 피부노화 촉진!

-맑은정신의 모임이 좋아졌다. 즐거운 모임이 술로 인해서 졸립다가 끝나는게 아쉽다.

-술을 어느정도 먹으면 며칠동안 변비가 온다. 장내 세균이 알콜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을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술 마시고 3일동안 변비때문에 몸이 무거우면...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술을 먹으면 엄마가 감정적으로 더 예민해진다는 것을 10살짜리 딸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화내고 깽판치는 것은 아니더라도 술때문에 달라 보인다는 건 부끄럽게 생각된다.



나는 거의 힘들지 않게 금주생활을 실천 중이다. 앞에서 말한 '때가 되었다'라는게 이 많은 이유들 때문이다. 요즘에는 좋은 컨디션과 맑은 정신이 가장 감사하다. 술을 먹고 순간적으로 신나는 느낌보다는, 잔잔하게 보내는 지루한 듯한 일상의 일들에서 더 크고 의미있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술을 끊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단 하나의 조언을 해줘야 한다면 내 대답은 '더 크고 의미있는 재미를 찾으세요' 이다. 사람들은 술을 통해 무료함에서 벗어나고 힘든 현실로부터 순간적인 해방감을 느끼길 원한다. 나의 경우에는 달리기가 내 인생에 들어오면서 술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자기 자리를 내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술보다 달리기 후의 물이 맛있다. 음주 후 정신없이 씻고 침대에 들어가서 잠에 빠져드는 것 보다, 여유롭게 준비하고 포근한 침대위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잠드는 느낌이 더 좋다. 술때문에 텁텁한 입과 피곤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는 것보다 맑은 정신으로 깨어나는 느낌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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