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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대전환의 문

삶주의자가 바라보는 은퇴 

   

   나는 모든 ‘주의’(~ism,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 어떤 ‘주의’든 필연적으로 단순화의 오류, 환원의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전체주의도, 개인주의도, 도덕주의도, 과학주의도, 역사실증주의도, 자유주의도, 국가주의도, 무정부주의도 거부한다. 단지 예외가 하나 있다. ‘삶주의’(Lifism). 나는 오직 하나, 삶주의만을 인정하고 추구한다. 

  그런 만큼 삶이 깃들지 않은 것은 몽땅 똥으로 여긴다. 삶과 유리된 진리, 삶과 유리된 신, 삶과 유리된 지식(이론), 삶과 유리된 신앙(믿음)을 거부하고 혐오한다. 삶을 호흡하지 못하는 노동을 저주하고, 삶을 실어 나르지 못하는 생각을 조롱하고,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생활을 슬퍼한다. 삶이 녹아 있지 않은 글을 기피하고, 삶이 숨 쉬지 않는 예술을 외면하고, 삶이 빠진 대화를 싫어한다. 


  왜냐면 삶이 빠진 것, 삶과 유리된 것은 신이든, 사랑이든, 신앙이든, 지식이든, 진리든, 종교든, 돈이든, 성공이든, 예술이든 모짝 껍데기요 환상이요 헛것이니까. 삶을 살게 하지 못하는 신은 신이 아니고, 삶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고, 삶을 잉태하지 못하는 생각은 생각이 아니고, 삶을 말하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니까. 삶과 하나 되지 않은 영혼 또한 아직 영혼이 아니니까. 

  진실로 그렇다. 오직 삶을 살게 하는 신만이 신이고, 삶으로 인도하는 진리만이 진리이고, 삶을 잉태하는 생각만이 생각이고, 삶을 말하는 예술만이 예술이고, 삶과 하나 되는 영혼만이 영혼이다. 사람이 향유해야 할 생명의 알짬은 명예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다. 오직 삶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삶주의자다. 누가 뭐라 해도 삶주의자다. 나는 오직 삶주의만을 인정하고 추구한다.


  그런데 삶이라는 인생의 꽃봉오리는 하루아침에 피어나지 않는다. 마음과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며 만유 속에 깃든 깊은 진실에 눈이 열려야, 즉 인생이 존재의 단계에 들어가야 비로소 탐스럽게 피어난다. 물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피어나는 건 아니다. 별생각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온 사람, 소유나 성취만을 향해 내달려온 사람은 아무리 지식이 많고, 사회적인 성공을 하고,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나이를 먹어도 삶이라는 꽃봉오리는 피어나지 않는다. 오직 배움의 단계와 노동의 단계를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 쉼 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삶의 빈틈에 의문을 품고 씨름한 사람, 그래서 마음과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며 만유 속에 깃든 깊은 진실에 눈이 열린 사람의 내면에서만 비밀스럽게 피어난다.     


  사람은 몸과 마음, 몸과 정신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다. 하지만 꼭 일체를 이루는 건 아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보면 몸과 마음, 몸과 정신은 약간 다른 괘도를 그린다. 다음 도표에 그 실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도표는 [노년을 위한 마음 공부](피델리스 루페르트 저)에 나오는 요제프 골드 부룬너의 도표를 필자가 좀 더 구체화한 것으로 ①번 곡선은 나이에 따른 몸의 활동성을 나타낸 것이고, ②번과 ③번 곡선은 나이에 따른 마음과 정신의 활동성을 나타낸 것이다.


  도표가 말해주듯 사람의 몸은 태어나서 20-25살까지 빠른 속도로 성장하다가 정점을 찍은 후 조금씩 쇠퇴하면서 100세까지 길게 하향 곡선을 이어간다. 이것은 생물학적 과정이어서 사람마다 다르지 않고 거의 같다. 반면에 마음과 정신의 곡선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②번과 같은 곡선을 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③번과 같은 직선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즉 ②번 곡선처럼 마음과 정신의 활동성이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정점을 찍고는 퇴락하는 사람이 있고, ③번 직선처럼 몸은 정점을 찍고 쇠약해 가지만 마음과 정신은 계속 성장하며 새로워가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그렇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정신은 늙지 않는다. 아니, ③번 직선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더 청청해진다. 나도 같은 진실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지금 60대 중반이라 몸이 많이 늙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수염이 온통 하얗고, 주름이 점차 늘어간다. 그런데 마음과 정신은 젊을 때보다 더 청청하고 풍요롭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마음과 정신은 더 뜨겁고, 더 유연하고, 더 풍부하고, 더 호기롭고, 더 당당하고, 더 묻고, 더 공부하고, 더 도전하고, 더 주체적이고, 더 행복하고, 더 섬세해져 간다. 세계와 세상 또한 더 아름다워 보이고, 더 다채로워 보이고, 더 신비로워 보인다. 심지어 젊었을 때보다 더 많은 물음에 휩싸여 산다. 책 한 권을 읽고 영화 한 편을 봐도 예전보다 더 많은 물음과 생각들이 교차하고, 길을 걸으면서도 더 많은 것들에 눈길이 가고, 작은 일에도 더 많이 감사하고, 가을 아침 햇살의 신비한 색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감동을 느낀다. 


  중세의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자전적 고백을 했다. “나이가 들고 몸은 늙었으나 나의 영혼은 늙지 않았다. 영혼은 아직도 늘 젊은 남자의 동경과 꿈을 품고 있다. 내 영혼은 늙지 않았고, 앞으로도 전혀 늙을 것 같지 않다.”      

  한 마디로 마음에 노년은 없다는 말이다. 늙은 청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말이다. 특히 100세 시대는 노년이 매우 길다. 은퇴한 후에도 30-50년을 살아야 한다. 그런 만큼 은퇴 이후를 과거처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덤으로 주어진 여가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무심하게 보내면 안 된다. 삶의 무대 뒤편에서 꼰대질이나 하며 세월을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죽음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견디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은퇴 이후는 한 사람의 생애에서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자기에게 집중하며 근원 진실을 파고들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고 조화롭고 자유로울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이 열리는 시기고, 삶이라는 꽃봉오리를 피워낼 수 있는 충만한 시기다. 그런 만큼 은퇴 이후를 정말 잘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은퇴 이후를 잘 사는 것일까? 필자가 발견한 소견은 이렇다. 노동의 단계에서 존재의 단계로 들어가는 전환의 시간을 사는 것. 먹고사는 길이 아니라 나를 발견하는 길을 가는 주체의 시간을 사는 것. 그동안 농축해온 삶의 자산을 향유하고 나누는 공여(供與)의 시간을 사는 것. 내적으로 충만해지고 깊어지는 성숙의 시간을 사는 것. 뭐 이렇게 살면 잘 사는 것 아닐까.    

  

  나는 은퇴가 바로 이 지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노동의 단계에서 존재의 단계(먹고사는 길이 아니라 나를 발견하는 길, 살면서 농축해온 유형무형의 자산을 향유하고 나누는 공여(供與)의 길, 내적으로 충만해지고 깊어지는 성숙의 길)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은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그렇다. 은퇴라는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도 이런 길을 갈 수 있다면 참 좋겠으나 사람이 그렇게는 잘 안 된다. 은퇴라는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사람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평생 노동의 세계를 맴돌기 쉽다. 삶의 꽃봉오리인 존재의 단계로 들어가지 못한 채 죽기 쉽다.     

   그래서 은퇴가 요청된다. 우리의 삶이 노동의 세계에서 존재의 세계(나를 발견하는 길, 공여(供與)의 길, 성숙의 길)로 나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 은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적절한 때 결혼하고 취업해야 우리의 삶이 의존의 단계에서 독립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듯이 적절한 때 은퇴해야 우리의 삶이 노동의 단계에서 존재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여 나는 은퇴를 삶의 무대에서 퇴장시키는 공포의 사이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은퇴를 생활의 군더더기를 벗어버리고 이전과 다른 존재의 세계로 들어가는 대전환의 문이라고 생각한다. 일 중심의 생활에서 가족에게 돌아오고, 과업 중심의 체제에서 자유를 호흡하는 세계로 돌아오고, 노동의 구속에서 해방돼 안식의 품으로 돌아오는 귀향의 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중심, 생명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은총의 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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