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죽음

끝내 떠나버린 아버지

by 엘 리브로


일요일 오전에 아버지를 만나고 온 후, 오후에 병동에 전화를 걸어 다시 상태 확인을 했다. 산소 포화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숨소리는 가래 끓는 소리가 심하다고 했다. 내가 봤을 때는 가슴이 크게 오르내리며 입을 벌리고 한숨 쉬듯이 깊이 내쉬었는데 가래소리는 없었다.

몇 시간 만에 상태가 빠르게 나빠지고 있는 듯했다. 밤 근무 번에게 물어봤을 때는 산소 포화도가 다시 뚝 떨어졌다가 정상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월요일 아침 수간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샘, 아버지 중환자실로 내렸어요. 아무래도 집중적으로 봐야 할 것 같아서... 혈당도 갑자기 50 아래로 떨어졌고 우리가 보는 것보다는 그게 나아요."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회복되어서 다시 일반 병동으로 올라가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얼마나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시게 될 것인가.

고령의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상태가 호전되어 다시 올라오는 걸 본 사례가 거의 없다. 그래도 애써 희망을 가지려고 했다.

'나으실 거야, 꼭! 폐렴만 나으면 다시 예전처럼 지내실 수 있을 거야...' 나에게 계속 주문을 외우듯 반복적으로 말했다.


월요일 오후, 저녁 근무자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다시 물어보니 여전히 가래 끓는 소리는 심한데 산소 포화도, 혈압, 혈당 등은 다시 안정적이라고 했다. 종일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병원이 아니길 바라며 긴장했다. 안정적이라고 했으니 내일 또 경과를 봐야겠지 생각하고 있는데, 밤 10시 30분쯤 전화가 왔다.

"2 병동입니다. 아버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셨어요. 임종하실 것 같아요, 지금 오세요. 오시는 도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설마설마하며 아니길 바랐던 소식이었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울음이 구토처럼 올라오려 했다. 터뜨리면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아 꾹 꾹 삼켰다. 눈앞이 눈물로 흐려졌다. 빗줄기가 흐르는 유리창처럼...

'너무해,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너무하다. 아직 연세가 80도 안되었는데, 당뇨와 치매 외에는 다른 병이 없었는데, 왜? 왜 갑자기?'


믿을 수가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 격리 해제가 되면, 조금만 더 있으면 꽃구경도 갈 수 있을 텐데, 아버지가 좋아하는 돈가스도 사드리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함께 마시며 얘기 나누고 싶었는데... 이건 아니잖아요, 아빠...


곧 벚꽃이 피고 산장 가는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송이에서 꽃잎이 흩날리면 아버지를 모시고 드라이브 가려로 했어요. 아버지 안과에 모시고 가면서 꽃구경도 하고. 아버지의 옛날이야기, 똑같은 이야기를 스무 번씩 들어도 좋으니 다시 아버지 목소리 들으면서 같이 차를 타고 봄나들이하고 싶었는데...




병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버지의 자발적인 호흡은 없는 상태였고, DNR 동의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적극적인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고 있었다.

가볍게 심장마사지를 하고 있던 의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운명하셨으니 중단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아버지에게서 물러났다.


나의 아버지는 하루 사이에 달라진 얼굴로 눈을 꼭 감고 누워 계셨다.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고 기계가 불어넣는 공기 때문에 가슴이 크게 오르내려서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몸과 손발이 따뜻하고 혈색이 남아있어서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았다. 심전도의 그래프는 심하게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아빠, 좋은 데 가셔서 아프지 말고 편히 지내세요."


아직 온기가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만져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어깨를 끌어안고 다시 귓속말을 해보았다. "아빠, 아빠... 편히 쉬세요"

남편도 아버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아버님, 좋은 데 가셔서 편히 쉬세요."


목이 메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한 번도 안아보지 못했다. 점점 야위어서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은 여린 아버지를 꼭 끌어안아주고 싶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 업어주고 안아주었던 아버지를 나는 안아주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한 마디 해주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시게 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돌아서면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그냥 시간이 정지해버렸으면 했다. 울음을 크게 울지는 않았다. 울음이 터지면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아 꾹꾹 삼켰다.


후회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후회하고 있었다. 더 빨리 서울에서 내려올걸, 자주 전화할걸, 통화하면서 목소리를 녹음할걸, 간식 금지라는 말을 듣지 말고 식사 대신 드실 수 있는 음식을 자주 사다 드릴 걸, 가족사진을 갖다 드릴 걸...


심전도의 그래프가 더 이상 곡선을 그리지 않고 가로로 직선이 그어지는 순간이 왔다. 다시 한번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꼭 잡아보았다. "아빠, 갈게요."

간호사가 말했다, "1층 로비에서 기다리며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연락 주세요. 그동안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병실을 나오면서 자꾸만 뒤돌아봤다. 아버지의 얼굴을 계속 보고 싶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아버지의 사인은 코로나19. 장례식은 허용되지만 입관식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요양병원 건물에 있는 장례식장은 감염 여파 때문에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내가 장례식장을 알아보는 동안, 지정된 장의업체에서 온 방역복 차림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고인을 비닐에 꽁꽁 싸고 그 위로 검은 천을 두르고 밀봉하듯 또 꽁꽁 묶어 들것에 고정한 채로 모시고 나왔다. 그대로 실려나간 아버지는 입관이 된 후에 장례식장으로 바로 옮겨질 예정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화장장은 연일 모든 일정이 마감되어 3일장을 지내기가 힘들고 장례식장 또한 빈소를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식 사랑 덕분이었을까? 마침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의 장례식장에서 다음날 아침에 한 자리가 나온다고 했고 화장장에서도 목요일 오후에 한 타임이 비었다고 해서 4일장을 치르기로 했다. 그것도 다음날 아침에 다시 검색해 보니 수요일 오후에 예약되어 있던 화장 일정 중 하나가 취소되어 자리가 있는 걸 발견했고 바로 변경을 했다.


아버지를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은데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은 내게 슬퍼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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