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코로나 확진

요양병원 생활 15개월째

by 엘 리브로

아버지의 요양병원 생활이 15개월째 접어들었다.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1월부터 다시 면회가 전면 금지됐다. 간접면회와 직접면회, 면회금지 조치가 번갈아 시행되어 왔고 병동마다 번갈아 집단감염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병원 근무를 청산하고 내려오자마자 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싶었으나 병원 분위기가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낮에 은행에 갔다가 은행 앞 과일 좌판에서 먹음직스러운 딸기를 보고는 4박스를 샀다.

1박스는 아버지께 드리고 2박스는 간호사실에 주려고 병원으로 가져갔다.


원무과에서 연결해 준 병동 전화로 수간호사를 통해 아버지의 확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샘, 그렇잖아도 전화하려던 참인데, 아버지 코로나 확진이야. 증상은 없으셨어. 전수조사에서 우리 병동 환자들 거의 다 확진으로 나왔네."

아버지는 열도 없고 아무런 증상이 없으시다고 했다.


집에 와서 저녁식사 시간 이후에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목소리가 많이 쉬어있고 코 맹맹한 소리였다.

"아빠, 아프세요?"

"아니~~"

"목소리가 아픈 것 같은데 정말 괜찮으세요? 목 안 아파요?" "목소리는 누워 있어서 그런 거지 뭐"

"지내시는 건 어때요?"

"여기서 하도 오래 있어놔서..."

순간 긴장됐다, '나가시고 싶다는 걸까?'

"하도 오래 있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런가, 괜찮다."

휴우... 다행이다. 내가 늘 묻는 말과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아빠,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아직은 안 돼요. 드시고 싶은 것은 전달해 드릴 수 있는데, 뭐 드시고 싶으세요?"

"글쎄, 갑자기 물어보니 생각이 안 난다."

이것도 늘 같은 대답이시다.

"낮에 딸기랑 만두 갖다 드렸는데 드셨어요?"

"뭔 딸기? 뭔 만두? 안 먹었다!"

"드시고 깜박 잊어버리신 거 아니고요?"

"아니, 그런 거 구경도 못했다."

"알겠어요, 제가 다시 확인해 볼게요. 언제든지 드시고 싶은 거 생각나면 간호사실에 얘기하시고, 전화 통화도 하시고 싶을 때면 꼭 말씀하세요. 이번 주말에 돈가스 사다 드릴까?" "그거 좋지!"


그런 대화가 오가고 나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아버지는 낮에 드린 딸기도, 만두도 "먹은 기억이 없다"라고 하신다. 나와 통화한 것도 곧 잊어버리실 것이다. 1년 동안 삼시 세끼 깨죽만 고집해서 드시고 밥을 거부하시면서도 "제발 깨죽 그만 드시고 밥 드세요."라는 나의 말에 버럭 화를 내셨다.

"뭔 깨죽을 내가 먹었다는 거냐? 깨죽 구경도 못해봤다!"

아니면, "사람이 어떻게 깨죽만 먹고 산다냐. 어쩌다 한 번이나 나오지 여기서도 깨죽을 맨날 주기나 하려고?"라는 말에 할 말이 없다.

누가 들으면 너무나 확고한 아버지의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나도 아버지의 얘기를 다 믿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그러하듯이...


아버지를 매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일에 치여 아버지와 말 몇 마디 나누기도 힘들고 때로는 침상에 앉아 종일 TV를 보고 계시는 뒷모습만 슬쩍 보고 지나치는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의 아버지가 그곳에 그 자세로 앉아서 tv를 보고, 그 침대에 그 자세로 누워 세상 편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어떤 간식을 어떤 포즈로 드실 거라는 걸 눈앞에 그려볼 수가 있기에 마음이 편했다.


그런 아버지를 두고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출근길에 눈 한 번 질끈 감고 "그래, 아버지를 보러 가는 거야.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에게 가는 거야!"라고 소리 내어 혼잣말하며 스스로를 설득하곤 했다. 그래도 어느 날부턴가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엉엉 울기도 했다. 운전대를 잡고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나 초점이 흐려지고 두려움이 몰려오고, 그냥 그대로 병원을 지나쳐 순환도로 위를 계속 달려 달아나고만 싶은 날들이 많았다. 힘든데도 아버지 때문에 참아야만 하는 상황이 점점 더 견딜 수 없었고, 아버지를 두고 나온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 아팠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모시고 나올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병동 생활에 적응하는 데 몇 달이나 걸렸는데 또 낯 선 곳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 계시는 곳에서는 누가 어떤 태도로 환자를 대하는지 나의 아버지가 어떻게 생활하고 계시는지 파악할 수가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치매환자인 아버지. 요양병원에 부모를 맡긴 수많은 보호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늘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나의 선택이 최선인가, 다른 대안은 정말 없는 것인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으며 일상의 수많은 장면 속에서 '지금 아버지와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목구멍에서 뭔가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삼켜내곤 했다.

아버지가 부디 가볍게 코로나19를 이겨내시길! 이미 주변에선 감기나 몸살처럼 앓고 지나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4차 백신까지 맞으셨으니 아버지도 금방 나으실 거야.

그러한 기대감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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