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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Oct 24. 2024

공간적 전회 4

공간

공간적 전회가 앞으로도 계속 큰 비중을 찾이하리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분명히 많은 이유가 있다. 주된 이유는 미리 존재하는 대상이 없는 세계의 엄격한 물질성을 강조하는 방식을 통해서 물질, 삶, 지능 같은 개념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질적 도식화는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선구적 연구에 힘입고 있다.


이 주제는 가브리엘 타르드의 미시형이상학, 피티김 소로킨의 문화적 인과성, 토르스텐 헤거스트란트의 시간지리학, 앤서니 기든스의 사회과학의 발견여행 등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최근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theory) 같은 이론적 발전이나 타르드, 화이트헤드와 같은 학자의 연구 그리고 들뢰즈와 가타리가 준 영향을 통해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


필연적으로 사고의 물질성을 강조하는 연구 분야들에는 물질적 문화에 대한 연구, 지식사회학, 수행성 연구(춤부터 시까지), 장소와 관계된 미술과 건축, 고고학과 박물관 연구의 다양한 관점들, 상호작용적 디자인에 대한 논의들 그리고 비재현적 이론 같은 문화지리학의 다양한 발전들이 포함된다.


저자가 나열하는 공간적 전회와 연관된 연구와 결과들은 사실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핵심적 주제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일반 독자에게는 너무 복합적인 어려운 카테고리들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저자는 다시 이 다양한 카테고리들을 한 개념으로 환원해 보면 결국 <왜 공간인가?>라는 물음으로 압축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 물음을 던지면서 자신이 왜 에티오피아 출신 미국 미술가 줄리 미레투의 휘감기고 층층이 쌓아 올리고 번득이며 타오르는 지형학을 좋아하는 지를 설명한다. 미레투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암시-들라쿠아나 고야의 역사적 충동, 칸딘스키와 클레와 말레비치와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소용돌이와 추상, 색면회화처럼 전체를 뒤덮는 색조, 대중문화의 틀에 보이는 다양한 도상적, 그래픽적 요소들(상표, 만화, 문신), 그래픽 미술가와 전전가와 상황주의자들의 여러 작품에 표현되어 있는 저항을 나타내는 문자의 흔적 등을 알아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화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


미레투는 캔버스에서 수많은 종류의 공간들, 수많은 종류의 역학과 존재와 상상들을 한데 모으려고 시도한다. 그녀는 이 공간들 하나하나의 긴장을 유지시키면서도 결코 그 긴장을 풀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출동, 동일 요소의 반복, 지각 변동 등이 속도, 역학, 투쟁과 가능성과 하나가 되어 캔버스에 존재한다. 미레투는 <긴장 구조를 해체하는 것>보다 <궤적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보았다.      


저자가 보기에 미레투의 접근법에 대해서는 네 개의 원칙이 있다. 1. 모든 것이 공간적으로 분할되어 있다. 공간들은 각기 고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식이 아닌 그 속성대로 분할되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2. 경계선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공간은 거의 투과성을 보여준다. 3. 각각의 공간은 계속 움직인다. 정적이고 안정적인 공간은 없다. 4. 공간은 한 가지 종류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은 점, 면, 포물선, 흐릿한 형체, 암전 등 여러 모습으로 위장되어 나타난다.


이와 동시에 미레투는 공간을 사유하는 네 가지 방식을 거부한다. 그 첫째 방식은 실현된 진실성의 추구이다. 문헌들을 보면 공간들은 잠깐 동안이라도 모든 것들이 모여들어 중심을 이루는 장소이다. 둘째로 미레투는 계량성을 초월해 있는 공간 추구를 거부한다. 셋째로 이동과 무관한 상태로 공간, 정신과 신체가 정지할 수 있는 공간을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공간이 어떤 식으로든 시간과 분리되어 있다는 관념을 거부한다.

저자는 미레투의 공간 접근법과 기존 공간 사유의 거부를 통합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개의 삽화를 제시한다. 1. 타인과 함께 존재하기: 예를 들어 고래가 수천 마일 떨어진 다른 고래와 노래로 소통한다는 것은 고래의 세계의 규모가 통신을 발명한 인간 이전에 더 큰 규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고래의 세계는 다른 생물체의 세계와 일치하는 부분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2. 타인에게 영향 주기: 공간은 단순히 접촉하면서 얽혀 있는 일련의 세계만은 아니다. 공간은 공간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만들어진다.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면 제국은 흔히 다양한 감정으로부터 설립된다. 영국이 세운 인도 제국에 살았던 영국인의 수는 1901년의 인구조사에 154,691명에 불과했다. 선물을 나누어 주는 관례는 인도에 살던 영국 사람들의 감정을 다스리는 동시에 이들과 인도 엘리트와의 관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3. 타인을 조직하기


공간을 생산하는 또 다른 수단은 바로 퍼포먼스의 필요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조직은 끝없는 워크숍, 세미나, 회의, 자격증 취득 강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들은 각기 특별한 존재 방식을 상호 간에 증명해 준다. 이제 조직은 여러 대상을 가지고 있는 복합물로 인식되고 있다. 퍼포먼스란 말은 다의적이다. 그러나 이 말은 주어진 상황에 맞게 그것이 제공하는 역동적 성향을 이용하면서 설득력 있게 행동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어떤 상황에 즉각적인 해결 과정은 행위자들이 항상 가지는 힘의 배치에 의해 가속화되며, 이는 사물의 배치에 대한 능숙한 대응, 중국인들이 기(氣)라고 부르는 상황이 갖고 있는 분위기에 대한 직관은 성향에서 탄생하는 잠재력이다. 기의 비판적 측면이 공간이다. 우리가 배치(CONFIGUR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서 사물들을 계속해서 새롭게 배열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대개의 백화점은 시기별로 매장을 항상 재배치한다. 대개의 고유한 상품들이 층마다 나열되어 있지만 그 구조나 배열은 공간적으로 재배열되고, 판매량에 따라 재배치된다. 사실 거리의 가게들도 마찬가지이다. 소상공인들의 가게는 점점 문을 닫고 거의 대기업 브랜드의 지점들이 재배치된다. 이런 현상은 <공간과 권력>에 대한 미셀 푸코의 분석이 지금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독점적 권력의 공간 점유에 대해 리좀적 생산에 의한 다양하고 혁신적 공간의 생산과 확산 그리고 융합을 구상하는 것은 도시공학뿐만 아니라 모든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짊어져야 할 현대인의 미래에 관한 과제이기도 하다. 아마 그들은 대도시라는 캔버스에 배열된 공간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더 깊어지고 있는 현실을 먼저 자각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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