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망의 성장과 유전자 발현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가소성(plasticity)이란 단어는 어떤 영향을 받을 만큼 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꺼번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 만큼 강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신경세포의 성장과 연결성은 모든 학습과 적응의 가장 기본적인 기전이다. 학습은 다양한 방식으로 신경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기존에 있던 신경세포사이의 연결과 기존 신경세포의 확장 및 새로운 신경세포의 성장 등이 포함된다.
이런 모든 변화는 신경계의 형성력 또는 경험에 반응하여 변화하는 신경계의 능력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비록 인간에게 나타나는 처음 두 가지 형태의 형성력은 과거 수년 동안 밝혀졌지만, 해마, 편도, 이마엽 및 관자엽(temporal lobe)과 같이 계속 진행되는 학습과 관련된 영역에서의 새로운 신경세포의 탄생(신경발생, neurogenesis)은 최근에서야 발견되었다.
기존의 신경세포는 새로운 경험과 학습에 반응하여 다른 신경세포에 가지를 믿는 가지돌기(dendrites)의 가지치기와 확장을 통해 성장한다. 이런 과정은 우리가 간단하게 그림에서 보여 주었듯이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로 이루어진다. 신경세포는 신경망을 형성하고, 그 신경망은 다시 점차적으로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신경망과 통합된다.
예를 들면, 언어, 감정 및 기억과 관련된 신경은 우리가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고, 정확한 세부사항을 묘사하며, 적절한 감정을 가지고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기억해 내서 말하기 위해서 통합되어야만 한다.(36쪽)
스탠퍼드대의 신경과학자 이글먼은 뇌의 가소성에 대하여 보다 적정한 예와 설명을 더한다. 다음은 그의 책 ‘생후배선’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가소성이 있는 물체란, 모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그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플라스틱도 그래서 플라스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플라스틱으로 그릇, 장난감, 전화기 등의 형태를 만들면, 그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다. 뇌도 마찬가지다. 경험에 따라 뇌가 바뀌면, 그 바뀐 형태가 유지된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의 형태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한 예다. 하지만 뇌는 그렇지 않다. 뇌는 평생에 걸쳐 계속 스스로를 바꿔 나간다. 한창 발전하는 도시를 생각해 보자.
도시는 어떻게 성장하고, 스스로를 최적화하고, 주위 환경에 반응할까. 도시가 트럭 휴게소를 어디에 짓는지, 이민정책을 어떻게 짜는지, 교육제도와 사법체계를 어떻게 수정하는지 살펴보자. 도시는 항상 변화한다. 도시 계획가들의 설계대로 건설된 도시가 플라스틱 장식품처럼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발전한다. “
뇌는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인간의 뇌는 완성된 구조물로 짜인 구조물이 아니다. 플라스틱처럼 유연하나 새로운 학습이나 경험에 따라 시냅스를 확장하며 장애를 유발하는 요인을 스스로 수리한다. 마치 도시의 전선이나 도로에 장애가 생길 때 임시배선이나 우회도로를 사용하는 것처럼.
진화는 생명체가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이제 대부분의 과학은 타고난 것이냐 아니면 길러진 것이냐의 기본적인 논쟁을 뛰어넘었으며, 우리는 뇌의 성장과 조직화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그러나 또 미묘한 방식으로 섞여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는 유전자 하면 틀(template) 및 전사(transcription, 역주: DNA의 정보를 RNA로 전환하는 과정) 기능 모두를 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틀로서의 유전자는 뇌의 균일한 구조물을 조직화하는 데 이바지하며, 이런 구조물은 임신 기간에 독소에 의해 유전자 이상이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환경적인 영향은 받지 않는다. 전반적인 신경계의 배치와 같은 구조와 기초적인 반사와 같은 기능은 우리의 DNA를 통해 유전되며, 우리 종의 모든 건강한 구성원에 의해 공유된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으로 천성(nature)이라고 생각되어 온 유전적인 측면이다.
반면에, 많은 유전자의 발현은 유전자의 전사를 유발하는 경험에 의해 좌우된다. 전사는 뇌의 조직화에 있어 보다 미묘한 측면을 조절하는데, 여기에는 나중에 발달하는 신경망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및 뇌의 다른 체계에 사용 가능한 특정한 신경전달물질의 수준 등이 포함된다.
양육(nurture)은 발달의 경험 의존적인 측면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유전자 발현)의 선택적인 활성화를 통해 뇌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경험은 특정한 유전자의 발현을 일으키는데, 이렇게 유전자가 발현되면 신경구조물을 형성하는 단백질의 합성을 촉진시키게 된다.
이런 유전적 전사를 통해서 기존의 신경세포는 여러 종류의 수용체를 형성하고, 가지돌기를 확장하며, 생화학적 측면을 조절한다. 예를 들면, 비록 같은 가정에서 양육된 일란성쌍둥이가 똑같은 조현병(schizophrenia) 유전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한 명에게만 조현병이 발생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각각의 아이가 자신의 환경과 독특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각각 다른 유전자가 발현된 결과 때문이라고 믿어지고 있다.(36-37쪽)
유전인자가 반드시 행동장애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뇌과학과 심리학의 상호연관성을 촉진시킨다. 특별히 학습심리학이나 상담심리학을 통해 일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뇌의 유전자 지도를 보고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학습과 상담을 통해 장애를 어느 정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글먼의 ‘생후배선’ 이론은 이런 가설에 충분한 확증을 보태줄 수 있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반쯤 만들다 만 뇌를 갖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인류에게는 승리 전략이었다. 이 전략으로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뒤로 젖혔다. 땅을 뒤덮는 일에서도, 바다를 정복하는 일에서도, 달을 향해 뛰어오르는 일에서도 수명도 세 배로 늘렸다. 교향곡을 짓고, 고층 건물을 세우고, 뇌의 세세한 부분들을 점점 정밀하게 측정하는 일도 한다. 이 모든 일 중 어느 것도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지 않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각인되어 있지 않다. 대신 우리 유전자는 간단한 원칙 하나를 세웠다. 융통성 없는 하드웨어를 만들지 말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 우리 DNA는 고정된 설계도가 아니다. 이 DNA가 만들어내는 것은 주변 환경을 반영해서 효율을 최적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회로를 바꾸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만약 회계사가 일을 그만두고 피아니스트가 된다면, 손가락을 담당하는 영역이 확장될 것이다. 피아니스트를 그만두고 현미경을 주로 사용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시각피질이 작고 세세한 부분까지 해상도를 높여 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또 그 일을 그만두고 향수 전문가가 된다면, 냄새를 담당하는 영역이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