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에세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낼 때, #캐서린 메이

by 비루투스

* ‘윈터링’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낸다는 의미다.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발전하는 데 실패하는 혹은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다. 어떤 이들은 겪고 또 겪는다. 이런 시기를 인생의 휴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은 갖가지 모습으로 시작한다. 1)



불면증


모두 곤히 잠든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이 깨어나 날카로운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이다. 2)

살면서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경험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불면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빼놓고는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유령처럼 따라다니던 그 고질병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그것은 더 강하게 달라붙었고,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을 때면 핑곗거리로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수면 장애로 겪는 고통은 단순히 잠이 들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은 소리와 사소한 감정에도 예민해지고, 신경증과 강박증은 물론 소화와 배변 활동에 문제를 일으키며, 심한 경우 우울증과 소외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불면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점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그 고통은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당사에게만 온전히 전해진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행복하기 싫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지를 가지고 강하게 밀어붙인다 하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분명히 다. 자신의 경우가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폭력을 행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나는 ‘프로포폴’ 같은 마약을 복용하다 적발되는 사람들의 심경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독서


겨울에는 등불 아래서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영적인 독서, 영혼의 재정비, 겨울은 도서관을 위한 시간이다. 3)

불면증을 고치기 위하여 여러 방면으로 치료를 받아보고 이리저리 노력도 해봤지만,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들인 것에 비해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어떤 의미에서 독서는 내게 종교의식과도 같았고, 고독은 선택 아닌 선택이기도 했다.


요즈음엔 인문학 열풍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지만

서사와 내러티브가 전제된 여타 장르들과는 달리, 철학은 자신과 주변의 환경에서 단서를 찾아 서사와 내러티브를 찾아가도록 만들고 그것을 다시 지적인 경험으로 승화시켜 개념화시킨 학문으로서, 다른 장르와 비교해 봤을 때 객관적인 측면이 강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도 엄격한 태도를 가지고 수용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형상은 사물의 본질적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며, 사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탄소가 열과 압력을 받는 과정을 거쳐 ‘다이아몬드’라는 새로운 물질로 거듭나듯이, 형상을 거친 질료는 처음의 질료와는 완전히 다른 물질로서 새로운 해석이 부여되게 되는 것이다. 이와 상대적인 관계에 있는 질료는 형상을 배반하여 다시 되돌아가려고 속성이 있고. 다이아몬드가 고온에서 산소와 반응하게 되면 다시 탄소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질료는 형상으로, 다시 형상에서 질료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의 과정에는 엄청난 열과 압력을 수반된다.


나는 '부처'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니체'처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도 해 봤지만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렴풋이 그것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자신을 경험하고 부여잡지 않는다면,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와 예술가들에게 스트레스와 불면증은 기본 옵션이었고 형상의 과정 속에서 '사상'과 '예술'이라는 자신만의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냈다. 그들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었고, 불안과 좌절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약한 '인간'중 하나였지만 처해진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다.


용기


나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에 압도당했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히느니, 차라리 맞서 싸워야 할 통증이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기뻐하고 있다. 어쨌거나 훨씬 구체적이니까. 4)

생각만 하고 망설였었던 신경정신과의 문을 두드리는 데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왜냐면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 자신도 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는 진실을 맞닥뜨리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사에게 상담받고 수면제를 처방받은 날부터는 이전보다 수월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물론 수면제에도 내성이 있으므로 약에만 의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위험이었지만, 나는 직면한 상황을 구체적 현실로써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지럽고 복잡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은 비정상적이기보다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한 사람일 뿐이다.


파견


나는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고 내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다. 5)


업무 때문에 목포에 파견근무를 가야 했는데, 마침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도 다 떨어져서 출장소 근처에 있는 병원을 방문하였다. 불면증에 관해서는 이골이 날 정도였고, 다른 병원에서 새로 진찰을 받는다고 해도 크게 처방이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의사에게 전과 같은 약으로 처방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때 그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약에 관한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정상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대답했다. 그는 같은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의사마다 중요시하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뭐라 판단할만한 권한은 없지만, 적어도 그 약을 장기간 복용하게 된다면 기억이 감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께 내가 돈 벌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까? 어차피 이곳에 오래 계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엔 ‘구글’에 처방전에 쓰이는 약들을 검색하면 부작용에 대해 나오니까, 한번 찾아보시고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선생님이 약을 조금씩 줄이시는 쪽으로 권장드립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병원에 다시 찾아오십시오. 일단 약은 저번과 비슷한 것으로 처방했고, 이왕 목포에 오셨으니까 오신 김에 맛있는 거라도 많이 드시고 돌아가십시오.”


지금까지 처방받아왔던 약들은 수면제, 신경안정제, 복부팽만을 완화하는 소화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방전에 나온 이름을 하나씩 검색해 보니, 의사가 지적했던 것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나는 충격에 빠졌었고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멍하니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마우스를 클릭했다.

이전의 병원에서는 약을 처방전 대로만 복용하면 건강에 크게 무리 없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었고 나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기억이 감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이 되어 목구멍으로 약을 넘겼을 때, 마치 독약을 삼킨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이 사라질 수 있다니, 그것은 불면증보다 더 큰 공포로 내게 다가왔다.


마주함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더 암울하고, 더 메마르고, 더 외롭게, 나는 강한 타격이 왔을 때 완충제가 되어줄 지푸라기 더미를 내 밑에 깔아 두고 싶다. 모든 것에 대비하고 싶다. 추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모든 걸 준비해두어야 하거든. 추워진 다음에는 아무 데나 마음대로 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6)

기억이란 어떠한 자극을 감지하고 이것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도 소환할 수 있는 정신기능을 말한다. 그것은 또한 정신과 신체를 연결하는 매개체 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해지며, 기억의 이러한 특성을 ‘연상’ 작용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경험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더라도 관계된 것을 토대로 기억을 재구성할 수도 있고, 그것은 특정 기억과 별개로 다른 기억의 중요한 맥락을 이루기도 한다.


기억이 사라지게 된다면 나의 삶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페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이 갑자기 떠올랐다.

기억상실이나 치매에 걸려 의식 없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좀 더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않을까? 스스로 자신을 떠올릴 수 없다면, 그것이 과연 '나'일 수 있을까?

뭔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강박관념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변화, 그것은 지금까지 가장 안정적으로 받아들였던 패턴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수면제 복용을 과감하게 끊기로 했다.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일 뿐이었다. 나는 직면하게 될 불안의 요소들을 찬찬히 관찰하면서 그냥 버티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불면의 밤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찌뿌둥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을 자기 위해 또다시 누웠다.

약을 다시 복용해 버릴까 하는 유혹이 강해졌지만 나는 단 하루라도 '자신'으로 있고 싶었다.


기억


겨울에 우리는 바로 그런 것을 배운다. 과거가 있으면 현재 그리고 미래도 있다는 것 어떤 일을 겪은 후에는 또 다른 시간이 온다는 것, 우리가 과거의 것으로 제쳐둔 일이 다시 되돌아오는 경우가 흔히 있듯이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일이 언젠가는 지나간 역사가 된다. 그 순환을 견뎌낼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진다. 7)


뜬구름 같은 상념이 계속되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불편했던 기억과 감정까지 함께 떠올랐고,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되는 것은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내 인생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좋았던 적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안 좋았던 것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생각나는 데 반해, 좋은 것들은 억지로 기억을 소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과 육체는 각각의 입장에서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었고, 불안에 대한 또 다른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일지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난 후로부터는 잃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나는 사형장에서 죽음을 앞둔 ‘뫼르소’의 심정이 그때서야 이해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의 나는 자신의 삶에서 변방에 있는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니 그때만큼 힘들지는 않았고, 그 일들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가 되어 더 이상 나를 위협할 수 없었다.

만약 불면증이 없었다면 삶은 수월하게 흘러갔을까? 짐작건대 별로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볼 때, 아마도 다른 어려움으로 힘들어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느새 나는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아침을 맞이할 만큼 깊은 단잠을 잤다.

그날 이후 불면증은 믿지 못할 만큼 완화되었는데.

나는 그것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여러 이론과 가설들을 생각해 봤지만, 가장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것은 칼 융의 ‘자기’ 이론이었다.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하는 정신영역의 전체적인 영역으로서 인간이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하는 핵심 원형을 말한다. ‘자아’가 의식의 영역만을 볼 수 있는 것에 반해, ‘자기’는 ‘자아’를 포함하여 무의식적 영역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자아’와 구별되면서도 그것의 특성까지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자기’ 상실이라는 공포가 불면증이라는 불안을 덮어버리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 접점이 생긴 것이 아닐까? 그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아마도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병증을 피하려고 또는 억제하려 했던 노력이 무의식적인 영역에 압박과 스트레스를 유발했을 것이고, 약은 억지로 그것을 눌렀을 뿐이다, 반면에 의사의 충고는 그동안의 시도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렸고, 그러한 충격이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영역에까지 파장을 미쳤던 것이 아닐까?


흔적


문제는 당신을 고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말했다. 당신의 기준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겁니다. 8)


아직도 사람들은 이전의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고, 언젠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을 되새겨보면 항상 좋았던 것만 떠오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피하거나 잊고 싶었던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과거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그저 시간의 기점이 멀리 있어서 좋아 보이는 것일 뿐이다.

과거에도 현실은 항상 아픈 기억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상처가 아물면 새 살이 돋을 것이고, 그 흉터는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훈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억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시간이 지나게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며, 그저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게 될 뿐이다.



『 불면의 에세이 』 논리적 구조 (챗GPT분석)


I. 윈터링의 의미

인생의 겨울에 대한 은유와 휴한기


II. 불면증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시선

증상, 파급 효과, 불안과 공포


III. 독서

겨울과 독서의 의미

철학적 사유와 치유 시도


IV. 용기

정신과 방문과 현실 직면

고통을 맞서는 태도


V. 파견

목포 파견 근무와 병원 방문

약물 부작용과 기억 상실의 공포


VI. 마주함

미래의 고통 대비

기억의 정의와 존재의 의미

변화와 결심


VII. 기억

과거·현재·미래의 순환

불편한 기억과 자각

칼 융의 ‘자기’ 이론


VIII. 흔적

삶의 기준과 의사의 말

상처와 흉터의 의미

기억의 흔적과 해석



♧ 참고도서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캐서린 메이, 웅진지식하우스(밀리의 서재 기준), 2121. 11. 25. >

1) 9p

2) 56p

3) 498p

4) 53p

5) 566p

6) 76p

7) 570p

8) 438p

9) 552p



& 성격이 많이 바뀌어 외향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내향적이고 속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기질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운동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이유 모를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가진 딜레마 중 하나입니다.


사실 저는 벽으로 둘러싸인 밀폐된 공간에서 아늑함을 느낍니다. 너무 밝은 조명보다는 주홍빛의 은은하고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선호하죠. 책을 읽을 때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을 즐기고, 글을 쓸 때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자주 듣습니다.


그에 대해 처음부터 잘 알았던 건 아닙니다. 유희열의 표절 논란을 계기로 그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듣다 보니 제 취향에 가장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자료를 찾아보고 자서전도 읽게 되었죠. 재작년에는 촛불을 켜고 류이치의 곡들을 연주하는 ‘킨들라이트’ 음악회에 참석했는데, 나중에서야 그것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였다는 걸 알고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습니다.


그의 곡 중 ‘adata’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유 없이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오곤 했는데, 알고 보니 2017년 앨범에서 투병 중 만든 곡이었고, 2021년 그는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adata’는 ‘가는 것, 출발, 여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불면의 에세이’를 쓸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습니다. 이 글은 제가 브런치 작가로 등단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당시 에세이 모임에서 만난 한 회원의 권유로 출품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에 채택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는 감상평을 남긴 분도 계셨습니다.


원래 저는 불면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준비하던 시험에서 반복적으로 실패하면서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쌓였고, 결국 우울감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위험한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다가올 날들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건 ‘이야기’들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많은 책을 읽었고,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상황을 붙잡고 의미를 부여하려 애썼습니다. 그 노력들이 종종 물거품이 되기도 했지만, 그런 의지들이 결국 저를 구원의 지점까지 밀어 올렸습니다. 그것은 결코 제 혼자만의 힘으로 된 일이 아니었고, 제 노력에 반응하듯 찾아온 것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공감할 지점을 찾지 못한 채 그냥 넘겼습니다. 머릿속에 남는 것도 별로 없었죠. 그래서 문장을 정리하고, 쓸 내용을 한참 구상했습니다. 그러다 불면증으로 고통받던 대만 작가가 새벽마다 쓴 글을 모아낸 에세이가 떠올랐습니다. 다시 책을 읽어보니, 그제야 제가 지금껏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던 문장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이렇게 솔직하게 내면의 약한 부분을 드러낸 적이 없었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제가 내향적인 사람이라 해도 ‘부산 남자’라는 정체성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살아온 환경에서는 내향적인 남자를 가만두지 않았죠. 살아오면서 많은 오해와 갈등을 겪었고, 그런 상황들을 겪으며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제 내면에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굳이 끄집어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그것들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아마 그래서 이 글이 진정성 있게 읽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자,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계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글을 가장 먼저 넣고 싶었지만, 난삽한 문장을 고치고 다듬다 보니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글을 읽은 이들이 지친 삶을 조금이라도 다독일 수 있다면, 작가로서의 제 여정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불면의 에세이 >


잠이 오지 않는 밤, 난 글을 쓴다
눈을 감아도 멈추지 않는 생각들
내가 살아있는 것은 무슨 의미

난 세상을 바꾸고 싶었어
난 잠들 수 없는 밤에도 내 꿈을 믿었어
난 상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부서진 나의 꿈들은 불면의 에세이로 남아

난 나만의 이야기를 쓴다
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쓴다
난 누구도 읽지 않을 글을 쓴다
난 잠들 수 없는 밤에 희망을 쓴다



다가오지 않은 이 시간이 끝없이 골몰하는 동안,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특별한 것들을 놓치고 만다. 사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전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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