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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May 10. 2024

약을 먹지 못하는 고통

의료비 10% 할인의 한계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임산부의 삶. 받아들이기로 선택했지만 결코 녹록지 않았다. 특히 태아를 보존해야 하기에 약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어 일상생활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알려진 타이레놀이 있었지만 하루 6알을 복용해도 내 통증을 조절하기에는 부족했다. 한의원, 정형외과, 마사지샵 등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치료들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지만 오로지 아기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임산부는 법적으로 의료비 10%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안삼기도 했다. 다치기 전까지는 병원에 갈 일이 별로 없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기 싫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참 교만하기 그지없다.


"우리 때는 그냥 참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치료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우와. 임신하면 10% 할인되는 거예요? 좋은 혜택이네요."


임신한 몸으로 여러 병원을 방문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넘기기 어려운 말도 종종 들었다.


'이 침 맞아보셨어요? 엄청 아픈데. 뱃속 아기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좋은 혜택이죠? 그런데 병원비는 제가 내요. 저도 건강보험료 꼬박꼬박 납부했고요.'


속에 있는 말을 내뱉지 않았지만 불쾌했다.


"임신만 해도 힘들 텐데요. 많이 아프죠?"


반면 내 입장을 배려한 마음이 담긴 한 마디는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빛이 되었다.


통증으로 밤에 잠을 자지 못해 신경안정제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부분 태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에 명상과 기도로 버티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면역력 저하로 코로나에 확진되고 독감에 걸렸다. 당장 출근이 급해서 수액을 맞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 거절당했다.


어느 날 밤 목이 부어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지더니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남편이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데려갔다. CT를 찍을 수 없었다. 초음파 일정을 잡고 재방문하니 임파선염이라고 했다. 약 먹고 푹 쉬면 낫는 병인데 임산부라 선택할 수 있는 약물이 제한적이기에 한계가 있으니 가급적 쉬라는 말을 들었다.


외식하러 갔다가 중심을 잃고 심하게 넘어졌을 때도 정형외과가 아닌 산부인과에 먼저 갔다. 아기가 무사하다고 했다. 눈물이 났다.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임산부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병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기가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산모 옆에서 우는 게 미안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임산부 의료비 10% 할인혜택. 매우 훌륭한 제도임이 확실하다. 약을 먹지 못하는데 병원비 할인혜택까지 없었다면 더 서러웠을 것이다. 임신은 개인의 선택이며 혜택은 배려이기에 배려를 결코 당연시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임산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으로는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는 말이다.  


옛날에는 그런 것도 없이 다 참고 살았으니 지금은 좋은 세상이 맞다. 그러나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 말이 하고 싶다면 당신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부터 내려놓아라. 옛날에는 스마트폰 같은 것 없어도 잘만 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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