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letter 2
온아,
주일 아침 언젠가 너와 함께 거리를 걷다 낙엽 한 장이 내 어깨를 스치고 바닥으로 떨어졌어. 걸음 하나에 바스러지는 갈색 잎을 볼때 나는 괜히 너에게 한번씩 묻는다.
“나를 사랑해?”
그럼, 당연하지. 이어지는 물음은 또 당연히,
“나를 왜 사랑해?”
그야, 우리는 운명이니까.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지? 몰라. 나는 왜 이렇게 너에게 틈만나면 그 이유를 묻고싶은지. 네가 답한 그 운명이라는 단어를 왜이렇게 흡족해해는지. 그래! 네가 이 질문을 지겨워한 김에, 오늘은 우리가 하고있는 사랑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사랑과 운명에 대해.
이 질문은 아마 네 군입대를 막 앞두고서 시작되었을거야. 만난지 일 년도 채 되지않아 너는 머리를 빡빡밀고 나라의 부름에 응해야한댔어. 군대 다녀오지 않은 남자는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며 지난 첫사랑 앞에서도 당당히 선언해놓고, 나의 업보지 뭐.
널 군대 훈련소에 보내놓고 나는 우리의 관계가 과연 운명일지 우연일지, 운명을 만드는 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어. 우리 사이의 많은 우연은 어떤 시점에서 운명이 되고 그게 진짜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운명이 맞는걸까?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에서 운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해.
사랑 내부의 관점에서는 삶의 우연적 성격을 목적성이라는 베일 뒤로 감춘다. (...) 우리는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운명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인생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의미도 우리가 만들어낸 것 일 뿐이며, 두루마리같은 것은 없으며[따라서 우리를 기다리는 미리 정해진 숙명은 없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해두지 않았고, 우리의 사랑을 보장해주지도 않았다는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오랫동안 쌓아온 우리의 모든 이야기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낭만적인 착각일 뿐이라니. 그의 글은 날선 칼로 뜨뜻물렁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각내는 것 같지만, 그 속엔 운명과 사랑의 중요한 본질이 있어.
내 실수는 사랑을 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필연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우리가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결국 우연일 뿐이라고, 5840.82분의 1의 확률일 뿐이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 동시에 그녀와 함께하는 삶의 절대적 필연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 즉 그녀에 대한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너와 내가 사랑을 시작한 순간 우연은 모순적이게도 ‘필연적 우연’이 되지만, 사랑이 끝나면 예쁜 모양으로 묶여있던 운명의 실도 이내 힘없이 풀어질거라는 사실. 사랑하면 운명이요, 사랑하지 않으면 우연인 것.
시니컬한 그의 말은 내게 실망을 주었지만, 나는 곧 깨닫게되었어. 나는 어떤 객관적인 지표나 증거에 의해, 내심 우리 관계가 운명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는 거야. 하지만 그 답은 밖에 있지 않아.
너와 나 사이 겹쳐진 우연을 시간의 강에 흘려보낼 것인지 아님 아름답게 엮어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내 옆에 둘 것인지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서, 기꺼이 정해진 운명이고 싶어하는 욕망. 약간의 불안과 조급함이 섞인 내 의문자체가 이미 사랑의 향기를 풍기고있다는걸. 이제는 이해하겠어?
그럼 도대체 사랑은 뭘까? 내가 의지하는 인물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또한 사랑은 어려운 것이라고 고백해. 책 속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들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일'이자, '궁극적인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라고. 그렇게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에게도 어려운 게 사랑이라니. 그렇다면 정말로 그런게 틀림없어.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어 헌신하여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미완성인 사람 그리고 무원칙한 사람과의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 보다 넓은 세계... 나는 어떤 세계를 만들며 살고 있던가?
이에 알랭 드 보통이 덧붙이지.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랑 안에서 자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본다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나를 보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신이나 짝이라면 더욱 좋다. 우리가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의 역사를 수도 없이 말해주었는데도 우리가 결혼을 몇 번 했는지, 자식이 몇 명인지, 우리 이름이 브래드인지 빌인지, 카트리나인지 캐서린인지 자꾸 잊어버리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다가, 마음속에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새겨두고 있는 사람의 품에서, 시야에서 사라질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를 발견한다는 것은 위로가 되는 일이 아닐까?
그 어떤 세계란, 나의 정체성을 말하는듯해. 결국 사랑을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정체성 속에서 살아가게 되지. 조금 더 넓어지고, 멋진 나로서. 작가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상대를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거든. 맞아 인정이야. 사랑에 빠져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거야. 한마디로,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잖아. 그러니 누군가의 연애에 대해 묻는다면 그의 말처럼 “그(녀)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말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어야 정확할거야.
상대방을 이상화하는 콩깍지의 평균 수명은 약 2년. 2년 넘게 사랑을 지속하는 커플이 있다면,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내면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해. 서로의 눈을 통해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끊임없이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봐봐,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네게 말했었지? 너와 떨어져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이런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 그러곤 나름의 결론을 내렸지.
나는 너를 통해서 보는 나의 모습이 좋다.
네 날개 아래서 성장해갈 내가 좋다.
너를 내 운명이라 부르기로 결심했다.
오래된 양피지의 비밀처럼 너와 나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쓰여있길 바라는 대신, 나는 흰 종이 한 장을 새로이 펴놓고 우리에게 펼쳐질 많은 우연을 운명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내 손으로 적어나가겠다.
매일 나는 네 눈 속의 나를 본다. 새로운 세계로 거침없이 뛰어든 나는 그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나의 의지가 있는 한, 내 사랑이 마를 일은 없다. 운명 아닐 일도 없다.
나의 사랑, 나의 운명
달콤함에 몸서리가 쳐지는 오늘의 글을 네게 그냥 보여주기는 아쉽다.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운명이, 지난 10년의 내가 자랑스러워지는 아침이거든. 그러니 오늘은 달리기를 건너뛸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주는 건 어때? 비가 오려고 해. 물론 핑계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럼 이번주도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보자. 좋은 하루!
로잔, 2025.
네 운명이길 선택한
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