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모퉁이를 돌아 가자 마자 보이는 언덕 바로 아래 자리 잡은 잡화점, 누구나 들어 갈 수 있고 아무하고도 낯을 가리지 않는 온실 같은 바로 그 곳.
우리 동네엔 없는 게 있는 것보다 더 많지만 그 모든 것들이 풍요로운 하꼬방이 있다.
동네 사람들이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러서 주인 얼굴을 확인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바로 그 곳.
은산이 머무는 곳.은산이네.
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은산이네는 할머니때부터 담배나,막걸리를 팔았던 곳이었고 좀 더 슈퍼의 면모를 갖춰서 장사를 시작하기 시작한 것은 은산이의 아버지가 소뿔에 받혀서 죽자 은산이의 엄마가 가게를 개조를 해서 본격적으로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부터이다 . 은산이의 할머니는 농사를 하면서 집 한켠에 가게를 들이고 가벼운 과자나 담배, 술 같은 걸 팔았지만 그 때는 가게라고 하기에도 어줍잖은 형태였다.
은산이의 아버지가 죽자 농사 짓기가 어려워진 은산이의 어머니는 어린 은산이와 뱃속의 은산이 동생을 키우려면 농사보다는 장사가 좀 더 나을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작된 우리동네 유일한 슈퍼, 은산이네가 탄생한다.
간판도 없던 가게에 간판도 생기고 물건도 때수건에서부터 간장, 밀가루, 과자, 나아가서는 아이스크림까지 갖추어 놓는 슈퍼로 변모하게 된다.
설탕하나라도 떨어지면 1시간씩 걸려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던 동네 사람들에겐 더 없이 행복한 복지가 생긴 듯했고 그래서 꽤나 적극적으로 슈퍼의 이용을 장려하고 나아가서는 협력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은산의 엄마는 장사가 체질에 맞았는지 시어머니가 농사 일을 나가는 것도 극구 만류해서 집을 지키게 했고 은산과 은산의 동생을 돌보게만 하면서 가장 노릇을 든든하게 해냈다.
은산이네 앞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참나무가 있었고 마을주민이던 외지인이던 그곳을 지나는 누구라도 그 나무의 위용에 감탄을 넘어 경외감까지 들어서, 나무 주변을 꼭 한바퀴 돌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또 그 옆에서 말간 얼굴로 사람들을 지켜보는 아이의 얼굴에 신비롭게 끌려 은산이네 슈퍼로 들어가게 된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 가면서 딱히 필요한 게 있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마치 그때 그것이 필요했던 것 마냥 물건을 사서 나오게 되는 그런 곳이 바로 은산이네,이다.
은산의 엄마는 은산이를 스물 두살에 낳고 스물세 살에 은산의 동생을 뱃속에 두고서 남편을 잃었다.
남편이 죽고 은산의 동생을 낳고도 은산의 엄마는 은산이가 귀가 안 들린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재산 하나 남겨 놓지 않고 간 남편을 원망해야 했고 이내 아이를 낳아서 몸조리 할 새도 없이 장사를 시작해 집안의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다.
단순히 얌전하고 순한 아이라고 생각했고 힘든 엄마를 위해 그나마 복을 주려나 보다 생각을 했다.
은산의 동생이 돌도 되기 전에 말문을 틔웠고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웃고 있는 은산의 말간 얼굴을 보고서야 은산의 엄마는 은산이 뭔가 이상하다라는 걸 깨달았다.
폭풍같은 절망과 슬픔이 밀려와도 은산의 엄마는 우두커니 주저 앉을 사람은 아니었다.
딸이 말을 못하고 귀가 안 들린다는 사실을 알 게 되더라도 그것이 그녀를 주저 앉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은산엄마는 남편을 장지에 뭍고 돌아 온 그 날부터 수퍼울트라로 거듭나기로 작정했는데 그깟 작은 불편 정도야 참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자신이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하게 되더라도 딸 은산이는 햇살같은 아이로 자라게 해달라는 기도를 잊지 않고 매일 할 뿐 이었다.
큰 도시로 물건을 하러 나갈 때도 은산을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세상은 백여가구도 살지 않는 작은 우리동네와는 차원이 다르니 하고 싶은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게 엄마가 도와주겠노라고 수없이 생각했다. 은산의 엄마는 지금으로 치면 젊은 여자에 속했지만 은산이네 가게를 운영하면서 젊은 여자이기를 포기했고 자신이 낳은 두 아이를 위해 엄마로 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은산엄마의 이러한 수고로움과 마을 사람들의 더없는 지지로 은산이네는 장사가 꽤 잘 되었다. 그 집에 가면 없는 게 없다 라는 소문이 나서 옆동네에서도 은산이네로 물건을 사러 왔다. 원하는 걸 은산엄마에게 말 해 놓으면 그 비슷한거라도 가져다 놓은 믿기지 않는 능력이 은산엄마에게는 있었던 듯 하다.
좀 더 어릴 적 기억에는 은산이네서 100M정도 떨어진 6.25 참전용사를 기리는 조형물앞에서 마을버스가 정차했었는데 내가 국민학교를 갈 때 쯤엔 마을버스가 은산이네 앞에서 서기 시작했다. 회색빛 금강석조형물보다는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고 알록달록 돼지저금통이 걸려 있는 은산이네가 더 정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니 그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구절초같은 은산의 얼굴을 한번쯤은 보고 집으로 가야 안심한다는 마을사람들의 공동체적인 의식 또한 존재했으리라.
은산과 난 10살정도 차이가 났는데 어린 은산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투명한 눈과 까만 머리카락을 하고서 누구에게나 환한 미소로 바라봐 주는 동그란 영혼이었다. 옆에는 은산이 만들어 놓은 도토리성을 무너뜨리는 은산의 동생이 있었고 파란 하늘과 깃털에 윤기 흐르는 까치가 은산이네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은퇴를 하고 귀촌을 할 요량으로 고향을 다시 찾았을 때도 나의 유년기 고향마을의 향기를 품은 은산이네가 거기서 그대로 존재했고 말간 얼굴을 한 은산이가 여전히 거기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은산의 엄마가 장사했던 그때의 풍모를 갖추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 대신에 은산이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정갈하고 포근한 정취는 그대로 유지한 채 마을의 가장 오래된 참나무와 같이 앉아 있었다.
이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아이들이 남아 있지 않고 마을버스는 자주 오지 않지만 은산이네 슈퍼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서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놀라웠다.
30년 전 내가 부모님과 같이 그 마을을 떠나던 그대로 말이다.
옆동네에서 아직도 농사를 짓고 계시는 외숙모에 의하면 은산이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엄마일을 도왔고 은산의 동생은 서울 근방 어디에서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은산의 엄마는 동네할머니들과 마을회관을 지키는 것으로 소일을 하고 있고 은산이네 슈퍼는 은산이 할머니가 운영 했을 때 처럼 담배나 술 정도만 파는 수준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참나무에서 도토리가 제법 떨어져 있을 무렵에 난 우리동네로 귀촌을 하였고 그 해는 도토리가 제법 풍년이라 동네 사람들이 집집마다 묵을 쑤어서 나눠 먹었다.
은산이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은산의 엄마는 은산이와 같이 살고 있었다. 우연히 은산의 엄마에게 들은 말 중에 은산이의 결혼에 대해 들은 말이 있는데 아마도 은산의 엄마는 여자가 능력이 있으면 남자가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 세대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생각이었지만 은산의 엄마는 그 생각이 확고했고 할머니가 된 지금도 그 생각이 확고했다. 물론 은산이 또한 같은 생각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은산이네가 너무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 하고 있었기에 난 은산이에게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게 되는데 바로 수퍼 한 귀퉁이를 개조해서 커피숍을 차리자고 말을 한 것이다. 커피 마실 사람도 없는 동네에 누가 오겠냐며 은산이는 조심스러워 했지만 은산의 엄마는 달랐다.
먼지만 쌓이고 팔리지도 않는 과자를 붙잡고 있느니 커피숍을 차리는 것도 나쁘지 않는 생각이라도 내 의견에 동조를 해 주었고 가게 앞의 커피자판기만 봐도 장사가 안 되지 않을거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문제는 개조하는 비용을 누가 낼 것인가 였다.
운영의 주체는 또 누가 될 것인가도 중요했다. 난 처음에 내가 개조하고 내가 운영을 하면서 임대비를 내겠다고 했다.
장사가 안되서 그만두더라도 은산이네에게는 크게 피해 볼 게 없었고 난 대책없는 귀촌으로 무료하기만 했기에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던 와중에 은산의 엄마가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개조와 운영을 모두 은산이네서 하고 나에겐 직원으로 월급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에겐 손해 볼 게 없었지만 그 또한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많은 돈을 썼는데 장사가 안되기라도 하면 너무 미안한 일이지 않는가.
은산이도 은산엄마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여러모로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괜히 무사평온하게 살고 있던 사람에게 바람을 불어 넣어서 망하게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커피숍을 제안 한 것도 나였는데 망할 생각부터 하다니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또다른 제안을 했다. 내부개조는 은산이네서 맡고 커피숍을 하기위한 집기류는 내가 책임지기로 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을 꺼냈다. 나는 이미
도시에서 커피숍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어서 기계들을 싸게 사고 팔 수 있는 구조를 알고 있었다. 어찌어찌 헤어지더라도 나는 기계만 빼서 나오면 되니 나와 은산이의 책임과 부담이 조금씩 나눠지게 된다고 말이다.
내 생각에 은산과 은산엄마가 동조를 해 주었고 그럼으로 일의 진행이 점차 빨라졌다.
우리의 계획이 마을에 알려지면서 이장님 또한 두 팔을 걷어 부치며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농촌에는 귀촌과 창업에 대한 지원이 많다는 걸 그 때 알게 되었다. 면사무소와 읍사무소를 일일이 방문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봐 주었고 서류도 또한 꼼꼼하게 도와주었다. 공무원들에게 문의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던 지원 정책들이 많다는 것을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 중 지역특산물 판매장을 겸하면 지원금을 일부 받을 수 있는 정책이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알맞았다. 동네에서 나오는 먹거리들을 매장에 구비해서 판매하게 되면 주민들의 살림살이에 도움도 되고 은산이네가 예전에 누렸던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나기에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은산의 엄마는 커피숍에서 커피만 판매할 게 아니고 마을회관에서 만들어 먹는 과일청이나 효소도 판매하라고 의견을 내어 놓았고 그것은 이미 내가 도시에서 커피숍을 할 때 판매하던 품목이었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은산엄마는 도시의 커피숍 트렌드를 알고 있기라도 하는 냥 내어 놓는 의견마다 버릴 것이 없었다.
은산은 슈퍼만 운영할 게 아니고 간단한 빵을 만들어 팔았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던진 나의 말이 이내 실천적인 결과를 가져왔고 반년동안 제과제빵을 배우러 다닌 은산은 마들렌이나 피낭시에 같은 빵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은산이네 슈퍼가 빵과 커피를 파는 가게로 변모할 준비들이 착착 이루어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십대 어린 시절로 돌아 간 것마냥 신이 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가게이름을 결정하는 의견들이 분분했는데 난 은산이네라는 상호를 유지하자고 하였고 은산이는 이름을 바꾸자는 쪽으로 의견을 내었다.
은산이라는 이름이 촌스럽다는 것이 은산의 생각이었고,정겹고 푸근해서 유지하자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은산의 아버지 이름인은중과 은산의 어머니 이름인 산애라는 이름에서 글자를 따와서 은산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지어준 이름이 은산이다.
이 동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은산이네, 이름을 포기하기에는 그 값어치와 문화유산이 대단한데 그걸 포기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은산은 자신의 이름이 커피숍과는 어울리지 않게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산의 엄마가 또한번 중재안을 낸 것이 ‘은산이네 하늘커피숍’이었다. 하늘은 나의 이름이다.
은산이네를 포기하면 안된다는 나의 생각과 커피숍에 어울릴 만한 이름이어야 한다는 은산의 생각이 다 반영 된 이름을 내어 놓았는데 이장님의 추천이 가미되면서 최종안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동네에, 있던 하꼬방은 슈퍼를 겸한 커피숍으로 탄생한다.
“은산이네 하늘커피숍”으로.
은산이네 슈퍼가 처음 들어 올 때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동조해 준 그것처럼 이번에도 그 모든 마음들이 모여서 말이다.
내가 은산이네와 같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건 은산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속의 은산은 귀가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않는 소녀였었지만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은산은 말을 제법 잘 하였고 또 전달력이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음가 또한 정확해서 굳이 수화가 끼어들지 않아도 누구나 알아 듣기가 가능했는데 나는 어째서 은산이 말을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한 부분이다. 때론 마을의 어르신들의 말이 알아먹기가 더 고약한데 그에 비하면 은산이는 전달력이나 입모양등이 너무 정확한 표현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런 여러가지 부분에서 내가 은산이를 오해하고 있었고 또 나의 오해가 미안하기도 했다.은산에게 말을 따로 하진 않았지만 내 마음이 그러했다.
은산과 나,그리고 은산엄마는 제법 마음이 맞았는데 이는 아마도 은산과 은산엄마가 나에게 맞춰서 일을 추진했던 것이 더 컸으리라. 50대,60대,70대의 중년들이 모여서 인생이모작을 새로이 완성해 가려고 하니 젊은 시절엔 알지 못했던 노골거리는 인생의 느낌들을 알았고 그래서 아등바등해봤자 달라질 건 없으리라는 걸 미리 짐작하고들 있었던 듯 하다. 일을 재촉하지 않기도 했지만 셋다 이런 성격이었던 탓에 커피숍을 계획을 하고 마무리까지 꼬박 1년이 걸렸고 이 시간 역시 마을 이장님이 아니었으면 더 길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게 앞의 참나무가 푸르른 빛을 머금고 있을 때 '은산이네 하늘커피숍' 문을 열었고 지금은 오픈을 한지 1년이 지나간다.
물론 장사가 잘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다. 그래서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는 짐작은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아직 없다. 아직은 꽤 즐겁다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한쪽이 무뎌진 나이로 접어들어서 그럴수도 있고 진짜로 즐거워서 일 수도 있다.
때때로 마을에서 위탁한 농작물이 더 많이 팔릴 때도 있고 하루종일 담배만 팔릴 때도 있다. 그러할 뿐이다.
인생이 아무리 굴곡지고 허허로워도 마음이 풍요로워 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우리동네,하꼬방 '은산이네 하늘커피숍'이 주는 에너지가 그러한가 보다.
난 모든이의 정성과 사랑이 협력한 수줍은 이 하꼬방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