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종길은 병원에 가는 게 싫다.
구도심에 있는 작은 병원이지만 하루에 보는 환자수도 적지 않은 편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 치위생사가 다섯명. 모두 상냥하고 일들을 잘한다.
아침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오래 근무한 송선생은 언제나 종길에게 말한다.
"선생님, 조금만 일찍 나오세요. 환자들은 대부분 9시부터 나오세요."
"네에."라고 대답하지만 종길은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다.
9시30분부터 진료라고 정해져 있으면 9시30분에 와도 될 것을 왜 30분이나 일찍 와서 시간을 허비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이 병원에서 제일 늦게 출근하는 사람이 종길씨 일것이다. 진료 시작 5분 전에 문을 열고 들어 가면 언제나 송선생은 한숨 한번 쉬면서 종길에게 인사한다.
종길이 송선생에게 견딜 수 없는게 한가지 있는데 아침마다 틀어대는 찬송가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참으로 이기적이다. 왜 받기만을 원한단 말인가. '사랑을 주기위해 사람난 사람'이면 얼마나 좋은가. '당신은 사랑받고, 사랑주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면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너도나도 애정결핍이라는 집단감염에 걸려서 사랑을 받기 원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 할 일이다.
투철한 주인의식과 넘쳐나는 인간애로 언제나 종길을 한숨 가득 바라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길이 송선생과 헤어질 수 없는 건 그의 막강한 카리스마 때문이다.
아래의 치위생사들을 관리하는 수고로움을 모두 담당해주는 것은 참으로 종길에게 필요충분 조건이다.
최근에 입사한 막내는 스물여덟살이다. 범수영
막내 치위생사의 이름이다.
성씨가 범씨는 태어나서도 처음 듣는다. 범선생은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이 많다는 송선생의 의견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점도 특징 중의 하나다. 그러나 범선생은 말이 너무 많다. 종길은 이런 범선생의 많은 말들을 참아낼 수가 없다. 오랜 단골가게인 여우별김밥집을 배제하고 최근에 고봉민 김밥으로 갈아탄 것도 범선생의 의견이 한 몫했다. 오백원 더 비싸지만 밥의 양이 적고 채소가 더 많으며 무엇보다 체인점이라 믿을 만 하다는 설득에 다른 모든 직원들이 별의견을 달지 않았고 종길 역시 오백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아느냐는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아서 단골가게가 바뀌어 버렸다.
특별히 더 맛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루에 지출하는 점심식대가 더 늘어 난 사실을 밥알 한 알 한 알에 새기면서 먹는 점심시간이 되었다. 종길은 김밥이 최고의 음식이다. 간단하고 영양이 다 갖추어진데다 맛까지 좋으니 이보다 더 훌륭한 음식은 없는 듯 하다. 범선생이 오면서 메뉴가 수시로 바뀌는데 이 또한 종길에겐 낯설다. 본인이 낸 돈으로 밥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종길은 그 점심시간이 즐겁지가 않아졌다. 여우별에서 이천원짜리 김밥 두줄이면 해결 될 점심이 범선생이 오면서 천지가 개벽하게 바뀌어 버렸다. 하루는 순대국, 하루는 초밥, 하루는 햄버거, 하루는 짜장면. 하루는 고봉민김밥, 하루는 피자.
다른 직원들이 전에도 점심 메뉴를 좀 다양하게 했으면 한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아무런 변화가 없던 점심시간이었는데 사람 한 명이들어 왔다고 이렇게 버라이어티하게 매일매일 다른 음식이 찾아올 줄은 상상을 못했다.
전에 비해 병원공기가 좀더 밝고 명랑해진 게 분명하지만 종길은 이 모든게 불안하다.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기라 숨쉬는 것조차 낯설다.
자신의 병원이지만 그러하다.
종길이 아침마다 병원엘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것말고도 또 있다.
입냄새를 풍기는 환자들, 음식찌꺼기가 덕지덕지 끼어 있는 환자들,사랑니가 아까워 뽑지 못하는 환자들, 손도 안 댔는데 아프다고 신음하는 환자들, 무엇보다 제일 참을 수 없는 환자는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 환자이다.
아퍼서 왔고 의사에게 치료받길 원하면 환자가 말하지 않아도 의사의 권유대로 치료받으면 좋을텐데
'굳이 이빨을 뽑아야 되요?' , '신경치료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요?',
'다른 병원보다 싸게 해 줄 수는 없나요?' ,
' 이거 보험되는 거 맞죠?',
' 스켈링하고 나서 이빨이 더 흔들려요.'...
등등.
이런 저런 여러 말들이 치료에 집중을 해야 하는 종길에게는 여간 신경 쓰이는 말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저기 사방으로 튀는 비말과 분진가루로부터 보호도 해야 하고 작은 틈을 종일 집중해서 보고 있으려니 눈알도 둘러 빠질 것 같은데 진료가 마음에 안 드는 듯한 말들을 들으면 참으로 피곤이 쌓인다는 생각만 든다.
하루종일 거북목 자세를 하고 있다보면 어깨와 머리의 통증은 달고 살아야 하고 정교하게 긁어내는 작업을 하다보니 손목관절도 늘 욱씨근하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치과의사. 하지만 실력만큼은 자신하는데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환자들의 말을 듣고 있자면 아픈 머리가 더 아파온다는 것이다. 비전문가이니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말하는 사람이 다수이겠지만 환자와의 대화가 힘겨운 종길에게는 모든 말들이 지끈거리는 골치가 더욱 악화되는 요인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이다지도 어렵다니 해도해도 적응이 안되는 자신이 요즘은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종길은 본인이 의사 보다는 기능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기능공의사.
종길은 치과가 의외로 적성이 맞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들고 조각하고 꾸미는 걸 좋아했는데 나아가 공부까지 잘했으니 이보다 더 어울리는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학교다닐 때는 누구보다 재미를 느끼면서 배웠고 생명을 좌지우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만족감이 들었다.
하지만 의사도 자영업자인지라 사람을 만나서 상대하고 설득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개원을 하고서야 깨달은 것이다.종길의 스승 중 누구도 이런 사실은 말해주지 않았다. 의사는 장사꾼이라는 걸 말이다.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치료를 하면 너무 좋겠지만 그건 가능하지 않는 일인 것이고 그래서 종길 옆에는 말을 잘하고 친절한 동료 치위생사들이 많은 것이다.
종길이 환자들에게 해야하는 말들을 치위생사들이 모두 잘 해주고 있으니 점심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이것은 종길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모든 일들을 차체하고서라도 병원은 종길의 것이고 종길의 수고가 오롯이 물든 곳이데 어째서 가기가 싫은 것인지 대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겨울의 끝자락에는 증상이 더 심해지는데 길바닥에 꼬불거리며 올라오는 새싹 때문이라면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른다.
코끝을 스치는 봄바람 때문이라고 말하면 누가 그 기분을 알까.
아침부터 눈에 들어온 목련 꽃 몽우리가 병원으로 가는 종길의 발목을 잡는다고 말 하지 못한다.
알록달록한 가방을 매고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빛나는 눈동자가 또 병원을 가기 싫게 만들지만 종길은 참는다.
돌 틈에 삐쭉 올라 온 보라색 꽃 잎이 종길의 늑골뼈를 간지럽히지만 무시하고 병원으로 가야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사실이 종길에겐 아득하게 먼 우주에 두고온 추억의 한 쪽을 펼치는 듯 심장이 떨려오고 발걸음이 느려지게 만든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어깨와 목근육이 돌처럼 굳어 있고 눈주위의 머리가 늘 아프지만 봄이 오는 이 계절에는 더 아픈 것 같다.
종길은 그래서 병원엘 가기가 싫다.
아침에 일어나 느껴지는 나근거리는 봄 기운을 무시 할 래야 할 수가 없으니 더더욱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세상에 내어 놓아진 어린아이의 그때처럼 한없이 혼란스럽다.
시간이 정신도 없이 흘러버려 어느새 중년에 이르렀고 그 사실이 그저 당황스러운 감정으로 다가오는 건 종길만 느끼는 감정인지 어째서 이런 감정들에 발이 무거워지는지 누구도 종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 나이가 되어 버렸다.
누구는 아직 젊다고 하고 누구는 딱 좋은 나이라고 한다.
우주의 누구도 더 젊거나 딱 좋은 나이라는 건 없다. 자신이 그렇게 느껴야만 정의 내릴 수 있는 나이인 것인데 종길은 어느날 너무 나이가 먹어버린 듯 하다.
병원에서 횐자의 치아만 하루 종일 보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비루하고 참혹한 외모를 보고 있으니 더욱 애잔하다.
병원에 앉아 있는 종길의 존재가 요즘 그러하니 병원엘 가기가 싫다.
이 계절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는지.
종길은 알 수 없다.
오늘도 교정환자와 임플란트 수술환자들이 몇 명 있다.
아침부터 뒷목이 아프지만 종길은 병원 문을 열고 들어 간다.
병원에 나오기 싫었다는 얼굴을 지워버리고 말이다.
송선생은 어김없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틀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