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의 탄생

엄마의 첫 손자

by 보라빛창가
"아기집이 두 개네요 ~ "
"네??"


한새연우 초음파사진1.jpg 오른쪽 큰아기 집이 첫째, 왼쪽의 작은 아기집이 둘째입니다...^^


35살의 늦은 나이,

뒤늦게 아기를 갖고자 노력했지만

반년 가까이 아이가 생기지 않자, 남편과 나는 그냥 마음을 편하게 갖기로 했다.

그러나 맘 카페의 선배맘들 말대로 마음을 비운 후, 갑자기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울과 봄이 만나는 3월

꿈에 그리던 귀여운 아들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쌍둥이 엄마라니...게다가 아들 쌍둥이..."

남편과 나는 마주보며 피식 웃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작은 아이는 몸무게가 2kg 미만이라 열흘간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긴 했지만,

둘 다 건강한 편이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보니 드디어 엄마가 된 것이 실감났다.


엄마에겐 첫 손자였다.

언니와 형부는 일명 딩크족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언니와 형부를 볼때마다 빨리 애 하나 낳으라고 성화였지만,

결국 엄마의 바람은 둘째딸인 나를 통해 성취되었다.

첫 손자를 본 엄마의 눈에선 그야말로 꿀이 떨어졌다.


산모들의 천국이었던 산후 조리원에서 머물다 집으로 오자마자,

엄마는 우리 집에서 2주간 머물며 나와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출산 후 첫 한 달은 아이가 2시간 마다 배고파서 깨고 그 사이 기저귀 때문에 또 깨서 낮이고 밤이고 잠을 거의 자지 못한다.

게다가 아이를 낳고 나면 호르몬이 변해서인지 그때의 나는 결벽증에 히스테릭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혹시 나쁜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극도의 깔끔을 떨었다.

이미 아이를 키워본 선배인 엄마는 괜찮다 하여도 나는 타협하지 않고 엄마에게도 나의 방식을

모질게 강요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애기 아프면 엄마가 책임질 거야?"
"도데체 엄마가 도울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엄마는 이런 비수 같은 말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식사를 거를 때도 있었고, 잠도 제대로 자지못하고, 온갖 고생을 다한 후 거의 초주검이 되어, 약 2주가 지난 어느날 집으로 도망치듯 가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제일 바보 같고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다. 왜 그때 난 엄마는 함부로 해도 되는, 내 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 최후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냥 엄마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동의 하지 않았지만...


그 후 엄마가 며칠 알아 누우셨다고 언니에게 원망 섞인 전화가 왔다.

'언니 너무해... 나 힘든 것도 모르고...'

나만 타박하는 언니에게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한편이 나도 모르게 아려왔다.

'참 나쁜 딸이네... 나란 사람...'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친정엄마이기 때문에 아기를 낳으면 당연히 딸의 산후조리를 도와야 하고, 신경질도 다 받아줘야 하고, 육아를 같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딸의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것은 고맙고 감사한 일이고 그 노고를 반드시 알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엄마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알콩달콩 좀 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을 것 같아 가슴 아프다.


나중에 아이들이 크고나서 엄마는 지나가듯 이야기 하셨다.

"그때 아이 봐줄때 다른집 딸들은 용돈도 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던데... 너넨 너무 몰랐어...

좀 서운하더라.."

한번도 당신딸을 남과 비교해서 언급한적이 없었던 엄마가 그런말을 하니 무척 놀랐었다.


집에 돌아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괜찮아...불쌍한 우리 딸... 고생한다. 애기만 보지 말고 너도 밥 좀 잘 챙겨 먹어"

하며 걱정을 해주셨다. 눈물이 핑돌고 갑자기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졌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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