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가 자꾸 줄어들고 부쩍 소화가 안된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언니가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피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종양표지자 수치가 너무 높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에이, 설마 뭐가 잘못됐겠지'
그럴 리가 없었다.
우리 가족 중에 암환자가 생기다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
CT 촬영 후 결과를 보러 들어가니 의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뭔가 덩어리가 있네요.... 조직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조직검사하기 전이지만 육안으로 보았을때는 위암 3기로 예상된다고 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암환자가 되었다.
의사는 서둘러서 수술을 권했다.
수술을 안 하고 싶다는 엄마의 의견을 무시한 채 언니와 나는 수술 날짜를 바로 잡았다.
아직 겨울과 봄이 섞여 쌀쌀한 2월 말 엄마는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점심 꼭 챙겨 먹으란 거였다.
수술하는 마당에 밥이 뭐가 중요하다고...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울컥했다.
엄마가 수술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엄마를 들여보내고 처음으로 현실을 마주했다.
엄마가 진짜 암환자고 수술하러 들어갔고 살아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확 느껴져 펑펑 울었다.
엄마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로 암덩어리를 깔끔하게 제거했고 더 이상 전이된 곳은 없다고 하셨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 엄마에게 잘해줘야지'
엄마 얼굴에 가만히 손을 대보았다.
온기가 느껴졌다.
엄마가 여전히 내 곁에 있어서 감사했다.
잠시 후 엄마가 눈을 떴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엄마 눈을 보았다.
'엄마 살아서 다행이야... 다 잘 될 거야...'
엄마가 퇴원하면 당분간 우리 집에서 간호를 하고 싶었지만 집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언니네 집으로 모셨다. 언니는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잠시만 간병인을 부르기로 했다. 이삿짐이 정리되면 엄마를 바로 집으로 모셔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2주도 되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숨쉬기 힘들고 식사도 힘들다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네 집으로 가봤더니 엄마 배가 이상하게 불러 있었다.
게다가 숨 쉬는 것이 힘들어 보였고 기운이 없었다.
근처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수액을 맞췄지만 엄마는 더 힘들어 보였다.
이삿짐이 정리도 되지 않는 집으로 엄마를 바로 모셔왔다.
집에 와서 조금 쉬고 나니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첨에는 바보같이 배가 나온 것이 뱃살이 찐 것인지 알고 운동을 하자며 엄마를 데리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