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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다니엘 Aug 25. 2022

51세의 출사표 - (19)

2장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 (7)

공연 연습


1991년 봄학기가 시작된 후, 나는 유매스 애머스트 인근 대학교에서 <한국의 밤> 행사에서 노래를 할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모든 면에서 항상 내성적이었고 노래도 썩 잘하지 못하는 내가, 그때 왜 그 행사에 참가하겠다고 자원했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활기 없고, 뚜렷한 목적도 없이 살고 있던 나의 삶에 돌파구가 될만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고, 그 당시 판단으로는 내가 그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내가 찾던 내 인생의 돌파구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선곡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한국의 트로트 장르나 미국의 Top 40 팝송들은 제외했고, 그 이유는, 그런 장르의 곡들이 그 행사의 취지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그러다가 그 당시 유행하던 한국 가요 한 곡을 선택해서, 그 <한국의 밤> 행사관계자에게 알렸다.


그러나 나는 그 곡의 MR, 또는 경음악이라고 할만한 반주 녹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노래를 부르려면 내가 어떤 악기를 사용해서 관객들 앞에서 직접 노래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무리 없이 어떤 악기를 연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런 방식으로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또한, 내가 그런 연주 실력을 설사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당시의 나는 관객들 앞에서 어떤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할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곡을 반주해줄 반주자를 찾아야 했고, 어느 선배의 소개로 만난 그녀에게 그 곡에 대한 반주를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노래 연습을 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물론 노래 연습을 제대로 해야 한다면 유매스 애머스트의 아트센터 건물에 있는 음악 전공 학생들이 사용하는 연습실을 사용하면 됬지만, 그 장소는 내가 살던 곳이나, 내가 강의를 듣던 여러 교실들이 있는 건물들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텅 빈 버스를 몰고 버스 차량기지를 출발해서 내 아침 버스 운행이 시작되는 첫 정류장까지 가면서 그 노래를 연습했고, 또 저녁에 버스 운행이 있는 날이면, 맨 마지막 정류장에 승객을 하차시킨 후, 빈 버스를 몰고 버스 차량기지로 돌아가는 시간을 활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한국의 밤>이라는 인근 대학교 행사는, 내가 그렇게까지 공을 들여서 노래 연습할 만한 행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왠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물론, 나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걸 자주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간날 때마다 그렇게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하면서도 내가 그 무대에 서는 것이 맞는 일인지, 아니면 공연한 호기 부리다가 음이탈이나 여러 번 내면서 관객들의 웃음거리가 되진 않을런지 등의 자기회의와 우려를 항상 반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드시 그 무대에 서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왜냐하면 그 무대에 서는 것만이 그동안 모든 일에 소극적이고, 나태하며, 게을렀던 나 자신을 완전히 깨부술 수 있는 인생의 돌파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당시 나는 만약 그런 대학교 행사가 없었다면 나 스스로 만들어서라도 그 무대에 선 후, 나 자신을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 세우고 싶었다. 그게 나였으니까. 그리고, 그 공연 무대가 내 인생의 유일한 돌파구라고 판단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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