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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다니엘 Sep 16. 2022

리스타트 51 - (34)

통학열차


안개 속의 갈림길


내가 2학년 과정으로 진급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받고 미처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법과대학원에서 가깝게 지내던 클래스메이트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녀가 어떻게 내가 2학년 과정으로 진급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궁금하지만, 아마도 나쁜 소식은 발에 날개를 단 것처럼 퍼진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지 싶다. 


“다니엘, 괜찮은 거야?” 


“어, 그럼. 괜찮지.”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야?”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몰라. 사실 아무것도 결정한 것은 없어. 하지만 방법이 있겠지. 걱정하지 마.” 


나는 내 나름대로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상태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내게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지금 내가 다니엘한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 아무튼 나하고 대화를 하고 싶거나,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내게 말해줘. 그럼 행운을 빌께.” 


“그래, 전화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너도 모든 일이 다 잘되길 바랄게.”


그녀는 몹시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사실 그녀는 내가 그 법과대학원에 가게 된 배경과, 내가 얼마나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몇 안 되는 법과대학원 클래스메이트들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녀를 비롯, 내 스터디 그룹 멤버들, 클래스메이트들, 교수님들, 그리고 그 법과대학원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그들 모두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고, 또 그리워졌다. 


그래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잠시나마 나를 분노케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분노는 이내,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이 분노였는지, 아니면 내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었는지, 아니면 절망감이었는지,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정쩡한 상태로 바뀌었다. 


'대체 무엇일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그래서 나는 내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내가 수많은 날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만든 판례 요약서들과, 법과대학원 1학년 교과과정을 위해 각 과목별로 구매했던 출판사 발행 과목 요약서들이 내 눈에 맨 먼저 들어왔고, 바로 그 옆에는 통학기차안에서 수시로 꺼내보았던 플래시카드 뭉치들이 고무밴드에 묶음 모양을 한 채로, 수북하게 한 더미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모든 것들을 넣어서 내가 매일같이 등에 메고 다니던 빈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내가 언제 다시 쓰게 될지 모르는 여분의 왕복 기차표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내 눈에 익은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모두 포기해야 할 절망 덩어리로 내게 다가왔다. 


'이제는 정말… 내게서 저 모든 것들을 떠나 보내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한동안 그 모든 것들을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위로 지난 1년 동안 내가 거의 매일같이 새우다시피 했던 수많은 밤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내가 무수히 꿈꿔왔던 명품 브랜드 정장을 입고, 유명한 의뢰인을 대동해서 법원에 출두하는 변호사가 된다는 이미지 등의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신기루처럼 아주 잠시 동안 내 눈앞에서 어른거리다가, 이내 방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럼 지난 1년간 내가 스터디 그룹과 보낸 시간들, 판례집을 읽기 위해 지새운 수 많은 밤들, 통학기차 내에서 들여다보던 플래시카드들…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 모든 순간들이 꿈속에서의 한 장면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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