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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다니엘 Sep 17. 2022

리스타트 51 - (35)

통학열차


어둠 속에 머무른다는 것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인지 내가 있던 방이 너무 어두워진 관계로,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를 켰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내 방 책꽂이 밑에 놓여있던 수많은 CD들을 보았고, 그중에서 사라사테의 <Zigeunerweisen>이 들어있는 CD를 골라서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곡의 느낌이 그날따라 내게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진 터라 이내 중지하고, 이번에는 비탈리의 <Chaconne in G Minor>가 들어있는 CD를 틀었는데, 그 곡 역시 내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한 없이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인데, <치고이너바이젠>에 <샤콘느 G단조>까지… 난 왜 이런 곡들을 선택한 걸까?'


그래서 나는 그 곡도 듣다가 중지하고, 마지막으로 바비 맥패런의 <Don’t Worry Be Happy>라는 노래가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는데, 그 곡 역시 그때의 내 감정들을 치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그 곡마저도 끄고 내 침대 위에 그냥 앉아 있었다. 


내 책상 위에 홀로 놓여있던 스탠드의 불빛은 내 방 저편에 놓여 있던 법과대학원과 관련된 그 모든 것들을 어두운 그림자 속에 묻어놓고 있었고, 나는 그때, 그것들이 그 어둠 속에 영원히 머물며, 다시는 내 눈에 띄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 자신 또한 그 법과대학원과 관련된 모든 물건들과 함께 그 어둠 속에 계속 머무르게 하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그 물건들은, 그 당시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절친 중의 절친이었고, 유일한 내 꿈이었고, 내가 그 당시 삶을 살아내며,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아 준 희망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스탠드의 불빛 저편에 놓여 있던 그 물건들은 내가 언제 그 물건들을 다시 찾게 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물건들도 나와 같은 감흥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저 물건들에게 해 줄 말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동안, 나는 내가 조금 전에 이미 꺼 버린 <Zigeunerweisen>과 <Chaconne in G Minor>의 선율들이 내 머릿속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을 다시 한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선율들은 이윽고, 내가 한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내 방 저편의 물건들을 감싸며 어둠 속으로 조용히 흩어져갔다.


'언젠가 때가 되면 저 물건들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야,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 일이 없는 게 맞는 걸까? 그런 걸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나는 그 당시 내가 경험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혼돈의 시간… 그 자체였다. 나는 아마도 그때 내가 경험했던 일들 모두가, 내 인생에서 내가 처음으로 경험했던 완벽한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절망과 혼돈으로 가득 차 있는 나만의 바다에서 그 후로도 며칠 동안 한 없이 허우적거렸다.   


'그럼 지금부터 뭘 해야 하지?'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뭔가 다시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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