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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훈 Oct 22. 2022

호주에서 면접을 수십 번도 더 봤다.

한국처럼 공장에서 불량품 걸러내듯 사람을 걸러내는 비인간 대우는 없었다.

블렌디드 러닝은 주 2, 3일만 나갔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구직 중이었다. 졸업 비자를 받은 이후로 나는 특히 풀타임 취직을 간절했다.

그러나 면접이 잡힌 곳은 또 다른 파트타임이었다. 내 포트폴리오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는 매니저는 나와 만나 잠깐 얘기를 하며 면접은 그저 내가 멀쩡한 사람인지만 확인하는 자리라고 했다. 오는 월요일에 출근하기로 결정이 됐다.

매니저 알리시아는 화통한 큰누나 같은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금발에 약간의 영국 억양을 썼는데 아버지가 영국 사람이라고 했다. 인코프 Incorp라는 이름의 이 회사를 면접 전부터 조사도 해보고 알리시아로부터 설명도 들었지만 뭘 하는 곳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몇 가지 키워드, ‘컨설팅'과 ‘토털 설루션'이란 말만 반복됐다. 요즘 회사들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죄다 컨설팅과 토털 설루션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랬다. 인코프는 다른 회사들에게 사무실을 찾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럼 중개사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인테리어도 해줬다. 그럼 인테리어 회사다. 뿐만 아니라 기업문화도 관리해준다고 했다. 이쯤에서 난해해지기 시작했다. 기업문화 관리란 게 뭔지 통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직원들을 앉혀놓고 ‘서로를 존중해하세요', ‘시간 약속을 잘 지키세요' 하며 교육이라도 시킨다는 말인가?


내가 파트타이머로 취직한 인코프 Incorp도 코워킹 사무실을 썼다.

수십 개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또 면접을 보면서 니는 구인공고의 고질적인 문제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도무지 터놓고 알려 주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창한 말은 많이 늘어놓는다. 플랫폼을 제공한다느니, 비즈니스와 고객을 연결해 준다느니, 콘텐츠를 큐레이트 한다느니,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다느니 (니즈 어쩌고 하지 않는 회사가 없을 정도다) 하는 표현을 수도 없이 보았다. 직무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였다. ‘Ideation’, ‘Briefing’, ‘Produce creative content’ 따위의 말들을 열거하지만 그래서 뭘 시킨단 것인지 끝까지 헷갈리게 했다. 사무실에 앉아 ‘Ideation, ideation’ 거리고 있진 않을 터였다. 면접을 하는 자리에서 질문을 해봐도 뭉수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더 캐물었다간 공격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이해력이 떨어지고 또 회사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았단 인상을 주기 때문에 몰라도 아는 척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기업들이 정확히 소통을 하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었다. 첫째, 단순하고 정확한 언어를 쓰면 이미지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란한 단어들을 갖다 붙인다. 마치 아마추어 현대미술 전시회를 가는 것과 같다. 어떤 그림을 그려놓고 ‘이것은 뭘 그린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이것은 생명력의 흔적과 에센스를 탐구하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모순될 수밖에 없는 판타지적 요소를 제거하려는 시도다' 따위의 괴설만 보였다. 꽃이 예뻐서 그렸다는 말은 유치하게 들리기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지나치게 포장하는 데 집착했다. 구직자들에겐 불공평한 일이다. 우리는 고용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업적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배운다. 통계와 숫자를 써서 실제로 뭘 이루었는지 쉽게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자들은 그 반대로 군다. 이는 구직자를 '일이 필요한 사람', 고용자는 '일을 베푸는 사람'으로 보는 고질적인 위계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노동자들에겐 지원서와 이력서 잘 쓰는 법, 면접 잘하는 법, 나를 돋보이게 하는 법, 면접 복장 갖추는 법 등 온갖 잡기를 요구하는 동안 고용자들은 애매한 언어들을 막 써대고 다른 공고문을 적당히 베끼는 게으름을 피웠다. 그리고 면접장에 들어가면 어떠한가. 거만하기 짝이 없는 면접관들이 ‘내가 너한테 왜 관심을 줘야 하냐'는 자세로 질문을 툭툭 던지고 말을 자르는 무례가 당연하다. (이는 한국에서만 해당되는 일이다. 나는 호주에서 수십 번 면접을 보면서 한국처럼 공장에서 불량품 걸러내듯 사람을 걸러내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둘째는 고용자들도 정확히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똑바로 말을 못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일을 했던 곳은 대부분 영상 전문업체가 아닌 곳이었다. 대학 직원, 컨설팅 회사 매니저와 같은 사람들은 영상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꼬집어 주질 못했다. 추상적이고 희미한 말을 쓰는 쪽이 안전했다. 그래야 무슨 일을 시켜도 되기 때문이었다. 채용이 되고 사무실에 나가면 그제야 내가 할 일이 가닥이 잡히는 게 예사였다.

인코프에 들어가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무얼 하는 회사냐 물으면 나는 ‘컨설팅 펌’이라고만 답했다. 그럼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지만 서로 알아듣는 척 넘어가야 무식한 티가 안 났다.

회사를 잘 이해 못 하니 무슨 영상을 만드는지도 몰랐다. 알리시아는 자기에게 모든 아이디어가 있다고 했다. 내가 실현시켜 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알리시아는 코워킹 문화에 대한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위워크 WeWork 같은 회사를 비롯한 코워킹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던 때였다. 그게 우리 회사와 무슨 관련인진 알 수 없었다. 대충의 의도만 짐작했다. 인코프는 사무실 컨설팅 펌이니 변화하는 직장의 모습이 궁금할 것도 같았다. 알리시아는 특히 밀레니얼의 직장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노동시장의 중심 인력이 되기 시작한 이 세대들의 일하는 모습을 조사하려는 것 같았다. 알리시아는 코워킹 사무실들에 이메일을 돌리기 시작하며 그들의 공간을 찍고 입주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런데 왜 하는지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알리시아는 파워포인트까지 만들어 가며 설명을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비슷했다. 자료는 잘 봤는데 여전히 이해는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촬영에 동의를 했다. 모르긴 몰라도 컨설팅 펌이라는 말에는 힘이 있었다. 이름은 낯설어도 인코프는 이 바닥에선 꽤 존재감이 있는 회사인 모양이었다. 인코프가 관리한 기업들을 보면 거창한 브랜드들도 많았다. 그리고 완성된 영상은 그들도 쓸 수 있는 공짜 홍보물이 된다는 말로 더 설득할 수 있었다.


촬영을 하며 멜버른 곳곳의 코워킹 사무실을 취재했다.

촬영에 응하는 이메일들이 속속 들어왔다. 그때부터 나는 현장에 나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촬영은 언제나 떨리는 작업이었다. 누구를 만날지, 장소는 어떨지, 무슨 일이 생길지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기 때문이었다. 빅토리아 대가 일하기 편했던 것은 하는 일과 장소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프리랜스 일이나 코워킹 촬영은 완전히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이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사전에 준비도 많이 했지만 현장에서 무엇을 맞닥뜨려도 헤쳐나갈 수 있는 임기응변도 필요했다. 그래서 창작활동이란 곧 문제 해결 활동이라고도 했다. 창작이란 그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과정이란 말이었다.

그래서 정신의 피로가 컸다. 남 일하는 곳에 가서 나는 누구라 소개를 하고 사무실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며 영상을 찍노라면 신경이 곤두서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인터뷰도 해야 했다. 사무실 매니저나 입주자들, 어쩔 땐 CEO까지 섭외해서 인터뷰를 찍었다. 이것도 만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촬영과 인터뷰는 철저히 다른 영역의 일이지만 나는 항상 혼자 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둘을 같이 해야 했다. 인터뷰와 촬영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고강도의 정신노동이었다.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영상이란 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신경 써야 할 게 아주 많아 조금만 소홀하면 못난 영상이 나오기 쉽다. 카메라만 해도 맞춰야 할 설정이 수십 개고 화면의 구도를 잡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걸 하나라도 놓치면 편집에서 몇 배의 고생을 하며 후회한다. 다 찍어놓고 보니 초점이 맞지 않았다거나 배경에 이상한 로고가 있어서 아예 쓰지 못하게 되는 최악의 가능성도 있었다. 음향을 꼼꼼히 들어 보지 않아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들어가거나 아예 녹음이 되지 않는 등 문제의 여지가 있는 요소들은 쉽게 문제가 되는 것이 촬영이었다.

인터뷰를 처음 했을 땐 질문지를 미리 만들어 갔다. 보고 읽을 무언가가 있다는 게 큰 안심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마저 긴장이 돼서 상대방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음 질문 확인하기에 급급했다. 문제는 대화가 깊게 진행되지 않아 피상적인 내용만 담는다는 것이었다. 양방의 소통을 통해 유기적이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좋은 내용이 나오는데 나는 내 할 말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란 ‘질문 1번, 질문 2번'의 체크리스트가 아니었다. 또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초보 땐 상대방의 말이 끝나면 그 잠깐의 정적을 참을 수가 없어서 ‘Okay, good, great, amazing'과 같은 추임새를 넣어댔다. 이는 곧 초조함을 드러내는 일이었고 상대방을 불안하게 했다. 상대방이 불안해하고 긴장을 하면 인터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평소엔 말발도 세고 대중연설도 척척 해내는 사람도 카메라만 켜지면 굳어버리는 일을 무던히도 보았다. 일상에서의 카리스마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완전히 다른 종목이었다. 알리시아와도 그랬다. 거침없이 말 잘하는 이 매니저도 카메라가 돌아가자마자 처음의 호기는 오간 데가 없었고 말더듬기와 실수의 악순환에 빠져 촬영을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빅토리아 대가 모든 강사들에게 인트로 영상을 만들라는 것은 카메라 화법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의외로 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니티가 그랬다. 남편이 촬영을 해서 더 편했는지도 모르지만 수니티는 평소의 차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녹화를 해냈다. 반면에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무너지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직원인 타냐와 촬영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 자꾸 말을 더듬는 바람에 몇 번의 테이크를 반복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평정을 잃는 타냐의 모습이 역력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I don’t understand why I have to do this. There’s a reason we pay other people for this."

나와 스튜는 뭐라고 대충 격려를 했지만 나는 솔직히 빨리 하고 끝내버리자는 마음만 가득했다. 텔레프롬프터에 보이는 대로 읽는 게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일지 모르겠단 입장이었다.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대사를 읽던 타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나와 스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멀뚱멀뚱 보기만 했다. 그 정도로 힘들어하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상부에서 내려지는 지시라 많은 직원들이 카메라 앞에 서야 했지만 이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시대에 발맞춰 우리도 영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결정하는 고위간부들과 카메라 뒤에만 서는 우리 같은 프로듀서들은 타냐 같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헤아릴 줄 모르는 법이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정말 어떤 기분인지 서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코워킹 사무실은 한 번 촬영할 때마다 두세 시간이 걸렸다. 그리 길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촬영이 끝나면 나는 언제나 진이 빠졌다. 바로 사무실에 돌아가는 대신 나는 어딘가에 들어가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을 먹으며 늑장을 부렸다. 정직한 노동을 마치고 즐기는 휴식은 비길 데 없는 행복이었다. 바짝 들었던 긴장을 풀고 햇볕을 받으며 쉬고 있으면 나는 썩 재밌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전엔 언제나 걱정부터 되지만 일은 늘 생각보다 잘 풀렸다. 이런 내가 부쩍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지망생'이었던 내가 이제는 탄탄한 경력과 포트폴리오를 갖춘 전문가가 된 것이다.

대여섯 군데의 코워킹 사무실 취재를 마쳤다. 수백 명이 일하는 코워킹도 있는가 하면 개인이 운영하는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코워킹도 있었다. 심지어는 커피 로스팅 코워킹까지 있었다. 자기 커피를 볶을 수 있는 공유 시설을 만들자는 멜버른 다운 발상이었다. 그 유명한 위워크와도 연락이 닿은 일이 있었다. 촬영을 요청하는 이메일에 홍보 담당 직원이 답장을 보냈는데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대충 ‘위워크는 코워킹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지향한다'와 같은 내용이었는데 요점이 뭔가 싶은 아리송한 답신이었다. (몇 년 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위워크는 신흥종교와 기업문화로 악명을 얻기 시작했고 CEO의 괴짜 같은 운영에 파산을 맞게 됐다.)

코워킹은 단순히 말하면 그저 여러 회사들이 입주해서 공유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교류가 생겼다. 사무실 운영진은 아침 요가라든지 금요일 저녁 와인 모임이라든지 하는 활동들을 주최했다. 이런 과외 활동에 트렌디한 인테리어까지 더해져 아주 근사한 기분이 들게 해주는 게 코워킹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일터는 일터였다. 코워킹은 좀 더 그럴듯한 환상을 만들어 줬다. 위워크는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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