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보다 나를 먼저 걱정해 주는 마음
약국을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있습니다.
저를 잡아먹을듯한 표정과
가시 돋친 날 선 말투를 장착하고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마치 폭풍우를 정면으로 맞은 후 남겨진 사람처럼
영혼마저 다 털려버린 듯한 기분이 듭니다.
며칠 전 일반의약품을 사러 온 손님이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맞서서 싸울 수가 없으니
인간으로서 느끼게 되는 모욕감과 불쾌함을 애써 모른 척할 수밖에요.
그리고 아주 큰 힘을 들여서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손님이 나갈 때도 건강히 잘 가시라는 덕담까지 했습니다.
서비스업의 애환이라면 애환이겠지요.
그 손님이 지나간 후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단골손님이 처방전을 들고 오셨습니다.
드링크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던 터라
빨리 박스를 정리하고 처방전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너무 기력이 다 빠져서였을까
드링크 박스가 땅이 떨어졌습니다.
황급히 병이 깨지지 않았는지 확인했고
다행히 깨진 건 없었습니다.
물건이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단골손님께서 걱정을 담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약사님, 아까 드링크 떨어지는 소리 들었는데,
약사님 안 다치셨어요? 괜찮아요?"
저를 가장 소중히 대해야 할 제가
저보다 물건의 안위를 더 걱정하고 있었는데,
저의 안전을 신경 써주시는 따뜻한 말씀을 듣고
애써 억눌렀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사람으로 받는 상처는 결국
사람의 말로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스쳐 지나가는 별 볼일 없는 말일지라도
지친 하루엔 그것 하나로도 살아낼 힘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폭풍우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 폭풍우 속에서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햇살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요.
그리고 그 따뜻한 한 마디가,
지친 하루의 끝에서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요.
아무도 몰라주는 이 자리에서
그 말 한마디를 기억하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를 이어갑니다.
오늘도, 그렇게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