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포형제맘 Sep 26. 2024

안와골절의 아픈 추억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기간

 아기를 키우면서 최대의 사건이었던 안와골절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다.

첫째가 돌 전에 몇 개월동안 주기적으로 허리가 심하게 아팠다. 아기띠를 주로 앞으로 매다가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아기띠로 아기를 뒤로 업고 다녔었다. 엄마와 백화점을 갔다가 아기를 카시트에 태울 때였다. 늘 아기띠로 업었던 아기를 돌려서 카시트에 태우곤 했는데 그날은 아기를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기가 주차장 바닥에 얼굴을 부딪히며 막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기의 눈이 부풀어올라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얼른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기다리며 아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큰일이 일어나니 내가 미안한 마음보다는 옆에서 아이를 챙겨주지 않고 혼자 타버리신 엄마가 원망스럽고 엄마에게 짜증을 엄청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만 해도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부터 일주일 동안 입원을 했다. 병원 진료 후 남편은 학대의심 전화까지 받았다고 한다. 부었던 눈은 시퍼렇게 멍들어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데리고 다니면 다들 왜 그렇게 물어보는지 며칠이 지나니 다른 사람에게 관심 좀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에너지가 많은 아기였어서 정말 입원이 쉽지 않았다. 다인실이기에 아기가 너무 소란을 피우면 주변에 피해가 갈까 봐 유모차에 태워 거의 하루종일 병원 안과 밖을 돌아다녔다. 밤에도 잠을 안 자고 칭얼대는 아기 때문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었다. 오죽하면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남편 오니 아기엄마 정말 힘들었다고 말해주고는 했다. 아기 눈의 붓기는 처음에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있다가 점점 가라앉았고 멍도 거의 까만색이었다가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갔다. 


 가장 걱정되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아이가 바닥에 부딪히며 뼈가 으스러졌는데 아기들의 뼈는 계란껍데기처럼 얇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부서진 뼈 조각들이 눈동자에 박힐 수 있다고 하시며 일주일 후에 다시 엑스레이를 찍어서 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 부분이 얼마나 걱정되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마지막 진료에서 눈에 박힌 뼛조각들이 없어서 정말 천국을 다녀왔다. 


 첫째가 9세인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때가 처음으로 입원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큰 병으로 입원한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나로 인해 아기가 다치고 힘들었던 것이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다. 그때 허리가 아파서 다시 그 상황이었어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지라도.... 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내가 조심했어야지 생각보다 옆에서 엄마가 잘 안 챙겨줘서 속으로 엄마를 원망했던 못난 내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엄마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한없이 사랑을 주고도 자식한테는 책임전가를 쉽게 받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무슨 일이 생기면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할 때 반성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너도 똑같이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라는 생각이 드니까..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아이도 나도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로 인해 지금 흔적이 남지 않은 것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늘 아이와 있을 때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니까..



이전 04화 처음 들어본 "사경"이란 단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