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은 편안함에 이르기 위해서.
아늑한 내 공간, 뽀근(뽀송+포근)한 침대에 누워 있으면 편안하다. 몸이. 몸이 편한데도 한없이 뒤척이게 되는 이유는 마음도 편안치는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연예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자려고 누웠는데 고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록 그게 그 하루뿐이거나 찰나더라도 그거야말로 '행복'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맞다. 온몸의 힘을 빼고 편한 상태를 만들어도 마음이 불편하면 결코 행복에도 평안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편안함은 어떻게 얻을 수 있나. 나의 상황에 비추어보자면, 마음의 편안함은 자기 확신에서 온다. 지금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게 지나간 과거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든 매 순간 나에게 확신이 있다면 번민하지 않게 된다. 그 사람이(or 내가) 왜 그랬을까? 이게 최선일까(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도 자기 확신이 있는 경우 당시 내가 한 결정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번민은 생기려다 사라진다. '매 순간 모든 것을 결정해 내는 나'는 후에 '그 순간을 떠올려보는 나'와 확신을 공유한다.
시험장을 단 한 번의 퍼포먼스만 가능한 무대 공연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연에 올라가는 배우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연습을 한다. 무대 위에서 최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최선의 연습량은 측정도 측량도 불가능하다. 최선을 다 한 사람이 '이게 최선이다'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 연습은 종료된다. 공연의 반응이 어떻든 자기 확신을 가졌던 무대의 주인공은 마음이 편안하다. 그 순간으로 수없이 되돌아가도 그보다 나은 것을 할 수는 없다는 확신을, 최선을 다 한 본인은 알고 있다. 그게 최선입니까?라는 질문은 그렇기에 타인이 할 수 없다. 내가 나에게만 할 수 있고, 답도 나만이 할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 발표 전 날 떨리고 불안해 잠을 못 잔다는 분이 방송 전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물어온 적이 있다. 솔직히 저도 어떤 방송 전 날에는, 특히 시험 전 날에는 잠을 못 자요. 왜 그럴까? 스스로 나름의 답을 찾았는데도. 확신을 가지고 방송하면 과정과 결과에 후회가 없었고 마음이 편안했다. 그런데 불안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도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탈탈 털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남아있을 때나, 내 최선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 '로또 같은 대박'이 나오기를 바랄 때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것 같다. 적당히만 했을 때, 요행을 바랄 때. '최선을 다 한 나'를 준비하는 것도, 그런 내가 행한 과정과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시험 전 날에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누리기 더 어렵다. 최선을 다했건 어쨌건 내가 바라는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까. 일종의 답정너랄까. 과도한 기대가 마음을 평안치 못하게 한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언제나 내가 이르고 싶은 최적의 상태다.
내일은 되겠지 오늘은, 일단 네. 이게 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