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 씨앗

3장 여섯. '마음'은 언제 생길까.

by 스쿠피

‘마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생기는 걸까’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떠올리지도 않았을 질문이다. 아이의 행동과 말투 하나까지 신경 쓰며 정서 지능이니 사회적 지능이니 하는 이론들을 되짚어 보게 될 줄이야. 내 자란 환경과 부모와의 관계를 이리도 줄기차게 되새김질하게 될 줄이야.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내가 아이를 공부하는 만큼 내 자아 인식력도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을.


허우적대던 과거조차 지금은 귀하다. 내 마음만 살피며 살아오다 당최 이해 가지 않는 아이 마음까지 헤아려야 했던 당황스러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쏟아낸 분노의 날들. 육아의 최종 목표는 아이 독립이라지만, 어디 독립만 하면 다인가. 아이 마음 헤아리는 것이 사람 인생 하나 헤아리는 것이나 매한가지인데. 평생 배울 지혜를 맞춤형 풀 패키지로 껴안고 사는 느낌이다. 내 문제가 곧 ‘사람’ 문제였고, 사람 문제가 곧 ‘마음’ 문제였다. 싫든 좋든, 공부할 준비는 다 된 셈이다.


『영혼이 단단한 아이의 비밀 정서 지능』(레이첼 카츠, 헬렌 슈웨 하다니 저)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여타의 육아서와 다르게 사람 마음 상태가 싹트는 과정을 실전 육아와 접목하면서도 부모의 마음 챙김까지 신경 쓰고 있다. 특히, 중후반부에는 아이와 함께 ‘내면의 목소리’에 대해 성찰하는 대화까지 있어서 놀라웠다. 주로 영아기부터 유아기, 학령기까지 마음 상태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기간으로 설정하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시기를 훌쩍 넘긴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자식들과 ‘내면의 목소리’를 소재로 자아 연민의 중요성에 대해 교감한 적이 있는가.


갓 유치원을 졸업한 나이가 되면, 아이는 언어 발달, 신체 발달과 함께 마음까지 훌쩍 발달하게 된다. 동시다발적으로 맞물리는 언어와 경험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 수도 있다는 ‘의식의 흐름’을 알아채는 시기인 것이다. 그랬던가. 몰랐던 사실이다. 그렇게 빨리 내면의 목소리를 알아채고, 그것이 내 자아를 기분 나쁘게 할 때면 오히려 말수가 적어지고 의기소침할 수 있다고? 섬광처럼 스치듯 묵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릴 적, 엄마나 아빠가 내면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진실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고, 그걸 믿을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도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며, 자신 역시 똑같은 경험을 했었다고 말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책 속 헨리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엄마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결론 내렸다. ‘자신에게 못되게 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어두운 내면의 목소리에 매몰되지 않는 귀한 방법을 미취학 아동이 스스로 깨친 것이다.


둘째의 고정 멘트가 있다.


“왜 나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해? 엄마가 아무리 상냥하게 말해도 하기 싫을 때가 있어. 나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돼? 엄마가 다 결정하지 마. 듣기 싫어!”


도대체 왜 저러나. 웬 투정이 시도 때도 없이 자잘하게 나를 찔러대나. 저래 놓고 나가면 제일 많이 신나 할 주인공 아닌가. 꼭 한바탕 불쾌한 의식을 치르고서야 나서는 패턴이 지긋지긋했다. 미운 4살이니, 초등 사춘기니, 질풍노도의 시기니 생각할 틈, 내 마음 챙김은 순식간에 비눗방울처럼 사라져 버리곤 했다.


마음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 영아기 때부터 노출된 언어와 경험이(좋은 어휘를 많이 들려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침묵할 시간과의 배분이었다!) 유아기에 타인의 감정을 읽게 되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거짓말의 끝판왕 시기이며, 부모가 제대로 아이의 '거짓말'을 명시해주지 않으면 상당히 괴로운 수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학령기의 마음 상태에 도달한다. 이 시기에는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 사회성, 정서 지능까지 총체적으로 맞물려 발달하기 때문에 부모가 이 마음 발달 상태를 파악하고 있으면 양질의 육아가 가능하다고 한다.


둘째는 주의 집중력이 높고, 승부욕도 강하다. 눈치도 빨라서 내가 하는 상냥한 말에도 가시가 박혀 있음을, 다시 말해, 내 어조와 몸짓 언어가 미묘하게 뒤틀려 있다는 것까지 파악할 정도로 영리하다. 이제 보니, 스스로 내면 언어를 듣고 생각하는 경지를 넘나들고 있었구나. 한참 인형 만들기에 몰입하는 와중에 계획한 일정을 들이대는 엄마였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정색하고 언성이 높아지겠지. 내 상황을 관찰하고 조심스레 배려하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는 거지. 항상 이런 식이었어. 왜 항상 엄마 말만 듣고 살아야 해? 나도 엄마한테 내 마음을 드러낼 거야.


“이 세상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만들던 인형은 내동댕이쳐졌다. 아이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행동을 조절해야 하는데 감정이 함께 폭발해 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 없을 테니까. 사실, 언어는 마음 이론과 맞물려 발달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내뱉은 표현치고는 얼마나 쏜살같은 의미 확장인가.


그때부터였다. ‘언제까지 기다려 주면,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겠니. 가족들 입장도 있으니, 네가 출발 시간을 고려해서 말해 주렴. 그때까지 우리는 각자 편한 시간을 가지도록 할게. 엄마도 생각해 보니, 서두를 일은 아니네.’ 말하고 나니, 진땀이 배어나왔다. 내게도 실행 능력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조금씩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을 나대로 길러내야만 했다. 내가 먼저 보여주면, 나도 아이도 최소한 한 가지 방법의 형태를 경험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길, 이런 돌발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멈추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에게 ‘네가 지닌 실행 기능, 의사소통 능력, 마음 이론 발달을 동시에 연결해 보여 줘’라는 복잡한 요구라고 한다. 아울러, 총체적 아웃풋에 해당하는 실행 능력은 성인에게도 평생 숙원이라 할 만큼 단단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어서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수만 번 새겨두자. 인간의 본성은 본디 게으르고, 이기적이며, 어리석다는 경험은 벌써 수만 번을 웃돌고도 남는다.


사람 마음에 대한 호기심이 내 양육 스타일을 들여다보게 했다. 나도 그 나이대에 했던 행동을 떠올리며 당시 부모님 입장을 헤아려 본다. 힘드셨으리라. 그럼에도 자식 일이라면 덮어놓고 애쓴 부모님 덕분에, 각자 기질 다른 형제자매 덕분에, 숱한 결핍과 상처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나를 끝까지 해코지하는 사람도 만난 적 없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스치듯 귀한 멘토의 한마디가 있었다. 내 마음과 의식은 종종 흐트러진 일상에 신음하면서도 자생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흔들리는 불안과 두려움은 뿌리 깊을지언정, 그 깊이의 끝을 알기에 숨기지는 않는다.


아이 마음이 자리 잡는 과정이 사람 마음이 생기는 과정이었다. 아이가 감정을 잘 조절하고 행동을 적절히 통제하며 동정심을 가진다는 건 잘 자랐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아직 덜 자란 부모로서, 미숙하지만 자녀들을 가꾸고 다듬으며 함께 나아지고자 한다. 어느덧 문제를 만들어낸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두어야 할 입지에 섰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세상 모든 자녀는 각기 다른 기질과 성향을 타고났다. 당신의 양육 방식과 태도 역시 유일무이하다는 뜻이다. 육아를 무턱대고 열심히 해왔다면 그 방향을 점검하자. 방법이 보일 것이다. 가장 당신다운 육아란, 아이의 마음 씨앗을 이루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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