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필실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어느 여름 밤 당신이 연필을 움직이면 고요한 눈이 내렸다는 그 곳을요. 창밖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모두가 잠든 밤, 끝없이 쓰고 성찰하고 또 쓰던 당신의 표정을 상상합니다. 당신의 주름을 떠올려요. 종이 위로 사각사각 눈처럼 내려 앉았을 당신의 행복과 고통을 생각합니다. 고백하자면 사실 당신의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요. 늘 궁금했지만 선뜻 집어들고 읽지 못했지요. 어릴 땐 당신과 함께 침체할 용기가 없었고, 커서는 당신과 함께 침체할 여유가 없었달까요? 그리하여 이제야 당신의 글을 제대로 읽어볼까 합니다. 지금쯤 풀벌레 소리만 남은 당신의 집필실에는 닳고 닳은 연필들이 어둠 속에 숨 죽이고 있겠지요? 손때 묻은 책장에는 먼지가 눈처럼 내려 앉았겠지요? 한때 아니 꽤 오랜 세월 그 곳에서 세상으로 쏟아졌던 당신의 글들을, 늦었지만 감히 읽어볼게요. 당신의 집필실이 지금 침묵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언제든 서점에 가면 당신의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어느 여름 밤 당신이 연필을 움직이면 고요한 눈이 내렸다는 말을 나는 이제 믿습니다. 때로 흔들리고 때로 기쁘고 때로 힘들고 때로 버텼던 당신의 순간들을 끝없이 쓰고 성찰하고 또 써주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