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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석도 습관입니다

독한 아빠, 닮아가는 엄마

by Applepie

"아빠, 너무 가려워요."

7시가 채 되지 않은 아침, 아이가 우리 침대로 파고들었다. 원래는 늘 부모가 깨우러 가야 일어나는 아이인데 먼저 오다니,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이가 바삐 손을 대는 목 주변이 빨간 두드러기로 덮여 있었다. 어제도 가렵다고 해서 약을 먹이고 잤는데 약효가 하룻밤을 채 가지 못한 듯싶었다. 원래는 하루 한 번씩만 먹는 약을 밤이 지나간 새에 한번 더 먹였다. 이거 왜 이러는 건가, 학교는 보내도 되나, 허둥지둥하는 나와 달리 소아과 의사인 남편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전염되는거 아니야. 약기운 돌면 괜찮아져. 근데 지금 약은 너무 많이 먹였으니 또 이러면 병원으로 데려와. 약을 바꾸거나 주사를 맞히게."

남들은 남편이 소아과 의사라 좋겠다고 한다. 실제로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지금까지 운 좋게도 번호표니 입원이니 하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아이의 크고 작은 감기는 남편의 지휘 아래 대부분 콜*원이나 챔*선에서 해결 가능했고 독감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에 미리 백신을 맞혔더니 아직까지는 무사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의 병에 마음껏 호들갑을 떨 자유를 박탈당한 느낌도 들었다. 열이 나는 아이를 보며 호들갑을 떨고 불안할 준비를 할라치면 매우 하찮은 것을 보는 듯한 남편의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괜찮아져. 응급실 안 가도 돼." 그래, 너 태연해서 좋겠다. 관식이처럼 공감능력이 뛰어난 남편은 다음 생에나 기대해봐야지 하며 나는 머쓱하게 호들갑을 거두곤 했다.


아이가 두드러기가 난 오늘도 남편의 태도는 같았다. 얘가 1교시는 할 수 있을까? 지각해야하나? 병지각 서류가 어떻게 되더라, 선생님께 하이톡을 드려야 하나 허둥지둥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아이의 두드러기가 본인 아침의 루틴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듯 커피를 내리고 신문을 펼쳤다. 그런데 웬걸, 남편 말대로 아이의 두드러기는 약을 먹은지 오래지 않아 조금씩 내려가고 있는 듯했다. 소파에만 누워 있던 아이가 식탁으로 와 준비해 준 아침식사와 과일까지 다 먹는 걸 보면 컨디션이 괜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과 말은 달랐다. 제 아빠가 씻으러 간 사이, 내게 나지막히 말한다.

"엄마, 너무 졸려요. 학교 안 가면 안돼요?"

알러지 약을 먹였으니 졸릴 수 있다. 그리고 가려움은 가라앉았다지만 아직도 울긋불긋한 아이의 목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평소라면 등교를 준비할 시간이 되었지만 아이에게 일단 누워서 쉬라고 했다.


다 씻고 나온 남편은 여전히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며 정색했다.

"준비해야지 왜 아직도 누워있어? 이제 안 가렵잖아."

-"졸리다잖아. 알러지 약이 그렇잖아."

"약 먹으면 당연히 졸릴 수 있지. 근데 너, 작년에 만약에 학생이 졸리다고 학교 안 오면 뭐라고 했을 것 같아?"

-"뭐, 좋은 소리 안 나왔겠지."

그건 그랬다. 그 동안 학생들의 출석에 대해서 내가 몇 번이나 남편에게 역설한 적이 있었다. 결석도, 지각도, 조퇴도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을 아주 많이 봐왔으니.


학교에서 출석은 의외로 개인차가 큰 영역이다. 앓고 있는 병이 있어서 자주 결석하는 친구도 있고 몸이 약해서 철마다 유행하는 전염병에 잘 걸리는 친구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건강 상태보다 출석에 더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은 '아이와 부모의 습관'이다. 저학년 때는 부모의 습관이 더 우세하지만 학년이 올라갈 수록 그것은 아이의 습관으로 전이된다. 종국에는 아이를 부모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선생님, 오늘 아이가 아파서요 쉬게 할게요.'

이런 문자를 자주 보내시는 학부모님의 아이는 당연히 결석에 별 부담이 없고 학교 적응에 시간이 더 걸린다.

'선생님, 아이가 아파서 학교를 갔는데 너무 마음이 쓰이네요. 안 좋으면 제게 연락주세요.'

내게 예의도 차렸고 미리 알리시는 등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런 문자도 있다. 문제는 아이가 불안해 하는 엄마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 채, 2교시가 끝난 후에 틀림없이 내게 나온다는 것이다. 너무 아프다며, 엄마한테 전화해 달라고. 물론 정말 아프면 당연히 집에 가야하겠지만 이 아이는 1,2교시 동안에는 아주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다가 2교시만 끝나면 어김없이 내게 나왔다. 10분 전과 딴판인 얼굴을 하고. 조퇴가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1년에 병결이나 조퇴가 두 자릿수를 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보았다. 이런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나 내 앞에서 자유자재로 눈물도 잘 흘린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전처럼 6년 개근상도 수여하지 않고 수여하더라도 가치를 많이 잃은 지금에도 출석에 큰 무게를 두는 학부모님들이다. 아프더라도 아이에게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리고 오라는 학부모님(괜찮다, 아프면 쉬게 하시라고 해도 한사코 아이를 보내시던), 머리가 아프다는 중~고학년 아들(머리가 아픈 것은 확인이 어렵다)의 부탁으로 조퇴를 해주십사 전화를 드렸는데 '그냥 일과 끝내고 오라고 하세요 선생님. 이거 들어주면 습관될 것 같아요.'라고 하셨던 학부모님 등 나조차 무뎌지던 출석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신 분들도 계시다. 이런 학부모님들의 아이들은 출석을 넘어 성실의 가치를 부모로부터 배우게 되리라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결국 나도 아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평소보단 늦었지만 1교시에 늦지는 않을 만한 시각에.

"엄마가 약 기운 돌때까지만 기다려 준거야. 혹시 학교에서 가려워서 힘들면 선생님께 말씀드려. 엄마가 선생님께 따로 연락 드리진 않을거야. 대신 선생님께 연락 오면 데리러 갈게. 그땐 병원 가보자."

4교시를 하고 있을 시간인데 아직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이가 5교시를 마치고 방과후까지 다 하고 오든, 다 마치지 못하고 오든 오늘은 아이를 많이 칭찬해 주고 싶다. 아빠가 없는 기회에 엄마에게만 학교 가기 싫다는 꼼수를 부릴 만큼 커버린 아이가 결국엔 어제와 다름없이 등교하고 수업에 참여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웬만하면 학교는 가는 것이라는 것을, 성실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칭찬받으며 뿌듯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나도 불안을 내려놓고 쉬어야겠다. 이따 하교한 아이를 맘껏 칭찬할 수 있도록, 아낀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아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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