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잎이 나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3월 어느 날이었다. 퇴근길에 나뭇잎들이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수백 번도 넘게 지나다닌 길인데 이토록 아름답다는 걸 몰랐다니. 해가 떠 있을 때 퇴근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 시작해서 펑펑 울었다. 이날을 계기로 나는 퇴사를 다짐했다.
어쨌든 힘드니까 퇴사, 어쨌든 공무원
직장 생활이 힘들었다. 작은 회사였지만 업무 특성상 밤낮 할 것 없이 주말도 없이 일했다. 그렇다고 힘든 이유가 단순히 ‘일이 많았다’만은 아니었다. 무엇이 이유인지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더는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고, 그날을 계기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후 혼자 태국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같은 업계의 조금 더 큰 회사에서 일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들었다. 주요 원인이 내 생활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결국 저녁 있는 삶을 찾아서 공무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도 공무원계에서 최고의 워라밸을 자랑하는 교육행정직으로.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공무원, 더러는 ‘신의 직장’이라는 대학교 교직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또다시 힘들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지금 시점에서 다시 사기업 시절을 돌아보는 것은 ‘나는 번번이 적응에 실패하고 방황해’라는 자기 비하에 빠지기 위해서도, ‘힘들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도 아니다.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가장 큰 문제는 왜 힘든지 알지 못한 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감정에만 치우쳐 성급하게 공무원을 선택한 것이다. 체력이 부족해서 힘이 부쳤다면 체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업무 성격이 맞지 않았다면 나의 적성을 찾아보고 차분히 업종 전환을 해야 했다. 조직문화가 맞지 않고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좀 더 수평적인 조직문화, 장기근속자가 많은 업체를 찾아봤을 수도 있었다.
두 번째는 마음이 단단하지 못했다. 두드러진 업무 성과를 내었고, 상사로부터 ‘성장이 가장 빠르다, 기대가 크다’는 말도 더러 들었다. 어느새 주요 업무에 다 참여하게 되었고 업무 강도가 점차 높아졌다. 매번 상사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더 잘할 수 있을지 부담스러웠다. 직원 간의 갈등도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계속 쌓아갔다.
자신감이 있었다면 나는 ~~ 능력이 뛰어나서 인정을 받았고, 능력을 더 발전시켜서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갈지 고민했을 것이다. 직장 내 갈등은 어딜 가든 발생하기 때문에 나의 부족함을 알고, 갈등 해결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김나이 커리어액셀러레이터가 폴인에 연재한 <당신은 더 좋은 회사를 다닐 자격이 있다>에 따르면 커리어에 6가지 요소가 있다. 성장, 의미, 재미, 돈, 워라밸, 인간관계.
이 요소로 분석해보면 사기업에서는 워라밸과 인간관계가 힘들었다. 공공기관은 성장과 재미가 부족해서 힘들다. 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힘들지만, 이제는 그 힘듦의 원인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리고 어디에 가중을 두고 다음을 준비할지, 지금도 알아가는 중이다.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적어도 그때처럼 성급하게 공무원을 선택하지는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