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부모에게 하는 아이는 건강하다는 증거다.
김치볶음밥이 매운지 궁금했을 뿐.
우리 둘째는 7살이다.
어느 날 배고프다고 하여 점심을 주고 나니 나도 갑자기 배가 고파서
냉장실에 있던 김치볶음밥을 데워갖고 식탁에 앉았다.
그 순간 둘째가 식탁에 올린 김치볶음밥을 보고는
"엄마, 김치볶음밥 매워?"
이렇게 물어보았다.
나는 얘가 밥을 한가득 먹고 나서도 김치볶음밥을 좋아하니까 또 먹고 싶어서 그런 건가 싶어서
"아까 밥 많이 먹었잖아, 엄마 엄청나게 배가 고프니까 이건 다 엄마가 먹을 거야.
저쪽에 가서 놀고 있어!"
이렇게 글로 쓰니 왜 저렇게 재수 없게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는 저렇게 말을 했다.
딸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서 조금 서성이다가 소파로 가서 늘 그랬듯이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오후가 지나갔다.
그리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게 되었는데 깜깜한 방 안에서 둘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엄마.. 아까 김치볶음밥 있잖아.. 그거 내가 먹고 싶었던 게 아니고 그냥 매운지 한번 물어봤던 거야"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아이와 낮에 있었던 일이 눈앞에 번쩍 떠올랐고 내가 했던 막말도 함께 스쳐 지나갔으며 뱉어놓고 찜찜했던 감정이 다시 한번 허공 위로 치솟음을 느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곧장 바로 사과했다.
(실제로 아이에게 미안하면 바로 사과하라고 책에서 배워서 사과에는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
"아 진짜? 아.. 미안해. 엄마는 네가 김치볶음밥 좋아하니까 또 먹으려고 그러는 줄 알았어"
말해놓고도 참으로 유치한 사과를 했다.
아이가 또 먹고 싶어 할까 봐 먹지 말라고 말을 하다니. 그냥 한입 주고 또 만들어 먹으면 될 것을.
"그래? 응~"
아이는 사과를 받았으니 이제 됐다는 듯이 혹은 자신의 말에 대한 오해를 풀었으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듯 꿈나라로 떠났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딸아이는 억울한 경우가 있거나 내가 오해하고 말을 하는 경우가 생기면 나중이나 혹은 기분이 많이 나쁘면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면서라도 꼭 바로잡는 경향이 있다.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가만히 되짚어보니 나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어떤 잔소리나 듣기에 기분 나쁜 얘기, 혹은 오해하고 혼내는 말에 반박하거나 바로잡는 말을 전혀 못 하며 살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아예 회피하고 어차피 혼날 테니 나의 의견이 있었어도 묵과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물론, 이건 정말 정말 심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딱 봐도 건강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잘못했던 오해였던 다그치는 부모와 전혀 해명하려고 하지 않는 자녀. 나중에는 내가 무시하기까지 해 버렸던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성인이 되고 많은 것을 알게 된 지금은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과거의 좋지 않은 방식이 습관으로 굳은살이 되어버려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표현하듯 건강한 방식으로는 대면하지 못한다.
나는 아직도 부모와 웬만하면 참고 입을 다무는 방식으로 소통을 하고 있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굳혀져 와서 사실 변화시키기가 매우 힘이 든다.
고작 7년 정도 살아온 아이가 억울하거나 오해가 있었던 부분을 꼭 바로잡고 이야기를 해주고 해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감사하기도 하고, 부모인 나를 내가 내 부모를 대할 때처럼 무서워하거나 회피하려 들지 않고 동등하게 바라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도 따뜻하고 행복해졌다.
1차적으로는 내가 아이들에게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아직도 나는 미성숙한 존재이기에 그런 상황이 또 생길 확률이 매우 다분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꼭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하나씩 고쳐나가야겠다.
나보다 더 나은 무한한 어린이들.
또 한 번 아이에게 배우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