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의 본질
기능의학 지식을 적용하면서 환자와의 면담 시간이 길어졌다.
발이 아파 여러곳을 돌아다니다가, 수소문 끝에 우리 병원의 정형외과에 한달 예약을 기다려서 온 환자가 있었다. 오전 마지막까지 한참 기다려서 진료를 봤는데, 신경과로 보내져서, 매우 시무룩하게 오후 첫 진료로 보게 되었다.
이것저것 여쭤보고, 별다른 약이나 검사도 없이 생활습관에 대한 것들만 주루룩 설명을 드렸다. 이미 타병원에서 할만한 검사는 다 하신 상태기도 했다. 한 30분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지 싶다. (물론 나는 환자가 별로 없어서 가능하다.) 그런데도 환자분은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반은 나은 것 같다고 고맙다고 하고 나가셨다.
그 순간 약간 나는 어리둥절해졌는데, 내가 어떤 도움이 된건지 긴가민가 했기 때문이다
혹시, 환자분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들은 이런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와 길게 소통하는 것. 이야기를 깊게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이런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시간이 환자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나도 환자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연결된다고 느낄수록 내가 도움을 줄 여지가 더 많았고, 나도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환자의 삶에 접속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그리고 환자가 나의 권위를 인정하고 나를 믿는다면, 즉, 자기의 삶에 나의 개입을 허락한다면 (쉬운 말로, 내 잔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종종 환자랑 수다 떠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든 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던가.
스트레스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자식에 대해서....
진짜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물론, 현재의 의료 수가 시스템에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겠지만.
그래서인지 기능의학병원은 의료보험이나 실비 진료가 어렵다고 한다.
어쨌든, 나는 지금 봉직의니까, 비교적 마음 편히 이런 진료를 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우리 병원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렇다고, 모든 환자가 이런 진료를 환영하지는 않았다.
머리 아파서 약이나 처방 받겠다고 온 환자에게,
갑자기 두통과 상관없어 보이는 고혈압에 대해 묻고, 혈압약 언제까지 먹을건지, 약을 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잔소리를 듣고 있자니.. 싫을 수도.
아마, 지금 하루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먹는걸 바꾸라느니, 운동을 하라느니 이런 소리를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는 나도, 내 잔소리와 에너지, 시간을 아끼게 되었다.... (서로 피곤하다는 걸 알게 되었달까.)
어쩌면, 의사라는 업은 타인의 삶에 개입해서 터닝포인트를 만들 수 있는, 권위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내가 이렇게 타인의 삶에 개입해도 되는 걸까?
내가 느꼈던 터닝포인트, 삶의 긍정적 변화가, 모두에게 필요한 게 맞을까?
맞다고 하더라도, 변화가 일어날 만한, 각자의 때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때, 일을 쉬지 않았더라면 때를 만났을까.)
그렇다면, 내 이야기가 지금 딱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 게 아닐까.
그게 나도 좋고, 상대방도 좋은게 아닐까.
그래서 유튜브를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