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겨울이 끝나갈 어느 무렵 너는 우주 끝에서 한줄기 빛을 타고 이 세계로 도착했어. 낯선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너는 엄마 뱃속에서 10개월 동안 적응기간을 가졌지. 엄마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간접적으로 보고, 엄마 귀를 통해서 세상의 소리를 듣고, 엄마의 입을 통해 세상의 음식 맛보면서 말이야. 이 세계에는 아빠의 존재도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엄마 배에다 대고 나의 실존을 수없이도 강조했단다. 나는 아빠 란다. 너의 아빠. 머나먼 우주 끝에서 너의 여행을 시작하게 해 준 장본인. 너의 여행이 출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지구에서는 이 소식을 보통 산부인과라는 병원에서 알려준다.) 나는 무척 기뻤단다. ‘네~ 천사가 출발하셨군요.”
나는 기쁜 동시에 걱정도 되었어. 아빠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네가 실망할까 봐 걱정도 많이 했었단다. 하지만 또 아름다운 것도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너의 적응기 동안 엄마를 통해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맛 보여 주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
2019년 12월 2일 오후 2시 41분에 드디어 네가 엄마 뱃속을 벗어나 이 세상에 나올 때는 무척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 너는 나오자마자 엄청 울어 댔으니까, 마치 나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 ‘아빠! 아빠가 말한 거랑은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나오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맞는 거죠???’ 나는 너의 탯줄을 자르면서 말했다. ‘그래 이수야, 이곳은 아름다운 곳 이란다. 지구로의 이주를 환영한다. 사랑하는 나의 딸. 네가 오는 그 자체로서 이 세상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구나, 아빠가 항상 예쁜 것만 보여 줄게’
하지만 세상은 아빠 뜻대로 되지 않는 냉정한 곳이야. 현재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불리고 있지. 모든 아름다움이 화폐로 교환되는 곳. 아쉽게도 아빠는 너에게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여줄 만큼 화폐를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해. 그래서인지 불현듯 지나온 세월이 많이 후회가 되었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다행히 너의 눈이 나를 위로해 주었단다. ‘아빠, 괜찮아요. 우리의 만남이 있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만 했던 필연들이었어요.’ ‘고맙다. 이수야. (눈으로) 그렇게 말해주어서. 앞으로는 정말 열심히 살아서 화폐도 많이 모아서 많은 아름다움을 전해 줄게.’
하지만 또 이 세상은 아빠 뜻대로 되지 않는 냉정한 곳이야. 현재는 ‘능력주의 사회'라고 불리지. 게다가 한국은 ‘시험 능력주의 사회'라고 해. 인생에서 치러지는 몇 번의 시험으로 운명이 거의 정해지는 곳. 특히 대학 학력고사를 잘 보아야 하는데 아빠는 그렇지 못했어. (지금은 수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기회가 한정되었고, 주어진 기회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계유지 이상은 못되었단다.
그래도 난 멋진 아빠가 되고 싶었기에 화폐 생산능력이 아닌 다른 능력으로도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독서였다. 화폐 모으는 능력은 떨어질 수 있어도 지적인 능력은 남들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어. 네가 커서 어느 날 갑자기 ‘아빠, 인생이 뭔가요?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외국인을 만난 영포자 같은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
아빠는 교양을 모으기로 했어. (물론 화폐도 모으고) 교양이란 ‘내가 발 딛고 사는 세계에 대한 이해’라고 정의할 수 있어. 내가 사는 세계를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해야 올바르게 삶을 살 수 있단다. 세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그 세계에 발 딛고 있던 '나'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 수 있지.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그 세상 위에서 나의 이야기를 비로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거란다.
가끔 무식한 중생(?)들이 너에게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을 거야. “교양이 밥 먹여 주냐?” 사실 교양은 밥을 먹여 주지 않아. 대신 교양이 언어의 집을 만들어 주지.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언어의 집이 클수록 나의 세계도 그만큼 넓어지는 것이지.
프랑스어로 ‘나비’는 빠삐용이라고 불러. 우리나라에서는 나비와 나방을 따로 구분해서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나비와 나방을 구분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는 무지개를 7가지 색깔로 구분하지만 독일에서는 5가지 색깔로 구분한다고 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우리나라에서는 가루눈, 싸라기눈, 진눈깨비, 소나기 눈, 함박눈 등으로 구분하지만 에스키모인들은 수십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 이르구자크(집을 만들 때 쓰는 눈), 푸가크(결이 곱지 않은 눈), 마사크(봄에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의 부드러운 눈), 아케로카크(꽤 단단하지만 집을 만들 정도로 단단하지는 않은 눈), 가니크(지금 내리는 눈), 아투트(땅 위에 쌓인 눈), 마우야(매우 부드러운 눈) 등등으로 말이야. 이처럼 언어의 세계가 넓으면 세상을 높은 해상도로 볼 수 있어. 언어의 집이 내 인생의 관측소가 되는 셈이지. 아빠가 전해 주는 교양에는 한계가 있으니 평소 아빠가 강조한 대로 독서를 많이 하기를 바란다. 네가 읽은 언어가 너의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이 편지는 네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를 가정해서 썼어. 지금은 네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네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인생에 대해 궁금해지면 그때마다 읽어볼 수 있도록 아빠가 미리 편지를 띄어 놓을게. 마치 병 속에 편지를 담아 바다에 띄우는 것처럼 말이야. 혹시 내 딸이 인생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네가 건져서 읽어볼 수 있도록. 아빠의 편지가 너의 항해에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앞으로 보낼 편지들은 네가 살면서 궁금할 때 꺼내볼 수 있는 아빠가 보낸 타임캡슐이라고 생각해 주렴.
이 글의 주된 내용은 앞서 얘기했지만 교양에 대한 이야기야. 철학, 심리학, 역사, 경제, 정치, 인문학 등에 대한 이야기이지. 재미없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최대한 재미있게 쓰도록 노력했다. 읽다 보면 아빠가 새롭게 보일 수도 있을 거다. 아빠가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어서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너에게 최선을 다해서 알려줄게.
심리학이 필요한 이유는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야. 내 마음을 잘 모르면 남의 마음대로 살게 되지. 내 마음을 알아야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단다. 인생길을 걷다가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지 헷갈릴 때, 갈림길에 이르러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철학이 필요하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할 때는 그 사회의 지나온 이야기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지. 사는 건 결국 먹고 삶의 문제이니 경제도 알아야 하고 그 경제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인문학의 목표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가 말한 함께, 잘, 살아감(well-living-together)이자, 칸트가 말하는 코즈모폴리턴이 되는 것이야. 그것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니까.
이 편지는 교양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아빠의 인생 수업이기도 하다. 교양이라는 소재에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아빠의 생각과 하고 싶은 말을 더했어. 이 책은 사랑하는 딸에게 남겨주는 아빠의 삶의 매뉴얼이자 지도이다. 아빠가 걸었다가 넘어진 곳은 주의 푯말을 세우고 갈림길이 나올 때는 유용한 팁을 적어 놓을게. 아빠가 직접 얘기하면 잔소리라 생각할 것 같아 지면에 담아 전한다. 네가 필요할 때마다 재미있게 읽기 바란다. 그리고 너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같이 읽어도 좋을 것 같구나. (토론하는 것은 더욱 좋다)
많이 부족하지만 용기 내어 이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 아빠의 교양 편지는 인생의 나무에서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그날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글은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편지이자 인생 선배로서의 남기는 교훈이며 딸에게 영원히 기억되고자 하는 아빠의 비각이다.
인생의 폭풍이 몰아치더라도 꿋꿋이 너의 온몸으로 너의 소설을 써가길 바란다. 아빠도 인생의 일진광풍( 一陣狂風) 속에서도 책을 읽고, 너에게 편지 쓰는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겠다.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