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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마 Oct 09. 2024

ep.03 1주 차 종료

남(南)의 아들 1부


3일 차 아침이 밝아오고, 눈을 떴을 때 우리 집 천장이 보였으면 다. 그리고 매일 아침 다정하게 깨워주시던 엄마의 모습이 그리워졌다.  

“빨리 일어나 이 새X들아!”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엄마보다 효율적으로 깨워주는 교관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연병장으로 나가 아침 점호를 한 후, 구보를 시작했다. 3일 차가 지나니 몸이 찝찝한 것은 물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온몸이 짓누르는 것 같았다.

“얘들아, 진짜 지나면 별거 아니야. 버티면 추억이 되고, 포기하면 고통이야.” 상호가 달리면서 말했다.

오늘은 기본 제식훈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해병대에는 '발진'이라는 특별한 동작이 있었는데, 지휘자의 구령에 맞춰 왼발을 쭉 뻗는 것이었다. 이민석 교관이 제식을 선보였을 때, 그의 동작은 절도와 품격이 넘쳤고 마치 로봇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왼발을 힘차게 뻗는 동작은 해병대에만 있는 동작이다. 이것은 발진 동작이라 부르며, 모든 제식의 기본 동작이 된다.”


교관의 설명에 우리는 집중했다. 그러나 연습이 시작되자, 상체를 과하게 젖히는 인원이나 발차기하듯이 앞으로 뻗는 인원 등 다양한 몸치들이 등장했다.

“하... 보여준 대로만 하란 말이야! 이 동작이 될 때까지 휴식은 없다.”


같은 동작만 1시간째 반복하자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이제는 발진 동작과 함께 구령에 맞춰 이동하는 것과 방향을 바꾸어 이동하는 것들을 배웠고, 우리는 엄마 오리를 따라가는 새끼오리들 같았다.

“후보생들 제식을 할 땐 ‘오와 열’을 맞추도록,” 교관이 지시했다.

'오와 열이 뭐지? 줄을 맞추라는 건가?' 속으로 생각했다.

“오는 가로, 열은 세로다. 열십자 모양으로 반듯하게 정렬된 상태를 말한다. 해병대는 살아서도 오와 열, 죽어서도 오와 열이다. 우리는 오와 열이 너무 좋은 나머지 전쟁 중에 전사를 하더라도 전우 옆에 나란히 눕는다.” 그의 말은 조금 광적인 설명 같았다.

제식 중 교관이 오와 열이라는 구령을 넣으면 우리는 양 옆과 앞사람의 뒤통수를 보고 오와 열을 맞추기 시작했다.

“자신이 정면을 바라봤을 때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여야 한다. 앞사람의 앞사람이 보이면 안 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3시간째 이것만 하고 있는 게 지루하고 짜증 났다. 군대에 오면 총도 쏘고 수류탄도 던지며 군사전술을 배울 줄 알았는데, 유치원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중식 시간이 왔고, 3일 차가 되니 왜 짬밥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교관들은 후보생들이 잔반을 남기지 못하도록 검사했으며, 잔반을 남기는 인원은 따로 정신교육을 받았다.

“128번 부사관 후보생 최인권! 교관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저... 저는 콩을... 콩을 못 먹습니다.”

“후보생의 부모님께서 피 땀 흘려 번 돈의 일부가 세금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먹도록.”

교관의 말에 속으로 '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나도 교관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다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물을 마실 수 있는 보온통이 있었는데, 이 짧은 시간이 우리에게는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다. 물을 더 마시는 척하며 동기들과 한두 마디 더 나누며 답답함을 해소했다.

오후에는 제식훈련과 체력단련이 이어졌다. 그리고 석별 과업까지 마친 후, 1일 차부터 4일 차까지 잠을 3~4시간씩 자며 힘든 하루하루를 견뎠고, 드디어 가입주의 마지막 5일 차 금요일이 도래했다.

“후보생들 이제 가입주의 마지막 날이다. 앞으로 이런 생활을 10주 더 해야 하고, 임관을 하면 18주의 교육을 또 받아야 한다. 훈련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고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고비들이 계속 찾아올 것이다. 지금 집에 가면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을 거야. 퇴소할 인원 거수.” 김철민 교관이 말했다.

5일째 씻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동기들은,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며 손을 들었다. 나도 진짜 손을 들고 싶었지만, 1주 차에 나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영화야, 나 갈게.. 나는 그냥 편하게 군생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더 이상 못 버티겠다.” 태형이가 말했다.

“태형아, 우리 휴가 받으면 술도 한잔하기로 하고, 첫 월급 받으면 사고 싶은 것도 공유하고, 끝까지 가기로 했잖아. 조금만 더 버텨. 너 할 수 있잖아...” 내가 애원하듯 말했다.

“미안...” 태형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나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했던 태형이는 퇴소하게 되었고, 내 생활반의 옆자리는 빈자리가 되었다.


인사도 못 하고 이름도 모르던 동기들이 하나둘 퇴소하며 이제는 130여 명만 남았다.

“후보생들 나갈 인원들이 다 나갔으니, 지금부터 피복을 지급하겠다. 전투화는 가죽 재질이라서 늘어나니까, 한 치수 작은 것을 지급받도록.” 교관의 통제 아래 우리는 물품들을 지급받기 시작했다.

“와, 이게 해병대 전투복이구나.” 자진 퇴소한 동기들과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고, 왠지 모를 피가 끓어올랐다. 우리는 지급받은 전투복과 전투화로 갈아입고 연병장에 집합했다.

“해병대에서는 경례를 필. 승이.... 절도 있게 경례를 실시한다.”


동기들과 전투복을 입고 교육을 받으니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 나도 저 교관처럼 멋있게 경례하고 싶었다.

“필승! 필승! 필승! 필승!.....


허공에 대고 3시간 정도 경례하니 지쳐버렸지만, 어느 정도 각진 모습들이 나오자 경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경례는 국가 권위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이며, 상급자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심과 부하에 대한 자애심이다. 동시에 상하 상호 간 그 직책과 직위에 대한 인식이며, 엄숙한 군기를 겉으로 드러낸 표시이다. 그러므로 경례는 항상 엄숙 단정히 실시하여야 한다!” 교관의 진지한 설명에 우리는 경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더욱 경각심을 가졌다.

이제 경례를 배운 우리는 교관님들이 보이면 큰 목소리로 경례를 했고, 실내에서는 교관님들이 지나가면 "길을 비켜!"를 메아리처럼 외치며 벽에 쫙 달라붙어 길을 텄다. 그리고 드디어 샤워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후보생들, 지금 실시하면 세면도구와 수건, 속옷을 챙겨서 샤워실 앞에 집합한다. 실시!”

“실시!!”

5일 동안 씻지 못한 탓에 굉장히 냄새나고 더러워진 상태였다. 우리는 얼른 씻기 위해 재빨리 집결했고, 교관님께서는 샤워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인원들이 씻기에는 통제가 필요하다. 칫솔을 입에 물고 오이비누로 머리에 거품을 낸다. 그 거품으로 세수를 한다. 씻겨져 내려가는 비눗물로 몸을 닦는다. 복창해라, 60초 샤워.”

“..... 60초 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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