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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마 Oct 23. 2024

ep.17 소녀

남(南)의 아들


“우리 헤어지자.”





내가 전출 가는 곳은 교동도다. 그곳은 섬에서 섬으로 가는 접경 지역으로 매년 북한의 귀순자가 넘어왔다.


“왜 또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거야? 백령도에서 나왔잖아.” 그녀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라가 정해준 거야. 난 전역할 때까지 내 임무를 다할 뿐이야.”


“너는 억울하지도 않아? 저번에 유서도 썼다며.”


“나라를 지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군인이 되어버린 나는 그녀의 걱정 어린 눈빛에도 굴하지 않게 되었다.




“필승! 하사 전영화입니다. 2년 뒤 전역하지만,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겠습니다.”


“전영화 반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후배 이정재 하사가 말을 건넸다.


“그래, 이제 곧 녹음기 기간이라며? 그럼 부대에 잔류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출퇴근이 통제되고 아마 잠도 거의 못 잘 겁니다. 여긴 근무가 빡세서 ‘죽음의 땅’이라고도 불립니다.”


“알겠어, 잘해보자.”


소초는 컨테이너로 지어졌고, 작은 방에는 2층 침대가 가득 차 있었다.


“전영화 하사, 박격포 교관이었다고 하던데. 우리 소초랑 중대 본부에 박격포가 있는데, 잘 운용할 수 있는 인원이 없어서 부탁할게.” 소초장이 말했다.


“이상 없습니다.”


내가 속한 소초에서 북한과의 거리는 6km, 육안으로 보였다.


“전영화 반장님, 재밌는 거 보여드립니까?” 병장 동빈이가 물었다.


“뭔데?”


“북한 애들끼리 기합도 주고, 남자끼리 키스도 합니다.”


TOD라는 원거리 감시장비로 북한 애들의 실상을 보여주었다.


“참나…”


그리고 우리는 근무를 서고 짬짬이 훈련도 진행했다.


“81mm 포반, 다 모여봐.”


나는 북한의 어느 지점부터 타격하고, 야간에는 조명탄을 어떻게 터트릴 지를 교육했다. 이들이 전술 지식이 부족한 상태라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3개월 후…


“너 요즘 연락도 잘 안 되고, 내가 얼마나 걱정하는 줄 알기나 해?” 그녀의 언성이 높은 목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내가 안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부대 내 긴장 상태가 고조돼서 어쩔 수 없다니까? 네가 편안하게 발 뻗고 자는 게 다 군인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뭘 알기나 해?”


“요즘 군대 좋아졌다며. 네가 뭐가 그렇게 힘든데. 난 너 때문에 잠도 못 자고, 걱정돼서 밥도 잘 못 챙겨 먹고 있다고!! 흐... 흑.”


“왜 울어... 또....”


“또....? 끊어. 연락하지 마.”


“하... 잠시...”


“뚜..... 뚜.... 뚜....”


“전영화 반장님, 괜찮으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동빈이가 물었다.


“어, 괜찮아. 지금 인접소초에서 열상을 띄는 부유물이 발견됐다고?”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쪽으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강물을 따라 500m만 더 오면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분 후...


“전영화 반장님! 사람입니다. 사람의 형체가 확실합니다!”


“전부 다 기상시키고 A급 전투 배치 방송해. 동빈이는 소초장님한테 가서 지금 상황 간략하게 브리핑해. 난 중대 본부와 화상 통화 실시한다.”


“필승 하사 전영화입니다. 현재 강물을 따라 사람의 형태가 남쪽으로... 소초장님 오셨습니다. 인계하겠습니다.”


“부소초장님, 지금 인원들 탄약 분출 및 무장했습니다. 상급부대 명령만 있으면…”


“뭘 망설여! 다 배치 붙어!! 총기와 같은 무기로 위협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사격해.”


“형빈이, 써치로 SOS 모스 부호 쳐. '따따따 따-따-따 따따따' 이거만 반복해.”


상황은 긴박했지만 훈련한 대로 물 흐르듯 진행됐고, 교동 부대장(소령)이 와서 상황을 지휘했다.


“손님이 왔어요~ 손님이~”


귀순자를 잡으면 훈장 및 표장을 받고 진급하기 유리했기에 교동 부대장은 신이 났다.


‘이렇게 긴박한데 미친놈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귀순자가 있는 한강하류는 UN이 관리하는 곳이야. 저기에 총알이라도 쏘면 전쟁이라고! 전쟁 안 나니까 귀순자한테만 집중해. 강화도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가 데려와야…”


“쾅!!!!! 쾅!!!!!”


이건 명백한 포탄 소리였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삐-삐-삐- 철책에 연결된 광학 장비가 부서지며 비상 알람이 울렸고, 근처에 있는 카메라가 자동으로 사고 현장을 비췄다.


“부대장님, 지금… 포탄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시x.... 시x..... 시발.


‘지원아, 우리 헤어지자.’ 마지막 연락을 남겼다.




소녀가  


어여쁜 소녀가 날 찾아오거든  

완전무장 울러 메고  전선으로  떠났다고 전해주오

  

남긴 말은 없냐고 소녀가 묻거든  

그냥 말없이 고개만 떨구어 주오  


소녀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면  

나도 철모 끝에 이슬 맺혀 떠났다고 전해주오

 

나는 다시 돌아온다고 세월아 구보로  

내 청춘아 동작 그만 사랑하는 소녀야  

사랑하는 지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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